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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머핀 May 12. 2020

[김머핀과 고양이들] 나와 코코와 살바 도르 달리 03

코코3- 동물과 함께하는 삶, 그 고행에 대하여

코코 3-동물과 함께하는 삶, 그 고행에 대하여



                                                                                  


 코코의 열 사건 후로 우리는 마지막 병원에 정착했다. 맨 처음 초기 검진 때 간 병원까지 합치면 총 세 번 만에 정착을 한 것이다. 초보 집사인 우리들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고 3차 접종 그리고 중간중간 내외부 구충까지 통과의례를 치러 나가면서 병원에서 꽤 많은 지식을 습득했다.


 물론 고양이 관련 책이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정보도 많이 얻었으나, 그중에는 근거 없는 정보가 많았다. 그리고 그런 정보들을 철석같이 믿었던 집사들로 인해 그 시절 고양이들도 고생했을 거다. 대표적인 잘못된 상식은 고양이를 들어 올릴 때나 어떤 행동을 제지할 때 목덜미를 잡으라는 것이었다. 어미 고양이가 아기 고양이들을 옳길 때 목덜미를 물고 데려가기 때문에 그와 비슷한 방법이라고 효과적이라는 설명은 꽤나 그럴 듯해 보였고, 나를 비롯한 많은 집사들이 그 사실을 굳게 믿었다. 사실 나는 최근까지도 그게 맞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코코의 너무 덩치가 커져 버려서 자연스럽게 하지 않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수의사분이 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그것이 잘못된 정보임을 알고 정말 충격받았었다.


 정확하고 신뢰할 만한 정보를 얻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나보다 더 약한 존재들 그리고 자신의 의사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존재들을 키울 때 그 중요성은 정말 커진다. 그런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 무턱대고 하면 안 되고 정보의 출처가 믿을 만한 것인지를 따져가면서 열심히 해야 한다. 지식적인 정보도 중요하지만, 경험적인 정보도 중요하다.


 동물들이 일단 집에 들어오면 사람이 해야 하는 수고가 압도적으로 증가한다. 고양이를 기준으로 이야기하자면, 밥과 간식을 챙겨주고, 화장실을 하루나 최소한 이틀에 한 번 치워줘야 하며, 빗질해주고, 언제든지 쉽게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마련해주어야 한다. 필수적인 욕구들을 해결해준다고 끝이 아니다. 어린이들이 놀면서 발달하듯, 어른이 취미 생활이나 쉬는 시간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교감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듯, 동물들도 똑같다. 매일 매일 주기적으로 놀아주고, 에너지를 소비할 수 있도록 적절한 환경을 조성해주고, 아픈 곳은 없는지 살피고, 쓰다듬어주어야 한다.


 또 주변에 위험 요소가 될 물건들을 단속해야 한다. 그 물건의 정체는 항상 당신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화장대 위에 놓인 화장품을 떨어뜨려서 유리가 깨지거나 내용물을 먹어서 큰일 날 수도 있다. 고양이에게 독이 되는 식물들이 없는지 살피고 구매할 때 항상 주의해야 하며, 우리가 먹는 식재료들 중에 해로운 것들을 혹시 먹지는 않는지, 바닥에 떨어진 단추나 머리끈, 실 같은 것을 먹지 않도록 항상 신경 써야 한다. 그 외에도 인간이 해야만 하는 사회생활에 지장을 줄 수도 있는 털이라든가, 털이라든가, 털이라든가, 털을 항상 옷에서 떼어내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하고(참고는 나는 이제 하지 않는다. 어디 나가서 사람 만나는 직업도 아니고 어차피 또 붙을 거 뭐하러 떼는가 싶어서 포기했다), 바닥에 뭉치로 굴러다니는 털을 보지 않으려면 청소기도 부지런히 돌리고, 털로 에어컨 통풍구가 막히지 않도록 항상 잘 닦아줘야 한다. 헤어볼 토를 밟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사료가 맛없다고 안 먹거나, 귀지가 폭발하거나, 변비가 생기게 되면 새로운 사료를 찾아 떠나는 집사의 대모험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아기 고양이를 데려온다면 공포의 캣초딩~캣중딩 시절을 거쳐 가는데, 사람의 아이들도 이때 에너지가 얼마나 대단한지 우리는 익히 알고 있지 않나. 일명 ‘우다다’라고 불리는 뛰기 놀이(?)가 시작되면 온 집안이 난리가 난다. 얘가 미친 건 아닐까 싶게, 정말 한 마리의 맹수가 질주하듯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닌다. 그것도 하루에도 몇 번씩. 얌전한 도련님 코코도 이 시기에 우리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두루마리 휴지를 다 뜯어서 거실을 온통 하얀 눈밭으로 만들어 준 적이 있을 정도다. 이때 사고 쳐도 화내지 않고, 그들의 에너지를 충분히 쏟도록 놀아주어서 집사의 수면 시간을 보장받으려면 정말 열과 성을 다해야 한다.


 1인 가구라서 어린 고양이를 하루 중 대부분을 집에 혼자 두어야 한다면, 혼자 남은 고양이는 그 에너지를 분출하기 위해 천둥벌거숭이마냥 집안을 뛰어다닐 수밖에 없다. 뭐가 값나가는 것인지, 위험한 것인지 당연히 알 수 없기에 온갖 사고를 치고 다닌다(고양이가 인덕션 버튼 눌러서 집 태우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럼 일에 지친 반려인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난장판이 된 집을 보고 화가 나고 그것을 치우느라 더 지치게 된다. 하지만 혼자서 뛰어노는 것으로는 성이 찰 리 없는 캣초딩이 놀아주기를 바라면서 집사에게 장난을 걸거나 우다다가 시작되면 집사는 더 서 있을 힘도 없는 상황에서 모든 에너지를 뺏긴다. 설상가상으로 새벽 2시 우다다가 시작되면 잠까지 설쳐 결국 폭발해버리는 레파토리는 너무 흔한 이야기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는 강아지에 비해 기르기 쉽고 외로움을 타지 않아 혼자 두어도 괜찮다고 알고 있다. 아니다. 대표적인 잘못된 상식이다. 아무런 생명체와도 교감할 수 없는, 그리고 나갈 수도 없는 공간에 하루의 대부분을 혼자 가둬놓고 괜찮을 생명이 도대체 얼마나 있단 말인가. 강아지에 비해 기르기 쉽다? 같은 종의 고양이여도 성격이 천차만별이다. 개냥이, 접대묘라고 불리는 친화력이 대단한 고양이 같지 않은 고양이도 있는 반면, 쉽게 친해질 수 없는 도도한 고양이의 전형인 성격도 있고, 코코처럼 그냥 세상 모든 게 다(집사 빼고) 무서운 엄청난 소심쟁이도 있다. 이것은 강아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다르듯이 강아지나 고양이, 다른 동물들도 다 마찬가지이다. 본능적인 습성은 있으나 성격은 다 다르다.


 자신에게 마구 애정을 발산해주는 개냥이를 보고 그런 고양이를 가지고 싶어 하면서 들였는데, 곁을 잘 내어주지 않는 신중한 성격의 고양이를 만나게 되면 그 반려인은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성격에 실망도 할 거고, 자신이 원하는 관계로 만들어나가기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동물들에게도 통용되는 것이다.


 그뿐인가, 갑작스럽게 사고를 당해서, 또는 질병 때문에 병원비가 백, 천단위로 깨질 수도 있고, 슬프게도 장애가 남을 수도 아니면 회복되지 못하고 떠날 수도 있다. 코코는 꼬리가 짧다. 한 뼘이 채 안 되는 길이에 뭉뚝한 코코의 꼬리는 만져보면 맨 끝이 꺾여있다. 공 같아서 귀엽다. 우리는 처음에 고양이 꼬리가 그렇게 짧다가 자라면서 길어지는 줄 알았다. 그렇게 어린 고양이를 본 것은 처음이었으니 도통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시간이 좀 지났는데도 코코의 꼬리는 그대로여서 수의사 선생님께 여쭤봤더니 이런 모양은 대부분 어미 배 속에서 영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꼬리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경우라고 설명해주셨다. 그 자체로 병이 있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고양이들은 균형 잡을 때 꼬리를 많이 사용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때도 꼬리 언어를 사용해서 그런 부분에서는 부족함이 있을 수 있다고 하셨다.



코코의 귀여운 꼬리.





 그 후로 코코의 꼬리는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코코의 신체 부위가 되었다. 비록 꼬리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쉬우나 다행히 균형을 잡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장애의 한 종류겠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말 신경도 쓰지 않는 그저 코코의 사랑스러운 부분 중의 하나인데, 가끔 다른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와서 코코의 꼬리에 대해 물을 때 새삼스럽게 깨닫고, 괜히 마음이 아프다. 사실 장애라고 부르기도 뭐한 이 정도 사실에도 우리는 마음 아파하는데, 치명적인 질병이나 장애를 가지게 되면 반려인이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받는 상처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펫로스 증후군이라는 진단명이 생길 정도로 반려동물의 죽음은 누군가에게는 적잖은 충격이다. 반려동물은 늘 어린아이인 채로 살다 죽는다고 한다. 어린아이의 행복은 100% 부모에게 달려 있듯이, 반려 동물이 보내는 평생의 행복은 오롯이 반려인에게 달려 있음으로, 우리는 그들을 보내고 몰라서 못 해준 것, 알고도 능력이 되지 않아 못 해준 것을 헤아려가며 스스로를 자책하고 사무치게 아파한다.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런 부분을 간과한 채 동물을 집에 들인다. 그런 “힘든” 정보보다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정보들이 압도적으로 쏟아지는 온라인 플랫폼들의 모습을 보면 사실 우려가 되는 부분이 많다. “상근이”가 인기를 끌면서 수많은 상근이들이 각 가정에 입양을 갔지만, 다음 해 유기 견종 1위를 상근이 견종이 차지하는 현실은 늘 반복된다. 무턱대고 귀여움만 어필하는 모습은 달콤하나, 위험하다. 길 위에 수많은 상근이들은 얼마나 어떻게 살다 갔는지는 대부분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가 없다.


 물론 동물이 주는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은 그들로 인해 겪는 힘듦보다 몇 배나 크기에 오늘도 여전히 많은 반려인이 동물의 곁을 지킨다. 우리가 “나의 고양이”, “나의 강아지”, “나의 토끼”, “나의 동물”을 만나기 전에 이 “힘듦”에 대한 정보를 미리 습득한다면, 우리의 이 기쁨이, 즐거움이, 행복이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더 커지리라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 같이 출발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가 먼저 두세 발자국 앞에서 그들을 맞으러 가자. 우리가 준비되어 있다면, 동물들은 배나 되는 행복을 선물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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