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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머핀 May 09. 2020

[김머핀과 고양이들] 나와 코코와 살바 도르 달리 02

코코 2

코코 2


"

 사실 처음에 나는 코코가 귀엽긴 했지만, ‘귀엽다, 잘 챙겨줘야지’ 하는 정도이지, 마음 깊이 사랑한다거나 엄청난 책임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주 양육자라고 부를 사람이 3명이나 있어서, 그들의 틈이 비집고 들어가서 처음부터 나와 코코만의 유대 관계를 튼튼하게 쌓아나가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코코도 가장 코코에게 지극정성인 둘째 언니를 제일 잘 따랐다.


 그렇게 보조 양육자로 한 달이나 지났을까, 마치 장마같이 요란한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저녁,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니 집에는 나와 부모님뿐이었다. 코코의 저녁 간식을 챙겨주고 과제를 하려고 방으로 들어오는데 잘 안기지 않던 코코가 어딘가 힘없이 나를 따라 들어와 내게 안겼다. 사실 그때도 코코는 3~4개월 정도라 아주 작았고 기댄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지만, 나는 안겼다고 느꼈다. 처음에는 어머 얘가 웬일이지 싶어 기쁘게 쓰다듬어 줬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평소보다 조금 뜨거운데? 싶어 인터넷을 뒤져 고양이가 열날 때 증상을 찾아보았다.


 고양이가 열이 나는지는 귀나 발 등 털이 적은 부분을 만져보라는 말에 부랴부랴 만져보자 내가 기억하는 코코의 온도보다 확실히 뜨거웠다. 정신없이 아버지를 불러 코코가 열이 나는 것 같다고 병원에 가야 한다고 외쳤고, 어디 병원이 좋은지 알아볼 정신도 없이 그냥 집 근처 24시간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애가 아프다니까 덜컥 겁이 나서 병원이라면 다 코코를 잘 보아줄 줄 알고 달려간 내 선택이 내가 한 뼈 아픈 실수다. 나는 동물 병원에 대해 너무 몰랐다. 잘못 갔다가는 과잉 진료로 돈이 털리고 적절한 치료를 제때에 받지 못할 수도 있고, 잘 보이지 않는 입원실 환경이 열악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너무 초보 집사였다. 주 양육자가 셋이나 있으니까, 기본만 알면 되겠지 하고 고양이에 대한 기본만 숙지했다. 그 날의 밤은 나의 무지와 안일함, 그리고 준비하지 않았던 애정에 대한 결과였다.


 부랴부랴 찾아간 동물 병원에서 나는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두서없이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나요’만 반복했다. 아기 고양이를 안고 정신없이 뛰어들어온 대학생. 척 봐도 경험이 없어 보여 그랬을까, 수의사는 나를 다그쳐 물으며 말했다.

“최근에 열이 날 만한 일이 있었나요?”


“열이 날 만한 일이요?”


열이 날 만한 일이 과연 무엇인지 알 수 없었던 나는 생각나는 것을 무작정 끄집어냈다.


“며칠 전에 처음으로 목욕을 시키긴 했어요.”


“털 바짝 말려 줬어요?”


“네, 그게 중요하다고 해서 꼼꼼히 다 잘 말려줬는데.”


“속 털까지 말린 거 확실해요? 열나는 건 큰 일인데. 심각하게 아플 수도 있어요. 일단 피검사하고 약 줘야 하니까 입원시켜요.”


 나는 그냥 다 내 탓 같았다. 어설픈 집사들을 만나 아이가 고생하는구나 싶어 수의사가 나한테 반말을 하든, 명령조로 말하든 기분 나쁠 정신도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코코의 첫 목욕에 우리 자매 모두가 달려들어, 귀에 물 안 들어가게 조심해라, 샴푸 혹시 먹을 수 있으니까 잘 봐라, 속 털까지 잘 말려야 한다 등, 인터넷과 마구 사들인 고양이 전문서에서 습득한 지식을 늘어놓으며 서로를 감시했다. 속 털까지 잘 말렸는지 확인했고 혹시라도 추울까 오뉴월에 보일러까지 틀어대면 유난을 떨었다. 지금이라면, ‘아니오, 속 털까지 잘 마른 것을 확인했어요. 아마도 다른 이유 같아요.’라고 정확하게 말했겠지만, 그때는 그냥 모든 일이 다 내 탓 같았다. 사실 대부분의 반려인이 아이가 아프면 그렇게 느낀다.


 그렇게 코코를 입원시키고, 다음 날 아침, 일요일이었던 그 날 우리 가족은 정말 모두가 우르르 병원으로 몰려갔다. 대가족이라 병원 로비가 꽉 찬 느낌이었다. 대표 격으로 둘째 언니가 가서 일을 처리했고 나머지 가족은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수의사는

“검사 결과 큰 이상은 없어요. 그런데 아직 열이 내리지 않은 것 같으니 더 입원하면서 지켜봐야 해요”라고 말하며,

코코를 보고 싶다고 말하는 우리에게 간호사를 불러 보여주라고 시켰다. 생각해보니 왜 로비에서 검사지도 보여주지 않고 대충 결과를 말해줬는지 아직도 풀리지 않은 첫 번째 의문이다.


  진료비를 내도 좋으니 코코의 상태에 대해 검사지도 확인하고 제대로 듣고 싶었는데. 여하튼 그렇게 불려 온 간호사는 마치 마술을 부리듯 로비의 큰 블라인드를 걷었다. 방으로 이어지거나 창이 있는 줄 알았던 로비의 한쪽은 유리벽이었다. 로비를 유리벽으로 반으로 나눠 입원실로 쓰고 있었고, 블라인드를 걷으니 펫 샵 케이지 같은 구조로 되어있는 입원실이 드러났다. 좁은 케이지 크기. 코코는 아직 어려 괜찮았지만 다 큰 아이들은 제 몸을 돌리기도 버거워 보였다. 코코의 옆칸에 있던 소형견은 답답했는지 문을 긁고 있었고, 아래 칸에 있는 멍멍이는 짖고 있었으며, 더 충격적인 것은 대형견이 그 케이지에 들어갈 리 만무했으므로 그냥 케이지 앞에 울타리를 하나 쳐 놓았던 것이다. 입원한 것이 분명했던 그 대형견은 갑자기 어두웠던 한쪽 벽면이 밝아지자 흥분해서 붕대 감은 다리로 케이지 문을 타고 오르며 짖기 시작했다. 우리는 동물 병원 입원실을 본 것이 그 날이 처음이었지만, 이건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아마 그 입원실은 펫샵에서 흔히 사용하는 새끼들을 팔기 위해 만들어진 케이지를 그대로 사용한 것 같다. 최대한 공간 활용을 하기 위해 최소한의 크기로 만들어진, 4면이 다 투명해 어디서든 관찰될 수 있어 몸을 숨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유리 감옥. 위, 아래, 옆이 다 보여 동물끼리 서로 보며 으르렁댈 수 있던 그곳. 그것을 또 하필이면 유리벽 앞에 세워놓고 입원실로 만든 저의가 뭐였을까 가늠해보고자 했지만, 이 날까지 그 의문도 아직 풀리지 않았다. 그렇게 전쟁통 같은 그곳에서 코코가 어느 칸에 들어있는지 찾느라 몇 분이 걸렸다. 그 발견의 끝에는 구석에 웅크려 불안하게 떨고 있는 코코가 있었다. 엄마와 코코가 눈이 마주쳤다.


“당장 데리고 가자. 저러다 애가 스트레스받아 죽을 거 같다.”


 엄마는 코코가 자꾸 식탁이나 싱크대 위에 올라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정말 대단한 끈기로 코코를 교육시키셨고, 낮 동안 코코가 부리는 말썽 때문에 뒤치다꺼리하느라 힘들다고 뭐라고 하시곤 했다. 그래서 우리는 엄마가 코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 수가 없었는데,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단호한 모습에 우리는 조금 놀랐다. 하지만 우리 역시 모두 동의하는 바였기 때문에 코코를 데리고 가겠다고 말을 꺼냈다. 그러자 수의사는 지금 데리고 가면 애 죽는다, 동물 학대라는 식으로 쏘아붙였다. 이에 옆에 계시던 엄마의 언성이 높아졌다.


“그냥 집으로 데려가는 것 아니고 다른 병원 갈 겁니다. 여기 두었다가는 애 잡을 거 같아서요. 입원실이 저게 뭐죠?”


 의사는 그제야


“뭐, 다른 병원 가신다니까 보내 드리긴 하는데, 그러고 안 가시는 거 아니죠?”

라며 수납하고 가라고면서 간호사를 불렀고 우리는 검사 결과지까지 꼼꼼하게 챙겨 그 병원을 나왔다. 검사비, 주사비, 입원비, 야간 진료비, 검사 기록지까지 포함된 영수증에는 몇 십만 원이 찍혀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번에는 인터넷을 뒤져 인근에 평이 좋은 고양이 전문 병원을 찾았고 마침 한 병원이 언니의 직장과 같은 건물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지체 없이 그 병원으로 향했다. 일요일이었던 당시에도 영업을 해서 천만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던 그때의 안도감을 아직도 기억한다.


 새로 찾아간 병원의 수의사는 검사 결과에 별 이상이 없으니까 링거를 맞추면서 하룻밤 병원에서 상태를 지켜보자며 우리를 안심시켜줬고, 그렇게 보여준 입원실은 그 전 병원과 너무나 비교되었다. 케이지의 크기도 커서 성묘들도 답답한 없이 안정을 취할 수 있었고, 문에만 적당한 크기의 투명창이 붙어 있어 관찰이 용이하면서도 아이들이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밝기였다. 당연히 불투명한 재질이라 동물들끼리 볼 수 없어 완전히 분리된 느낌이 들었고 차갑지 말라고 깔아 둔 담요가 포근해 보였다. 개와 고양이들은 구역을 나눠 따로 관리하고 있었다. 고양이 전문 병원이라 고양이들이 대부분인 것도 좋았다.


 야간 당직 선생님이 혹시라도 밤 중에 상태가 안 좋아지면 바로 연락 주겠다고 우리를 안심시켜 보냈고 그다음 날 출근한 언니가 점심시간에 짬을 내 보러 가자 열은 어젯밤에 내렸고 지금은 상태가 안정적으로 보인다며 오후에 퇴원해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바탕 홍역을 치르면서 코코의 첫 병치레를 마쳤고, 그 뒤로도 잔병치레는 있었지만 코코는 크게 아프지 않고 우리와 건강하게 살고 있다. 아, 물론 뚱냥이인 것은 빼고. 그날의 사건으로 코코는 우리에게, 아니 적어도 나에게는 다른 의미가 되었다. 아픔과 힘듦을 함께 겪으면 관계가 더 돈독해지듯이, 그 날부터 코코는 나에게 사랑과 책임이라는 새로운 언어가 되었다.



뽈록한 뱃살마저 귀여운 너. 좋겠다, 살 쪄도 귀여워서.




 이제는 인근 2차 병원 리스트까지 보유하고 있는 우리는 두 번째로 갔던 그 병원에 10년째 잘 다니고 있고, 집 밖에서 밥 주고 케어해주는 길고양이들도 다 그 병원 신세를 졌다. 그 병원 선생님은 길고양이든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품종묘이든 한 마음으로 봐주신다. 병원비가 비싼 것도 아셔서 과잉진료는 최대한 피하신다. 언뜻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슬프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길고양이를 데려가면 대놓고 싫어하는 병원도 많고, 심지어 잘 만지지도 않으려는 수의사들도 많다. 아픈 동물을 수술시키고 좋은 것을 먹이고 최대한 좋은 치료를 해주고 싶은 마음을 이용해서 필요하지도 않은 검사와 처치들을 붙여 수백 심지어는 천 단위까지 병원비를 늘리는 병원도 많다. 물론 비의료인들이 필요한 처치와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라 대부분의 반려인들이 내 동물에게 필요한 처치라고 말하면 수락한다.


 최근 인기 있던 수의대생 유튜버의 조작, 후원금 무단 사용, 동물 학대 논란으로 온라인이 시끄럽다. 나 역시도 초반에 그 유튜버의 고양이들을 예뻐하면서 몇 번 영상을 시청했던 터라 배신감이 컸다. 모두가 저런 사람이 수의사가 되면 안 된다고 공분하고 나도 그에 동의하는 바이나, 이미 그런 수의사가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알기에 좌절감은 늘 떠나가지 않는다. 의료 사고가 나도 그 의료 소송에 필요한 의무 기록을 받기 위해 또 소송을 해야 하는 현실도 아직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돈을 많이 벌려고 직업을 택하는 것을 어찌 비난할 수 있겠는가. 나조차도 일을 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돈을 벌기 위해서인데. 직업을 선택하는 동기까지 검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적어도 생명을 다루는 직업을 선택했다면, “프로페셔널” 해졌으면 좋겠다. 동물을 마음 깊이 사랑하고 그들의 복지에 최선을 다하는 직업적 소명의식이 없더라도, 동물들에게 충분한 먹이와 물을 제공하고, 청결하고 충분한 공간에 머물도록 해주는 것. 학대하지 않고 적절한 처치를 하는 것.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지키는 것이 전문가인 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한 마리 한 마리 애정을 가지라고 강요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돈을 받고 치료를 하다면 기본은 지키고 전문가로서 해야 할 일들을 하라는 것이다. 물론 내가 다니는 병원의 선생님처럼 소명의식을 가지고 지금도 최선을 다하시는 분들도 많다는 것을 안다. 그들의 노력이 몰지각한 사람들에 의해 빛바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스도
봉투도 모두 다 네 꺼지, 그렇지.
기대고 자는 걸 좋아하는 가끔, 사실 자주 사람같은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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