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가 싫다고?

같은 말, 다른 이야기

by 야생

"사과 싫어하는 사람, 정말 이해가 안 돼."

저만 이렇게 옹졸하고 자기중심적인가요?


저희 집은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아침 밥상에서 밥이 사라졌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더군요. 제가 일본에서 애를 낳고 거기서 키웠거든요. 일본 사람들은 아침에 밥을 먹지 않고, 빵을 먹는답니다. 물론 일본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제가 아는 주변의 친구들이 다 그랬다는 거지요. 그녀들은 빵 한 조각 더 싸게 사려고 자전거 타고 30분 거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다녀온답니다. 빵이 아침 주식이니까 그런 일이 벌어지겠지요.


한국에 와서도 쭉 그렇게 아침을 빵으로 먹었어요. 아침까지 밥을 먹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어요. 그나마 아침에 밥을 차리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 긴 세월 곱하기 365일 곱하기 3을 해보세요. 눈이 뱅뱅 돌지 않나요. 저는 그것의 3분의 1을 덜 차린 거죠.


아침에 빵은 양보할 수 없는 카드였습니다. 우리 둘째가 한때, 빵이 싫다고 밥을 달라고 하더군요. 저에게 그 요청은 생각해볼 만한 가치도 없는 거였어요. 아침에 밥을 차리다니! 우리 집 아침 식탁에는 빵, 과일, 달걀, 요구르트, 우유, 커피가 올라왔죠. 이 정도면 탄수화물, 단백질, 비타민, 무기질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요. 밥을 차려주지 못하는 미안함은 들지 않았어요. 식구들 한 사람 한 사람 취향과 식성에 맞출 수도 없고요. 내 편한 식단으로 밀고 나갔던 것이지요.


이렇게 사계절 아침을 빵 중심으로 먹다 보니, 과일도 365일 먹게 되더라고요. 계절 따라 과일이 바뀌기도 하지만, 제일 만만한 것이 사과더군요. 사과는 저장성이 좋아서 그런지, 수확기 바로 직전을 제외하고는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는 과일이죠. 날마다 한 알씩 먹는 사과가 몸에 그렇게 좋다고 하니, 1년 내내 사과를 먹는 것에 우쭐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죠.


그런데 사과가 싫다니요? 20여 년 동안 아침 식탁에 올랐던 사과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이 생긴 거예요. 바로 아이들이죠. 이제 사과가 지겹다네요. 첫째는 얼마 전 사과를 먹고 토한 적이 있어요. 토한 이유가 사과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후로 큰애는 사과를 먹지 않더라고요. 사과를 보면 속이 메슥거린다나요. 둘째는 지난해 가을학기 자취하며 과일 구경하기가 힘들었는지 아무 불평 없이 먹고 있고요. 문제는 셋째입니다. 사과를 먹기 싫다고 한지는 꽤 오래되었어요. 그런데 나는 계속 사과를 밀어붙였죠.


며칠 전이었어요. 막내가 개인 접시에 담긴 사과를 보고 먹기 싫다는 거예요. 저는 기분이 상했어요. 그랬더니 막내가 그러더라고요.

"내가 사과가 싫다고 한 거지, 엄마가 싫다고 한 건 아니잖아."

와! 제가 할 말을 잃었죠. 그리고 감탄까지 한 거예요. 어떻게 이렇게 콕 찔러서 말할 수 있죠? 막내가 사과가 싫다고 한 말에 저는 제가 거절당한 느낌이 들었었거든요. 우리 아들 똑똑이네. 저는 아이의 말에 마음을 추스를 수가 있었죠. 그런데 그 일이 계속 마음에 걸려있는 거예요. 사과가 싫다고 하는 아이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죠.


라떼는...이 문제인 거죠. 어떻게 이 귀한 사과를 싫어할 수 있지? 저는 경기도 출신이랍니다. 제가 어릴 때 저희 동네는 사과나 배를 재배하는 농가가 없었지요. 아마 나무에서 열리는 과일은 경기도보다 날씨가 더 따뜻한 곳에서만 가능한 것 같아요. 그래서 사과 구경은 일 년에 딱 두 번, 설이나 추석 제사상에 올라올 때뿐이었죠. 그렇게 귀한 대접을 받았던 사과였는데... 제 마음속에서는 아이들을 비난하는 마음이 있었던 거예요. 쟤네들이 호강에 겨워서 저러지. 그래서 저는 그들이 아무리 사과가 지겹다고 해도 그들의 말이 들려오지 않았던 거죠.


비로소 깨닫게 되네요. '사과'라는 말이 누구나에게나 똑같은 사과가 아닌 것을. 아이들에게 '사과'는 365일 먹는 흔하디 흔한 것이요, 이제는 물린 사과죠.(세분하면 아이들 셋의 '사과'도 다 다르겠죠.) 나에게 '사과'란 제사상에나 올랐던 귀하디 귀한 몸이요, 언제 먹어도 물리지 않는 사과인 거고요. '사과' 하나만 봐도 그것을 둘러싼 이야기가 이처럼 제각각이라는 게 새삼 놀랍습니다. 나의 '사과'를 아이들에게 강요했던 죄, 이제야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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