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야생 Sep 27. 2021

아이들에게 "엄마 이름 불러" 이렇게까지 말한 이유

존중하는 부모-자식 관계, 위계 구조를 허물 때 가능하지 않을까요

"엄마, 추석 선물이야!"

"무슨 선물?"

식탁 위에 돌돌 말린 도화지가 놓여 있다. 이게 뭐지? 노란 고무줄을 풀고 도화지를 펼쳐 보니... 내가 웃고 있었다. 와! 똑 닮았다! 



미술 시간에 엄마 얼굴 스케치한 아들
                               

▲  셋째 막내아들이 작년 미술 시간에 그린 연필 스케치, 볼 때마다 마음이 환해집니다. ⓒ 박미연


작년 어느날 아침, 우리집 셋째인 막내 아들이 '엄마 사진 없냐'고 물었다. 미술 시간에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프로필 사진으로 쓰고 있는 것을 뽑아 가라고 했다. 그리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그런데 불현듯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된 막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엄마, 작년에 내가 엄마 그린 것, 보여주고 싶었는데."

"어디 있는데?"

"미술 선생님이 가지고 있어."

"그럼 달라고 해."

"에이, 어떻게 그래."


막내가 나를 어떻게 그렸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미술 선생님 손에 있는 것을 어찌하리. 막내가 미술 선생님에게 선뜻 찾아가기고 그렇고, 선생님이 1년이 지난 학생들의 수행 평가 자료를 보관하고 있을지도 의문이고. 아쉬워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또다시 새까맣게 잊어버렸는데... 아이는 그것을 마음에 품고 있었나 보다. 미술 선생님을 찾아갈 줄이야. 다행히도 선생님은 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관하고 계셨다고 한다. 


도화지 위에서 아들의 손을 통해 재탄생한 '나'를 보면 볼수록 기분이 왜 이렇게 좋은지,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애들이 엄마 보고 미인이라고 하지?"

"응, 애들이 감동했대. 엄마 사진을 가지고 와서."

"그때 다들 엄마 사진 스케치 하는 것, 아니었어?"

"아냐, 애들은 대부분 연예인 사진 가지고 왔지."

"아, 진짜? 엄마 사진 가지고 가서 부끄럽지 않았어?"

"아니! 난 엄마를 그리고 싶었는데."


신통방통하다. 어떻게 김정일도 무서워한다는 중학교 2학년 아이의 마음이 저럴 수 있을까. 누구 자식이지? 첫째랑 둘째랑은 좀 다르다. 우리집 큰 애는 막내를 보고 종종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우리집에서 이런 애가 태어났을까?!"


막내가 태어났을 때, 둘째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고 나는 39살이었다. 육아에서 한 숨 돌릴 즈음, 또다시 육아의 늪에 빠지게 된 것이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들었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셋째는 첫째와 둘째랑은 좀 다른 '엄마'를 만난 것이다. 


첫째와 둘째에게 엄격했다면, 셋째에게는 느슨했다. 첫째와 둘째에게는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썼다면, 셋째는 더 많이 방목했다. 한 마디로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엄마의 역할과 의무에 매달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반대로 특히 첫째 아이에게는 사회적 기대에 발맞춰 엄마 역할을 제일 많이 했다는 말인데... 



엄마의 역할 대신, 이제는 아이들의 친구로!


사실 엄마로서 첫째 딸과의 관계에서 실패한 기억이 있다. 딸이 대학에 들어가 여유가 생겼을 때 양화진에 가자고 하더라. 싫다고 했다. 같이 영화를 보고 쇼핑을 하자고 그러더라. 그것도 싫다고 했다. 그랬더니 딸은 더 이상 같이 무엇을 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그때의 마음이 해석이 안 되었다. 왜 싫었는지 말이다. 죄의식과 씁쓸함만 가슴에 남았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일상에서 엄마의 역할에 너무 지쳐 있었다는 것을. 일상 외에 여행이나 쇼핑, 문화생활까지 엄마의 역할을 해낼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올해 2월, 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10살도 채 안 된 세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였다. 세 아이들이 눈을 뜨자마자 잠이 들 때까지 얼마나 엄마를 불러대는지,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가 너무 힘들었단다.


그래서 10분 동안 엄마 부르지 않기 놀이를 했는데. 그 새를 못 참고 엄마를 부르더라는 이야기였다. '엄마'라는 게 그냥 흘려들어도 되는 말이라면, 그렇게 힘들 이유가 없을텐데... 대부분은 요구가 뒤따라오는 선행어다. 


나도 이제 엄마라고 불리는 게 피곤하다. 20여 년 동안 너무 많이 들었고, 이제는 그 역할에 숨이 막힌다. 딸과의 관계에서 실패한 것도 엄마의 역할에만 너무 매여 있었기 때문 아닐까.


그런데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도 쉽지 않다. 아이들이 다 컸는데도, 엄마로 살며 아이들과 맺었던 관계와 습관에 몸이 저절로 반응한다. 아이들 얼굴 표정, 말투, 행동 하나하나가 걱정거리요, 잔소리거리가 되기 일쑤였다. 아이들은 당연히 엄마가 자기들을 통제한다고 느꼈을 거고, 나는 그런 내가 피곤했다.


큰애가 사춘기였을 때, 그의 눈빛을 통해 이제는 엄마가 자신을 깊이 존중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런데 그것이 잘 되지 않았다. 엄마와 자녀라는 위계 관계에서 아이들을 한 인격체로 깊이 존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2년 전, 아이들에게 '미연아!' 하고 내 이름을 부르라고 했다. 엄마 자녀의 관계가 아니라, 친구로 평등하게 거듭나자고 말이다. 그것이 안 되면 '야생'이라는 나의 별명을 부르라고 했다. 처음 몇 번 그렇게 부르더니, 지금은 그냥 '엄마'라고 부른다.


그런데 지금의 '엄마'는 과거의 '엄마'랑 똑같은 것을 담고 있지 않다. 우리는 친구 선언 이후 많은 부분에서 달라졌다. 중학교 2학년 아들이 수없이 고치고 그리기를 반복하여 엄마의 얼굴을 스케치한 것, 이게 어디 보통 일인가.


자녀들과 잘 지내는 법, 엄마의 자리에서 내려와 친구가 되는 것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수박에 이어 포도까지... 그저 한숨만 나옵니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