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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머핀 May 27. 2020

[김머핀과 고양이들] 나와 코코와 살바 도르 달리 04

토비, 이별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익숙해지는 것일 뿐이다.


토비


토비는 우리가 밥을 준 최초의 길냥이였다. 처음 토비를 발견했을 때 토비는 정말 작았었다. 4개월 정도 됐을까 말까 한 아이였는데 벌써 독립을 한 것인지 어미를 갑자기 잃었는지 알 수 없었다. 우리 집 마당에서 뿅뿅 뒤어다니는 그 작은 생명을 모른 척할 수 없어 밥을 챙겨 주기 시작했다. 길냥이들은 누구나 다 앓는다는 곰팡이성 피부병 때문에 고생했지만, 토비는 태생부터 밝은 느낌의 아이였다. 개냥이라는 단어도 부족한 사교의 왕이랄까. 사람이고 고양이고 가리지 않고 잘해주는 느낌이었다. 토비는 우리 집 뒷마당에 터를 잡았고,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우리 집에 처음으로 나타났을 때, 아직 작던 토비.




 집에 들이는 건 돌봐주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 집냥이가 되지는 못했지만, 뒷마당 한편에 집을 마련해주고 때 되면 밥 주고 아픈 데는 없는지 살피고 예뻐해주곤 했다. 알아들을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이상한 사람이 많기에 아무한테나 가서 앵기면 안 된다고 계속 얘기하기도 했다. 토비는 특히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했는데, 가끔 보면 아빠는 코코보다 토비를 더 예뻐한다고 우스개 소리를 하곤 했다. 제가 예쁨 받는 것을 아는지 토비는 저 멀리 아빠가 오는 소리가 들리면 후다다닥 뛰어나와 아빠에게 안겼다. 비록 길냥이, 마당 냥이였지만, 토비는 우리에게 스쳐 지나가는 존재가 아니었다. 혹여나 어디 가서 길을 잃을까 싶어 목걸이도 채워줬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났을까 토비는 동네 고양이들과 친하게 다니더니 모르는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왔다. 사실 그 녀석이 슬그머니 눌러 앉은 격이다. 토비는 다른 녀석이 제 구역에 들어와 밥을 먹고, 쉬다가 가는 것을 경계하기는커녕 오히려 반겼다. 보통 영역 다툼을 해서 한 녀석을 밀어내는 게 정석인데 토비는 그러질 않았다. 제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좋은지 밥도 양보하고 그루밍도 해주고 어찌나 살갑게 굴던지. 서열이 더 낮은 고양이가 그렇게 한다는데, 토비를 보고 있노라면 그건 서열의 문제가 아니라 애정의 문제인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군식구로 눌러앉은 고양이에게 코니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지만, 코니는 살가운 성격은 아니었다. 밥이랑 간식을 먹을 때 빼고는 곁을 잘 주지 않았고, 손도 잘 타지 않았다. 코니는 제 때에 독립해 길 생활을 한 고양이라, 길고양이가 살아남기 위해 지녀야 하는 기본적인 경계심을 가진 평범한 길고양이었다. 처음에는 좀 섭섭했으나, 그것이 생존에는 훨씬 낫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굳이 더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고양이의 보은”이라는 말처럼 토비는 가끔 우리 집에 쥐나 잠자리, 매미 같은 것을 잡아다가 놓아주곤 했다. 나무도 잘 타던 녀석은 새를 잡기도 했다. 사냥 본능으로 잡았겠지만 기특하게도(?) 그것들을 우리 집 현관 앞에 놓아두곤 했다. 물론 치우는 것은 아빠 몫이었다. 처음에 쥐를 잡아왔을 때는 기겁을 했지만, 그것이 선물이라는 것을 알고 한참 웃었다. 아직 아기일 때 엄마와 떨어져서 길 생활을 해내야 했지만 토비는 사람으로 치자면 구김살이 없었다. 두렵고 힘들었을 텐데 그늘 없이 맑았다. 제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눌 줄 아는, 비유하자면 태양 같은 아이였다.



나무 타는 토비와 아빠. 아빠 이 때는 아직 머리가 덜 빠지셨구나. 세월이여...

 그렇게 몇 개월이 흐르고 갑자기 토비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보통 어디 나가 있다가도 식구들이 돌아오는 시간이면 뒷마당에 항상 있던 녀석인데 그 날은 오지 않았다. 다음날 종일 토비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전단지를 만들어 동네 구석구석에 붙이고 토비를 찾아다녔다. 토비가 있을 때만 슬쩍슬쩍 밥 먹고 놀다 가던 코니가 토비가 있던 자리를 지키고 살기 시작했다. 우리는 ‘토비가 코니에게 설마 자기 영역을 주고 떠났나, 코니가 토비를 몰아낸 것은 아닌가’ 생각했지만, 알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계속 찾았다. 길고양이를 뭐 그리 찾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토비는 우리에게 길고양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아이였다. 그렇게 동네 물어보고 다니던 중, 비슷하게 생긴 고양이가 동네 교회 앞에서 치어 죽어있는 것을 보았다는 말을 들었다. 시기도 토비가 없어진 때와 비슷했다.


 우리는 믿지 않았다. 그냥 비슷하게 생긴 다른 고양이일 거라고, 목걸이가 있으니까 어디서 누가 연락을 줄지 모른다고 서로에게 말해주며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토비는 돌아오지 않았고, 우리는 그렇게 처음으로 헤어짐을 배웠다. 아무도 울지 않았다. 희망을 버리지 않았으니까. 언젠가 돌아오지 않을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갑자기 나타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우리를 반겨주지 않을까. 그렇게 길고 긴 희망이 바래져 갈 때쯤 우리는 비로소 토비와 이별했다. 다음부터는 챙겨주는 길냥이들에게 너무 많이 마음 주지 말자,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지 말자. 나는 그렇게 다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가끔 토비를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우리 집에 밥을 먹으러 오는 녀석들에게 은근슬쩍 마음을 준다. 생각해보면 토비와 함께한 시간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토비 없이 산 세월이 거의 9년이다. 토비가 머물렀던 시간의 거의 9배에 가까운 시간을 흘려보냈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아직 토비가 남아있다. 이별을 배웠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이별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익숙해지는 것일 뿐이다.


 토비를 생각하면, 이제 10살이 넘은 코코와의 이별을 생각한다. 토비와의 이별도 아팠지만, 온 마음을 다해 10년째 사랑하는 존재와의 이별은 아마 상상하지 못할 만큼 힘들겠지. 그래서 나는 우습게도 미리 이별을 연습한다. 만약에 ‘코코가 아프면 어떻게 하지, 코코가 가버리면 어쩌지’하고 상상해보곤 한다. 생각만으로도 나에게는 너무 무겁고 무서워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이별은 연습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그저 ‘하루를 충실하게 사랑하며,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야지’ 다짐하지만, 나는 그날이 오면 내가 나를 많이 탓할 것을 안다. 이별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너무 아픈 갈래의 이야기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오늘도 토비를 추억한다.


원래 동물 사진은 3장 이상 올리는 것이 국룰이라고 들어서....


어딘가 호랑이나 표범을 좀 닮은 느낌이기도 한데...
끈 하나로도 신나게 노는 것을 보니 고양이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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