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 수출된 감정과 번역된 진심

Korean Kitsch: 한국의 미학, 욕망, 그리고 정체성 ⑥

by 김무늬

한 독일인 친구가 한국 여행을 한다며, 어디를 가야 할지 추천을 부탁했다.


스트레이키즈와 더 로즈의 팬이자, K-팝의 소식에 누구보다 밝은
이 젊잖지만 에너지 넘치는 의대생 친구에게
한국의 젊음과 환상을 보여줘야만 할 것 같은 묘한 부담감이 들었다.


전통적인 서울의 얼굴이라면 서촌, 북촌, 인사동.
그곳들은 이미 관광책자 속에 너무 잘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그건 누구나 아는 ‘서울’이다.

그보다 진짜 한국, 나의 감각 속에서 살아 있는 한국을 보여주고 싶었다.


홍대, 성수, 강남, 이태원.

어디에서 우리는 한국을 느낄 수 있을까?

내가 아는 서울은 그 모든 곳이지만, 이방인이 처음 만날 한국이라 생각하니

무엇을 소개해야 할지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문득, 나 자신에게도 의심이 들었다.
나는 정말 한국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혹시 익숙함 속에서, 편리함과 미화를 혼동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케이팝은 한국의 다이나믹함을 판다.
그 안에는 진짜 ‘피, 땀, 눈물’이 있다.
케이팝은 음악이라기보다, 감정을 정교하게 연출하는 장치다.


무대 위의 눈물은 언제나 반짝이고, 조명은 감정의 리듬을 정확히 알고 있다.
감동은 예정된 타이밍에 등장하고, 그 장면은 진심처럼 보이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감동에 울고, (그 울음은 진짜다.)
가사를 몰라도, 언어를 몰라도, 눈빛과 리듬만으로 마음이 흔들린다.


나 역시 케이팝의 팬이다.
외국에서 살다 보니 그 영향력과 매력을 실감할 때가 많다.
덕분에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해외 팬들이 보는 한국은 내가 아는 한국과는 조금 다르다.
그건 현실이라기보다, 드라마처럼 연출된 ‘한국의 판타지’다.
마치 내가 중고등학생 시절
일본드라마 속 일본, 헐리우드 영화 속 미국을 보던 것처럼.


그래서 오히려, 한국 문화에 호의적인 친구들과의 대화가 더 어렵다.
그들이 말하는 ‘한국’과 내가 기억하는 ‘한국’은 서로 다른 감정의 나라에 있다.




사회학자 오인규는 이런 현상을 “감정의 번역”이라 부른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의미보다 정서를 먼저 수출한다.


이 감정의 번역은 세계를 향한 기술이다.
복잡한 이야기를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감정의 리듬 하나면 충분히 통한다.
그 리듬은 공감의 언어이자, 한국이 세계와 대화하는 새로운 방법이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기술은 현실을 단순한 감정으로 요약하는 힘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감정은 명확한 형태로 다듬어진다.
감정이 빨리 공유될수록, 그만큼 쉽게 소비되고 잊힌다.
눈물이 상품이 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나만의 감정이 아니다.




서울 강남의 강남스타일 동상 앞에서는
거대한 금빛 팔 아래로 사람들이 같은 포즈를 취한다.
비웃음과 흉내가 동시에 일어나는 풍경이다.

20160504_28163655.jpg 강남 코엑스 앞, 강남스타일 동상.


그 장면 속에서 나는 키치의 본질을 본다.
사랑과 조롱, 진심과 모방이 한 화면 안에 공존하는 장면.


키치는 복잡한 감정을 가장 단순한 형태로 연출하는 기술이다.
그것은 감정을 조율하고, 현실을 ‘보이는 감정’의 무대로 바꾸는 미학이다.
K-컬처는 이 오래된 감정의 기술을 전 세계가 이해할 수 있는 속도로 진화시켰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비슷한 리듬에 맞춰 같이 감동하고, 같이 눈물짓는다.
그건 세계가 한국을 사랑하게 된 이유이자,
한국이 스스로의 감정을 균질화시킨 과정이기도 하다.




그 단순화된 감정은 이제 공간 속에 구현된다.


서울 한복판에는 '광야'가 존재한다.

SM엔터테인먼트가 성수동에 만든 그 '광야'에 들어서면 음악보다 빛과 냄새가 먼저 다가온다.


공간-이미지3-1.jpg 광야@서울, 성수동


포토카드, 영상, 향수, 체험 공간.
모두 감정을 저장하고 재현하는 장치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감동을 소비한다.
감정을 ‘갖는’ 대신, 감정을 ‘구매’한다.


조명 아래에서만 감동하고,
무대 위에서만 사랑을 고백하고,
댓글 창에서만 공감을 표현하는 사회.
그건 감정이 아니라, 감정의 시뮬레이션이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오랫동안
“진심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기술”을 다듬어왔다.
그 기술은 때로 우리를 감동시키고, 또 어떤 날엔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가끔, K-컬처의 반짝임을 보며 생각한다.
그 빛은 세계를 비추지만, 동시에 우리를 잠시 눈이 멀게 한다.




우리가 세계에 수출한 것은 언어가 아니라, 감정의 형식이다.


그 형식이 진심을 대신하게 되었을 때,
감정은 편리해졌지만 조금은 얇아졌다.


그 장면들 속에서 나는, 한국 사회의 놀라운 감각을 본다.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 불안한 시대를 견디는 기술.


그것이야말로 한국식 키치의 가장 섬세하게 성장한 얼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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