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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머핀 Jul 01. 2020

[김머핀과 고양이들] 나와 코코와 살바 도르 달리 05

곰돌이와 입양




새까만 털, 베이비 블루의 눈 색, 포도색 입과 발바닥. 세계 곳곳에 있는 검은 고양이들에 대한 미신은, 아마도 그들이 너무 매력적이라 홀리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생긴 것이라고, 나는 2011년 9월 집 옆 교회 앞에 박스 안에 버려져 있던 작은 고양이 사진을 보고 생각했다.


곰돌이 발견 당시. 박스에 담요를 깔아 넣어둔 누가 봐도 명백한 유기였다.


나는 그 당시 독일에 도착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풋내기였고, 이제까지 내가 디디고 있던 모든 기반이 사라져 드러난 여린 살에 굳은살이 생기도록, 그러니까 이방인으로서 겪는 모든 편견과 무지와 무례함에 나름의 대응방법을 만들고 상처 받지 않게 털어버리는 연습을 하던 중이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낮은 덥고 밤은 추운 그 하늘이 높은 계절에 아마도 아주 잠시간 사랑받고 보호받다가 영문도 모른 채 박스에 담겨져 “더 이상 키울 수 없습니다. 데려가 주세요.” 따위의 상투적인 문구를 매달고 길로 나온 생명. 제 몸보다 몇 배는 커서 뛰어넘을 수 없지만, 밥도 물도 없고 뛰어 놀 수도 없는 그 좁은 종이 감옥에 갇혀 계속 울부짖었을 그 여린 살 같은 생명이 퍽이나 안쓰럽고 마음에 걸렸다.


여러분의 심장을 뿌시러 온 내 이름은 곰.돌.이. ⭐️


까맣고 동글동글한 생김새가 어쩐지 고양이보다는 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그 녀석은 “곰돌이”라 불리며 우리 집에서 입양 갈 곳을 찾았다. 코코가 다른 고양이들을 워낙 싫어했던 터라, 다묘는 꿈도 못 꾼다는 사실을 알아서 우리가 키울 수는 없었다. 허나 그대로 두면 죽을 것이 분명했기에 일단 우리 집에서 흔히 말하는 “임시 보호”를 한 것이다. 곰돌이는 우리가 임시 보호한 최초의 고양이었다. 이 무지막지하게 귀여운 녀석은 당시 생후 2-3개월 정도였고 다행히 건강에는 이상이 없었다. 가정 또는 가게에서 분양받았는지 아니면 길냥이 어미를 두었는데 사람 눈에 띄어 누가 데리고 갔다가(흔히 말하는 냥줍) 못 키우겠어서 버린 건지 알 수는 없지만 한창 엄마 고양이 곁에서 클 시기에 녀석은 엄마와 떨어졌고, 한 번 버려졌으며, 우리 집에서 또 다른 집으로 이동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사실 코코는 형이 있었다(동생일 수도 있지만 코코보다는 몸집이 아주 좀 더 컸다고 한다). 아빠가 코코와 코코 형을 함께 데리고 오던 길에 마침 그 근처에 사시는 한 지인 분을 만났다. 그리고 그분이 주택에 살아 쥐를 잡게 한다고 하면서 코코 형아를 데리고 가셔서 우리 집에는 코코만 오게 되었다. 하지만 코코 형아를 데려가신 분은 노령의 할머니셨고, 혼자 사시는 터라 캣초딩때의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하셨다. 결국 몇 개월 목줄을 묶어서 키우시다가, 나중에는 베란다 고양이로 키우셨다. 그리고 코코 형아는 그렇게 삼 년 가량을 살다 심장사상충으로 죽었다. 우리가 아직도 뼈아프게 후회하는 실수다. ‘차라리 우리 집으로 데려와 같이 키울 것을. 같은 형제지간이니 코코도 계속 같이 잘 지낼 수 있었을 텐데’하는 생각을 아직도 한다. 나에게 아프게 기억되는 일 중 하나이다.

할머니를 무조건적으로,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할머니는 코코 형아에게 애정이 있으셨다. 나비라고 부르시면서 예뻐도 하셨다. 하지만 연로하신 할머니의 체력으로 고양이가 치는 사고를 뒷감당하시기에 너무 힘들었을 것이고, 고양이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에서 행동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입양이라 부를 수도 없는 일인지만, 어쨌든 입양을 보낸 아빠도 이제 막 “냥줍”을 한 고양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였고 데려가신 할머니도 옛날에 시골에서 보았던 쥐 잡는 가축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데려가셔서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몰랐다는 것만으로 이미 죽은 생명을 되돌릴 수도 없다. 코코 형아는 우리에게 “후회” 그 자체로 여전히 마음에 남아있다.
 
코코 형아의 죽음은 우리에게 너무나 쓰린 교훈을 안겨주었다.


입양자의 조건: 동물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은 제공할 수 있을 것.


사실 최대한의 환경이라고 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게 되면 입양을 보내기가 너무 힘들다. 장기 임보가 가능하면 모를까...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면 자랄수록 입양은 더 어려워진다. 좋은 입양자를 고르기 위해 고민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성묘이거나 외모가 덜 귀여울 경우 입양 가능성은 엄청나게 떨어진다.

 나는 곰돌이의 귀여움에 홀딱 빠졌지만 생각보다 곰돌이의 입양은 쉽지 않았다. 그 이유 중 대부분은 “품종도 없는 검은 고양이”여서 였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만 흘러갔고 코코가 한계치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 곰돌이를 더 데리고 있기 어려워 가족들이 고민이 많았다. 그러던 중 동네에서 식당을 하시는 부부가 식당 주변에서 쥐가 나와서 고양이를 데려가고 싶다고 관심을 보였다. 아, 쥐잡이... 걱정이 앞섰다. 식당에서 밥 만주고 풀어놓고 키우려는 것은 아닐까 싶었지만, 집이 근처라 밤에 퇴근할 때는 집으로 데려가서 잘 돌봐준다고 하셔서 결국 곰돌이는 그 집으로 갔다.




고양이 습성이나 필요한 것들에 대해 잘 말씀드리고 곰돌이를 보내고 난 뒤, 아빠는 간간이 그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시면서 곰돌이 근황을 살피셨다. 식당 영업시간에는 식당 안과 뒤뜰을 오가며 손님들에게 애교를 피워서 곰돌이 팬도 생겼단다. 그 집 아들이 곰돌이를 너무 좋아해서 살뜰히 챙겨 저녁에 집으로 데려가서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며 꿀 떨어지는 생활을 즐긴단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렇게 자란 곰돌이는 머리부터 발 끝까지 사랑받는다는 것이 절로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해피엔딩이 있다면 이런 걸까 생각했지만, 인생은 늘 내 맘대로 되는 적이 없다.

그 집 아들이 유학을 가게 됐다. 곰돌이와 절대 떨어질 수 없다고, 얼마가 들든지 자신이 데려가겠다고 검역이며 비행기며 다 알아봤지만 기숙사에서 지내야 했기에 결국 데리고 갈 수 없었다. 그 부모님께서 ‘잘 돌봐준다 걱정마라’ 안심시켜 보냈지만, 일 년 정도 후에 그 댁 부군이 큰 병을 얻어 결국 하시던 식당도 정리하시고 곧 이사를 가셔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나는 아직도 가끔 곰돌이를 생각한다. 곰돌이를 처음 박스에 넣고 버린 인간은 그게 그냥 죽으라고 떠다민 거라는 걸 지금은 알고 있을까? 아저씨 건강은 어떠실까. 부디 건강을 회복하시고 이제는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그렇게 곰돌이을 예뻐하던 아들은 한국으로 돌아왔을까? 곰돌이와 같이 잘 살고 있을까? 혹시 곰돌이가 다른 집으로 갔다면... 거기서 행복할까?

이 글은 무지했던 지난날 여러 생명에게 한 나의 실수에 대한 반성이자, 앞으로 인연이 닿아 잠시간 만나고 헤어지게 될(코코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반려동물을 들일 생각이 없고, 만약 한다면 임시 보호 봉사만 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에 대한 다짐에 관한 글이다.


인생을 살면서 뜻하지 않는 변수는 너무나 많다. 그리고  그 변수들이 같이 살아오던 반려동물과의 동거를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결혼, 임신, 출산, 유학, 이민, 병환, 사고 등은 파양이나 유기의 단골 사유이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때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닥쳐올 때도 있다. 언제 어떤 일이 닥치는지 알 수 없기에, 인간은 만남의 지점에서 이별의 지점을 고려하지 않곤 한다. 하지만 우리와 만난 생명체는, 우리가 길들인 생명체는 우리를 버릴 힘이 없는 존재다. 우리가 먼저 손을 놓지 않는 한 평생 우리를 버리지 못하는 존재다. 언제나 버리는 것은 사람 쪽이 될 수밖에 없다.


정말,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당신을 찾아올 . 그것이 충분히 미리 고려해볼  있었던 일이 아니라 천재지변처럼, 벼락처럼 당신을 찾아와 천둥 같은 상흔을 남기고 떠나, 당신이 반려동물과  이상 함께   없어졌을 때가 온다면. 그에 대처하는 당신의 자세가 부디 온전한 마음으로 가득  것이기를. 그저 대충 아무 사람에게 억지로 떠다 안기거나, 맡아줄 곳을    찾아보는 시늉만 하다가 슬그머니 현관문을 열어두는 그런 자세가 아니라, 나를 대신해  생명을 평생 행복하게 만들어  누군가를 찾기 위해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하는 자세이기를.  이상   것이 없을 만큼 열과 성을 다해 모든 가능성을  두드려보는 자세이기를. 그리고 이별했으니 내가 알 바 아니라는 마음이 아니라 이제 곁에 어도 사랑과 애착을  잃지 않는 그런  마음이기를. 그래서  생명이 당신 곁을 떠났어도 계속 꾸준히 멀리서나마 지켜보고  생명의 행복을 확인해보는 묵직한 마음을 지니고 살기를 바라고  바라본다.  곰돌이도, 그리고  땅에 수많은 곰돌이와 같은 처지에 있는 동물들도 아프지 않고, 배곯지 않고, 학대받지 않고, 추위와 더위에 시달리며 아스라져 가지 않았기를.


곰같아 보여도 고양이 입니다. 제 발톱을 보세요 멋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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