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ital Dance: 디지털 시대의 나와 기술, 그리고 공존 ②
나는 지난 글에서 물었다.
우리는 지금 춤추고 있는가, 아니면 조용히 조종당하고 있는가.
"춤추다"
춤은 통제와 즉흥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움직임이다.
이곳에 와서 친구들과 크고 작은 파티에 참여하면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참으로 자연스럽고 즐거운 일이라는 걸 새삼 알게되었다.
각자 문화에 따라 몸을 흔드는 부위와 리듬의 속도는 다르지만, 각자의 춤이 있었다.
정답이 없이, 그냥 누군가는 엉덩이를 흔들기도 하고 머리를 흔들기도 하는, 각자의 춤.
그리고 상대방의 춤에 화답하기도 하고, 함께 방향과 리듬을 서서히 맞춰나가기도 하는 그것.
나는 딱히 ‘춤’을 즐기지도 않고 ‘댄스’의 세계를 잘 알지도 못하지만,
내가 한국에서 경험한 춤은 정해진 박자와 정해진 군무를 정해진 타이밍에 추는 것이었다.
춤 레슨을 듣는다면, 그 정해진 정답의 춤이 있고, 우리는 그 춤을 함께 추어야만 한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리듬과 기술을 따라 멋지게 추어야 하는 춤.
이 노래엔 이렇게 춤춰야만 하는 그런 춤 말이다.
레슨에는 언제나 ‘정답의 춤’이 있었고 우리는 그 춤을 정확히 따라야 했다.
그래서일까.
리듬을 듣고 내 몸이 자연스레 반응하는 그 자유가,
나에게는 오히려 어려운 일이었다.
디자이너로 일하며, 나는 종종 스스로를 ‘오퍼레이터’라고 느꼈다.
공간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일보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다루고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일이
점점 내 직업의 본질이 되어갔다.
기술을 다루는 능력이 곧 디자이너의 재능처럼 여겨질수록
나는 기술을 따라가기 급급한,
어떤 시스템의 부속품이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영화 속 찰리 채플린처럼,
기계의 리듬에 맞춰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는 사람.
기술이 이끄는 속도에 맞춰 만들어지는 디자인,
기술의 한계만큼만 상상할 수 있는 디자이너.
그건 창작자라기보다 오퍼레이터였다.
AI가 발전하면서 이 감각은 오히려 더 깊어졌다.
기술은 우리를 대신하지 않지만,
우리를 점점 닮아가고 있었다.
이런 감각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독일의 미디어학자 신타로 미야자키(Shintaro Miyazaki)는
우리가 이미 기술의 리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독일의 미디어학자 신타로 미야자키(Shintaro Miyazaki)는
『Digitalität tanzen!』에서 ‘콘트라 탄츠(Kontra-Tanz)’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영어로는 카운터 댄스(Counter Dance), 즉 반(反)춤이다.
그는 기술의 시대에기술이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인간의 사고와 감각, 행동의 리듬 속으로 스며들어있는 상태에 대해 논한다.
우리는 더 이상 기술을 사용하는 존재가 아니다.
기술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하나의 공동 리듬의 일부가 되었다.
문제는 그 리듬이 누구의 리듬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움직인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이미 누군가의 설계된 박자 위에서
춤추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야자키가 말한 반(反)춤은 그 리듬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안에서 다른 움직임을 발명하는 일이다.
그는 말한다.
“기술의 리듬을 거스르되, 기술과 함께 춤추라.”
그는 이를 ‘코몬주의적 협력성(KommOnistische Kooperativität, KOK)’이라 부른다.
이 말은 얼핏 보면 Kommunismus(공산주의)에서 온 단어처럼 들리지만,
미야자키는 그 어원을 의도적으로 비틀었다.
‘Kommunismus(공산주의)’의 자리에 ‘Commons(공유)’와 ‘Communication(소통)’을 겹쳐 넣어,
기존의 정치 이념을 언어적으로 전환한 철학적 유희로 만든 것이다.
그는 말한다.
이 새로운 ‘코몬주의’는 체제를 전복하려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기술과 인간이 서로의 리듬을 감각하며 협력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라고.
기술을 거부하지 않고, 그 속에서 다른 리듬을 발명하는 태도.
미야자키에게 ‘반(反)’은 싸움이 아니라 변주이며,
저항이 아니라 공존의 리듬을 다시 배우는 일이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나의 하루를 떠올렸다.
스마트폰의 진동, 자동완성된 문장,
그리고 예측 가능한 결과로 가득한 디자인 툴의 화면.
내가 기술을 조정하고 있다고 믿지만,
그 속도와 질서는 이미 기술이 만든 프레임 안에서 흘러간다.
그렇다면 나의 반춤은,
그 틀을 거부하기보다 그 안에서 나만의 리듬을 감각하는 일이 아닐까.
디자인 작업을 할 때 나는 종종 이 반춤을 경험한다.
AI 도구의 예측 불가능한 결과 속에서 가끔은 의도치 않은 아름다움을 마주한다.
그건 마치 즉흥적인 안무처럼,
기계와 내가 서로의 리듬을 조율하며 만들어내는 움직임이다.
기술이 나의 연장선이 아니라 함께 춤추는 파트너가 되는 순간.
그 미세한 균형이 바로 미야자키가 말한
Kontra-Tanz(반춤)의 장면일 것이다.
결국 반춤이란, 기술과 인간이 서로의 박자를 듣는 일이다.
기술을 끄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함께 조율하는 것.
서로의 속도를 감각하며 공존의 리듬을 다시 배우는 일.
나는 그것을 ‘공동의 박자’를 회복하는 일이라 부르고 싶다.
기술은 이제 완전히 우리 안으로 들어왔다.
피로도, 효율도, 관계도 모두 그 리듬 속에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다른 스텝을 만들 수 있다.
그것이 ‘반(反)’의 힘이다.
멈추지 않되, 다르게 움직이는 것.
그건 기술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함께 살아가는 또 다른 방식이다.
완벽해 보이는 세계 속에서도
우리가 함께 추는 반(反)춤은 가능하다.
서로의 속도를 감각하는 순간,
그때 비로소 새로운 리듬이 시작된다.
이 글은 Shintaro Miyazaki의 『Digitalität tanzen! (2022)』에서 제시된 ‘Kontra-Tanz’ 개념을 바탕으로,
디지털 시대 속 기술과 인간 사이의 새로운 리듬을 사유한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