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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머핀 Feb 22. 2024

2024년 2월의 단상

아주 어릴 적부터, 그러니까 꿈이 뭔지 말할 수 있게 된 때부터, 내 꿈은 작가였다.


어떤 날은 시인이었다가 그다음에는 수필가였다가,

또 어떤  날은 소설을 써보고.


그런 날들이 계속될 줄만 알았는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 꿈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게 되었다.


내 재능이 유리컵 안에서 한 컵을 미처 채우지 못한 채 찰랑이는 물 같다는 걸 깨닫고 나서부터,


그 애매한 재능이 나에게 그 어떤 확신도 주지 못한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애매한 재능에 매달리기에는 가진 것이 너무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부터,


나는 그 꿈을 입에 담지 않았다.


글도 쓰지 않았다.


그렇게 창작이 아니라 남의 글을 옮기는 일이 꿈이 되고 그것을 이뤘는데,


그 업계를 버텨내기에 스스로가 가진 힘이 충분치 못했다.


그래서 곁다리로 우회해서 업계 언저리 어딘가에 자리 잡아서 나름의 정신적 해방을 얻었는데,


이건 먹고살기가 녹록지 않다.


먹고 싶을 때 머릿속에서 생활비 계산기를 두들기지 않고 배달을 시키고 싶고,


엄청 입고 싶은 옷을 살까 말까 사이트를 열 번은 넘게 들락거리면서 최저가 비교를 하고도 몇 달을 장바구니에 넣어 놓기 싫고,


아빠가 처음 가는 장거리 해외여행에 여비 하시라고 턱턱 큰돈도 내놓고 싶고,


이역만리 먼 땅에 사는 언니가 필요하다는 것 다음 달 생활비 걱정 안 하면서 다 사다주고 싶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종종 비싸고 좋은 식사 한 끼 대접해주고 싶은 것뿐인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행복을 경쟁하는 작은 전자기기 안 세상에는 나보다 제대로 못살고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은 느낌이다.


평균만큼 사는 거 쉽지 않은 일이었구나.


사회에서 효용감을 얻으면서 산다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구나.


사람들을 사랑하며 산다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구나.


원래도 잘 알고 있었던 사실들인데, 요새는 몸에 아리게 박힌다.


꿈도 좇지 않고 살아냈는데, 조금 우습다.


조금 감정적인 내 모습이 부끄러워 지워냈던 1월의 단상처럼, 이 글도 지워지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독문과도 벌어먹고 살기 힘든 건 같은데 문창과나 가볼 걸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눈 내리는 밤이다.


이제는 브런치 메인에서도 선택 받고, 인기 있는 글들만 온통 들어차 있다는 것도 조금 서글프다.


아주 상단은 아니었지만, 저 아래 언저리에 설정해둔 키워드에 걸리는 모든 글들이, 잠깐이라도 고민어리게 써내려 간 모두의 글들이 시간순으로 메인에 나열되면 그때의 브런치 감성이 조금 그립다.


애매한 재능의 나같은 글도 앞으로 올 수 있었던 건 그때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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