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ital Dance: 디지털 시대의 나와 기술, 그리고 공존 ①
나는 이 브런치북 시리즈에서, 독일에서 공부하며 배우고 고민한 것들을
큰 주제 아래 엮어, 일종의 에세이이자 컬럼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 사이에서 내가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배워왔는지를 따라가며 말이다.
1부 [Korean Kitsch: 한국의 미학, 욕망, 그리고 정체성] 에서
나는 ‘감정의 표면’을 따라 걸었다.
키치라는 단어를 통해 한국의 일상 속 감정이 어떻게 연출되고 소비되며,
일종의 공통된 미학으로 작용하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의 감정 역시 그 구조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 새로 시작하는 이 시리즈 [Digital Dance: 디지털 시대의 나와 기술, 그리고 공존]에서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또 다른 틀,
‘디지털리티(Digitalität)’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하루의 시작은 언제부터인가 나의 의지가 아니라
어딘가에서 울리는 알람 소리로 정해지게 되었다.
눈을 뜨기도 전에 진동이 몸에 닿고, 빛이 스크린을 가르며
나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미 세상 속으로 호출된다.
손가락은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고,
화면은 나를 향해 쏟아지는 정보와 메시지의 빛으로 가득 찬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미 대화 속에 있고,
아직 아무 데도 가지 않았는데, 이미 어딘가로 연결되어 있다.
그럴 때면 문득 생각한다.
나는 깨어난 것일까, 아니면 단지 접속된 것일까.
기술의 세계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나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안에는 내 몸의 속도를 바꾸어 놓는 보이지 않는 리듬이 있다.
그 리듬은 나를 강제로 끌어당기지 않는다.
대신 부드럽게, 거의 감각되지 않을 만큼 매끄럽게 나를 움직이게 한다.
나는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고 믿지만,
그 믿음조차 이미 기술이 설계한 움직임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내가 독일에 와서 가장 많이 '다름'을 느낀 지점은 '디지털화(Digitalisierung)'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한국에서의 기술의 변화와 그것들에 대한 받아들임은 수용과 불수용의 선택이 불가능한 것들이었다.
그저 모두가 그 빠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뒤쳐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차있었고,
나 역시 새로운 기술과 시스템, 그 변화들을 쫓아야 한다는 맹목적인 믿음이 있었고,
또 그것을 쫓아가지 못하는 개인의 능력에 좌절했다.
한국에서의 '새로운' 기술들과 '개발 혹은 발전'은 긍정적인 의미의 것들이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달랐다.
너무나 극심하고 극명하게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왜 우리는 새로운 기술이 필요한가"
"왜 디지털화가 되어야 하는가"
이 질문들은 일상 속의 대화처럼 오갔다.
나는 그 대조가 어쩐지 불편했다.
빠름은 나에게 익숙한 언어였고, 느림은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머리로는 그 비판과 지적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그것이 일종의 불평처럼 받아들여졌다.
산업화시대의 헤게모니를 쥔자들이 세상의 변화와 도전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혹은 그 변화를 지연시키기 위해 하는 투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생각이었다.
세미나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나는 자주 이 인식의 간극과 마주했다.
'디지털리티'의 비판적인 수용이 사회의 발전을 더디게 만든다는 '개발도상국' 출신의 '나'와
모든 변화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특히나 '디지털화'는 극심한 인간 소외를 불러일으키므로
무조건 천천히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주장의 'EU국가' 출신의 그들.
이 차이는 단순히 맞고 틀림의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의식의 출발점이 달랐다.
나는 그 시작과 끝이 궁금했다.
이러한 고민 중에, 한 세미나에서 나는 반갑게도 철학자 한병철의 책을 만났다.
그는 『피로사회』에서 말했다.
우리는 더 이상 외부로부터 착취당하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를 착취한다.
멈추면 불안하고, 느려지면 죄책감이 든다.
쉬는 시간마저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시대, 우리의 몸은 점점 기계의 속도에 맞춰 재조정된다.
이 시대의 리듬은 ‘피로’다.
피로는 부작용이 아니라 하나의 운동 방식이 되었다.
우리는 쉬지 않기 위해 피로하고, 그 피로 속에서만 존재를 증명한다.
밤이 되어 노트북을 덮어도 생각은 멈추지 않는다.
나는 쉬면서도 일하고, 연결을 끊으면서도 접속되어 있다.
누구도 나를 재촉하지 않지만 나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몰아붙인다.
멈춰도 괜찮을 텐데, 멈추면 밀려날 것 같아서 나는 여전히 움직인다.
그 불안과 피로의 경계에서, 나는 문득 묻는다.
나의 리듬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지금, 춤추고 있을까.
아니면 조용히 조종당하고 있을까.
이 질문이 나의 춤을 시작하게 했다.
피로의 리듬 속에서, 나는 오늘도 춤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