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Korean Kitsch: 한국의 미학, 욕망, 그리고 정체성 ⑧

by 김무늬

이 브런치북의 1부인 'Korean Kitsch' 시리즈는 사실, 나의 자기 변호글이었다.


이 글의 기초가 되는 소논문(Hausarbeit)을 쓰던 당시, 나는 정체성의 혼란 속에 있었다.

마치 사춘기 청소년처럼 말이다.


30년 동안 한국에서 내가 쌓아올린 기준과 사회적인 관계들이 ‘독일’이라는 새로운 시스템 속에서 무너져내렸고,

그 불안이 나를 자기 방어 속에 가두고 있었다.


내가 경험했던 디자인의 세계에서 ‘상업적 감각’은 재능의 기준이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그 감각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동료들과 조금 다른 길을 선택하기로 했고, 독일로 떠나왔다.


그 길 위에서 예상과 다르게,

'키치'하고 '상업적'인 디자이너이자 작가라는 평가를 듣는 것은 나를 자꾸만 괴롭게 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환경을 되돌아 보았다.

나는 왜 이런 생각들을 하는가.

무엇이 나를 이루었는가.

그리고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우리가 하찮게 여겨온 것들이야말로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의미 있는 세계였다는 것을.


그렇게 이 글의 주제가 정해졌다.

"네가 하는 것은 작품이고, 내가 하는 것도 작품이다"랄까.

그 말로부터 토론이 시작되었고, 글이 자라났다.




독일에 와서 내가 가장 자주 쓰는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다.


왜 나는 이곳에 있는가.

무엇을 위해 이곳에서 투쟁하는가.

나는 왜 나의 존재의 이유를 증명해야만 하는가.

따위의 고민이 나를 괴롭힐 때 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들은 나를 성장시키고 있다고.


나는 이 글을 쓰며, 이 마음가짐의 근원을 찾으려 했다.




이 시리즈를 시작할 때,
나는 한국의 거리에서 반짝이는 표면들을 따라 걸었다.
이발소의 그림, 결혼식장의 조명, 캐릭터의 얼굴,
그리고 인스타그램 속의 화려한 공간들.


그 모든 장면은 어딘가 과했고, 너무 친절했고, 때로는 피곤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과함 속에서 언제나 어떤 다정함을 느꼈다.


키치는 언제나 이상한 모순 안에 있다.
가짜이지만 진심이고,
싸구려이지만 정성스럽고,
피로하지만 동시에 위로가 된다.


그래서 나는 이제 키치를 단순히 ‘유치함’이라 부르지 못한다.
그건 이 시대의 감정이 살아남는 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헤르만 브로흐는 말했다.
“키치는 진실보다 진실처럼 보이려는 욕망이다.”


나는 이 문장을 오랫동안 의심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읽는다.
‘진실처럼 보이려는 욕망’이야말로 사람이 세상 속에서 견디기 위한 최소한의 연기일지도 모른다.


한국의 키치는 바로 그 연기의 기술 위에 서 있다.
감정을 모방하면서, 동시에 그 모방으로 감정을 만든다.
그건 위선이라기보다, 감정의 생존 전략이다.


너무 빠르고 불안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진심보다 형식을 먼저 배운다.
하지만 형식을 따라하다 보면 어느새 그 안에서 진심이 자라난다.
그게 내가 본 한국의 키치다.




나의 소논문 마지막 장에는 이렇게 썼다.


한국의 키치는 부끄러움과 위로, 욕망과 피로의 사이에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정직한 표면이다.


나는 여전히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부끄러워하는 것들 속에는 늘 가장 인간적인 욕망이 숨어 있다.
좋아 보이고 싶은 마음, 사랑받고 싶은 마음, 무너져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


키치는 그 마음들을 꾸밈없이 드러내는 언어다.
그건 진짜보다 덜 진짜여서가 아니라, 너무 인간적이어서 가짜로 보이는 언어다.


우리는 그 언어로 서로를 위로하고,
그 언어로 자신을 다시 세운다.




어쩌면 이 글의 처음부터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단 하나였는지도 모른다.


키치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살아남은 감정의 흔적이다.


그 반짝임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사람이다.
진심이 완벽하지 않아도,
그 진심을 흉내 내는 일조차 다정할 수 있다는 걸
나는 이제 조금은 믿게 되었다.


+


1부를 마무리하며, 나는 다시 묻는다.
왜 우리는 이렇게 반짝이는 것들에 끌리는가.
왜 이토록 꾸며진 감정에 위로를 받는가.


아마도 그건,
그 꾸밈조차 우리가 견디기 위해 만들어낸 가장 인간적인 예술이기 때문일 것이다.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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