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공화국의 귀여운 정치학

Korean Kitsch: 한국의 미학, 욕망, 그리고 정체성 ④

by 김무늬

지금까지 한국적 키치의 역사적 흐름을 따라가 봤다.

이제 그 시선으로, 우리 곁의 ‘현재형 키치’를 살펴보려 한다.




우리가 사는 동네에는 모두 적어도 하나쯤의 캐릭터가 있다.

서울시에는 ‘해치’가 있고, 송파구에는 ‘하하’와 ‘호호’가 있으며,

지하철에는 ‘또타’가, 버스에는 ‘셔리’와 ‘벼리’가 있다.

(물론 버스 쪽은 ‘타요’가 훨씬 더 유명하지만.)


8beb11bb454b93108d92f0fe.png 서울시 공식 캐릭터 ‘해치’ (https://www.seoul.go.kr/seoul/symbol.do)



언젠가부터 우리는 매일 누군가의 표정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 지하철에서 만나는 공공 캠페인 포스터,

세금 고지서의 캐릭터들, 심지어 선거 캠페인에도 웃는 얼굴들이 등장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상업의 영역에서는 우리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수많은 캐릭터들이 존재한다.

팝한 컬러의 인테리어 소품들,

한 번쯤 소유하고 싶은 작고 예쁜 문구류들,

그리고 카톡 속 귀엽고도 발칙한 이모티콘들까지.


삶의 희로애락을 대신해 주는 이 작은 얼굴들은

언제부터 우리의 일상을 점령했을까.




한국콘텐츠진흥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캐릭터 산업 규모는 이미 수조 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이 숫자는 단순한 시장 지표라기보다, 감정이 자본으로 바뀌는 속도의 단면처럼 느껴진다.


커머셜 영역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제는 정부와 기업, 학교와 지자체까지 모두 자기 얼굴을 갖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 이미 거의 대부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그 얼굴들은 대체로 귀엽다.

그래야 사람들의 마음에 닿고, 그 마음의 문을 연다.


한마디로, 우리는 감정의 정치학 속에 살고 있다.

웃는 얼굴이 곧 메시지가 되는 사회 —

말 대신 웃음으로 설득하고, 복잡한 설명 대신 ‘귀여운 상징’으로 이해를 구한다.




철학자 헤르만 브로흐(Hermann Broch)는 오래전에 이런 현상을 경고했다.

그는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감정 공식으로 바꾸려는 태도”를 ‘키치적 욕망’이라 불렀다.

브로흐가 말한 ‘키치 인간(Kitsch-Mensch)’은 불안한 현실 속에서 단순한 확신을 원한다.


그 문장을 읽으며 문득 떠올랐다.
한국의 ‘귀여운 공화국’은 바로 그런 욕망 위에 서 있는 게 아닐까.




왜 우리는 모든 걸 이렇게 귀엽게 만들어야 할까.
쓰레기통에도 미소가 있고, 경찰서 앞에도 동물이 있다.
전쟁 위기 뉴스 옆엔 ‘응원 이모티콘’이 붙는다.


귀여움은 불안을 잠재우는 언어다.
정치든 행정이든, 그 언어를 배워야만 사람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진중권은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한국 사회는 전면적으로 키치화된 사회다.”

과장된 표현이지만,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귀여움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서로를 안심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감정의 장치이기 때문이다.


2023년, K-pop 걸그룹 아이브는 자신들의 노래 제목을 아예 ‘Kitsch’라고 붙였다.


It's our time

우린 달라, 특별한 게 좋아

내가 추는 춤을 다들 따라 춰

매일 너의 알고리즘에 난 떠

걷잡을 수 없이 올라 미친 score

그 누구도 예상 못할 19's kitsch


https://open.spotify.com/track/4hbU7BVioG3WnoRNEy5YUf?si=be1eb06e39174fa6


이 노래는 아이러니하게도 키치의 본질을 정확히 노래한다.
다름을 갈망하면서, 그 ‘다름’조차 모두가 공유하도록 만든다.
모두가 똑같이 특별해지는 풍경 —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의 자화상이다.




귀여움은 이제 정치의 언어이자, 사회의 미학이다.
복잡한 문제를 단순한 표정으로 번역하고, 서툰 위로를 감정의 상품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인간적인 진심이 있다. 서툴지만, 서로를 안심시키려는 시도.


앞서 브로흐가 말했듯, “키치는 단순한 거짓이 아니라, 명료함을 향한 욕망”이다.


아마도 우리는 그 욕망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웃는 얼굴을 지운 세상은 왠지 더 불안하게 느껴진다.


빛나지만 피곤한 사회에서, 귀여움은 어쩌면 마지막 남은 완충재다.

웃음은 피로와 불안을 잠시 덮는 포장지다.


감정의 표면 위에서 우리는 여전히 웃는다.

그 표정이 진짜든 연기든 상관없이,
그게 우리가 서로를 믿는 방식이니까.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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