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야생 Feb 11. 2023

새싹처럼 어린이가 움트기를

영덕 자연생활 교육원에서 둘째 날, 아침 산책 중 길어 올린 소망

아침 산책을 다녀왔다. 어제 내리던 비가 밤새 눈으로 바뀌었나 보다. 숙소 옆쪽에 세워놓은 절 샘네 자동차 지붕 위에 눈이 찔끔 쌓여있다. 포장길이 미끄럽다. 눈이 녹아 얼음이 된 것인지, 서리가 내린 것 같은 모양이다.


물웅덩이가 하얗게 얼음으로 덮여있다. 그냥 지나갈 수 없지. 우지끈 밟아본다. 옛날 어릴 적 생각이 난다. 얼음을 짓궂게 밟아 깨트리고 안 깨지면 미끄럼을 탔었다. 4,50년 지난 지금의 내 몸이 그것을 어찌나 선명하게 기억하는지,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기 영덕에 오면 날아갈 것 같다. 어른으로서 져야 할 책임, 의무, 역할에서 벗어난다. 그동안 허겁지겁 사느라 돌보지 못한 마음이 되살아난다. 어느새 스스로 소녀인 줄 착각한다. 거울을 보면 금방 깨어질 환상. 소녀의 얼굴은 사라지고 50대 중년의 얼굴이 나를 바라본다.


예수가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라고 했는데. 어른이 되면 천국을 잃어버리는 걸까. 어린아이와 같다는 것은 어떤 걸까. 자연 그대로 인간 본연의 모습일까. 그것을 되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화로 덧입혀진 어른의 마음을 벗어야 하는 걸까.



만물은 은밀하게 봄맞이 준비로 분주하다. 겨우내 얼어있던 땅이 녹아 푹신해졌다. 온갖 식물들이 지면으로 잘 올라오도록 스스로 땅을 고르고 있는 듯하다. 산딸기 가지에 빨갛게 귀여운 새싹이 올라왔다. 큰 나뭇가지들도 열심히 물을 길어 올리고 있는 듯, 푸르스름한 빛깔을 띄고 있었다.


새싹처럼, 나의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어린이의 마음이 겨울잠에서 깨어났으면 좋겠다. 어린이와 같이 되면, 봄의 향연 속 천국을 실컷 누릴 수 있겠지.

작가의 이전글 사회초년생인 딸에게 못다한 말을 고백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