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서프라이즈 덩어리야!

달콤쌉살한 아들 성장기

by 야생

서프라이즈!

아들, 엄마가 이렇게 편지 쓸 줄 몰랐겠지?

너의 탄생도 이렇게 서프라이즈였단다.


너도 알잖아. 형아가 어렸을 때 큰 병을 앓았던 거. 엄마는 형이 안쓰러웠어. 형을 보살펴줘야 되겠다는 마음이 커서 셋째를 낳는다는 건 꿈도 못꾸었어. 게다가 형아는 벌써 8살이었고, 일본에서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때였잖아. 네가 태어난 것이 말이야. 가슴이 얼마나 벌렁거렸던지.




너는 서프라이즈 덩어리야! 처음부터 지금까지. 난 그래도 누나와 형을 키운 베테랑 엄마잖아. 나름 너를 누구보다도 잘 키울 자신이 있었어.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를 키우는 게 제일 힘들었어. 네가 너무 특별했기 때문이지. 형과 누나를 키웠던 노하우가 아무 쓸모없게 되어버린 거야.


하루는 젖먹이인 너를 아빠가 안고, 우리 다섯 식구가 뒷산에 올라간 거야. 어느 순간 너는 울기 시작했지. 배가 고픈가 해서 산 중에서 너에게 젖을 먹였어. 그래도 안 그치는 거야. 거기다 산속 길이 낯설어서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몰라했지. 그때 아빠가 너를 안고 어디론가 사라지더라. 우리에게 아무 말도 없이. 어찌어찌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서 우리 집 베란다를 바라보니, 아빠가 넋빠진 얼굴로 밖을 내다보고 있더라. 나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눈치였어. 그때 네가 지쳐서 잠이 들었는지, 아파트 떠나가라 울었는지 기억이 잘 안나. 네가 아파트 떠나가라 울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


한 번은 주말이었는데 네가 하도 울어서 아빠에게 유모차 태워서 바깥 구경 좀 시키라고 했지. 울음을 그치려나 싶어서 말이야. 나의 예상이 빗나갔어. 5,6월쯤이었던 것 같아. 열어둔 창문으로 너의 고함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가 들려오는 거야. 에이고, 동네 사람 민망해서 원. 네 아빠의 마음은 어땠겠니.




너는 고난이도 문제였어! 그 어려움을 풀어가는 데 한몫했던 게 뭔지 아니? 네가 너무 잘 생겼다는 거야. 고슴도치 자식 사랑인가. 그날은 비가 주룩주룩 내렸어. 아마 장마 초입이었을 거야. 누나 형들은 학교 가고 너와 나 단둘뿐이었지. 너는 여느 때처럼 나를 놓아주지 않는 거야. 너는 나의 등딱지였거든. 밥도 못해먹을 정도로. 내 생전 반찬 배달 서비스를 받았던 것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 아무튼 그날 넌 내 등에서 떨어지지 않았단다. 너랑 둘이 씨름하는 것이 답답하고 힘들었어. 그래서 비가 주룩주룩 오는데도 밖으로 나갔지.


아파트 정자에 어르신들이 둘러앉아 보슬보슬 햇감자를 드시고 있더라. 나는 넉살 좋게 그 속에 끼어들었어. 감자도 얻어먹고 좋았는데, 그 어르신들이 그러더라. 늙은 소가 애기도 잘난다고. 너는 이 말이 칭찬으로 들리니, 어떻게 들리니? 난 참 어이없게도 그 말을 칭찬으로 들었다는 것 아니니. '애기도 잘난다'는 말이 '늙은 소'를 압도한 거야. 기분까지 좋았어. 나를 '늙은 소'라고 불렀는데도 말이야. 이게 말이 되니? 내가 없어질 만큼 네가 자랑스러웠나봐. '애기도 잘난다'는 말을 '잘생겼다'는 말로 제멋대로 해석하고 말이야.


넌 우리를 닮지 않았어. 지금도 그러잖아. 넌 엄마 아빠 아들 아닌 것 같다고. 병원에서 바뀐 것 아니냐고. 난 진심으로 의심했었어. 그런데 너의 새끼발가락이 나랑 닮은 걸 보고 안심했어. 진짜야. 팔뚝도 나 닮아서 조금 굽었잖아. 다행이야, 그런 구석이나마 닮아서. 알지? 생김새에서도 네가 서프라이즈라는 걸.



어린이집에 다닐 때 넌 터프가이였어! 하루는 어린이집에서 하원하고 밖에서 놀 때였어. 네가 친구에게 솔방울을 던진 거야. 아토피로 피부가 약한 그 아이의 입 주변에서 피가 나더라. 모두가 깜짝 놀랐지. 그 엄마가 나중에 나한테 그랬어. 어린이집에서 너 때문에 힘들어하는 애가 몇 있다고. 가슴이 싸해지는 게 초등학교 들어가면 선생님에게 불려 가는 일이 많겠군, 마음 준비를 했었어. 다행히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지만. 넌 성격면에서도 서프라이즈였지.


사춘기가 다가오면서,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 점잖은 너의 형 사춘기도 만만치 않았거든. 점잖지 않은 너의 사춘기는 몇 배로 세게 올까 긴장됐지. 너의 사춘기는 빨리 왔어. 초등 고학년부터 슬슬 시동이 걸리기 시작했지. 짜증내고 소리 지르고, 나도 지지 않고 짜증내고 소리 지르고. 사춘기가 이기나, 갱년기가 이기나 내기라도 하듯 말이야. 그래도 그때는 형을 겪어본 경험이 도움이 되더라. 이것 또한 지나갈 것이라는 여유가 있었지. 네가 막내의 특권을 누렸던 것도 사실이고. 너를 뺀 나머지 식구들이 그냥 그냥 귀엽게 봐준 거지. 그때 네가 식구들에게 쓴 편지 한번 읽어볼래?


우리 가족에게

안녕?

내가 오늘 편지 쓴 이유는 가족에게 양해와 감사를 하고 싶어서 썼어.

항상 나는 감정 기복이 심해서 쉽게 화내고 울컥해.

그래서 짜증내고 화낼 수도 있어.

물론 사춘기가 벼슬은 아니지만...

나도 노력할게.

항상 나는 감사하고 있어.

내가 아무리 화내고 짜증 내도 잘 받아주는 가족들에게 말이야.


2년 전 편지잖아. 네가 중1 올라갈 때. 이 편지를 받을 때만 해도 네 사춘기는 점점 심해질 거라고 생각했었어. 근데 지금 넌 솔직히 사춘기 소년이라고는 믿기지 않아. 지금의 너를 표현하자면, 솜사탕?!



아! 역삼각형 몸매에 뼈대 굵은 우리 아들 등에 기대면 든든하고 따뜻하고 달콤하고... 우리 아들 입술에 뽀뽀하면 부드럽고 폭신하고... 우리 아들 아니면 엄마가 어디서 이런 호사를 누릴꼬. 그동안 우리 아들 키우느라 힘들었던 것, 다 날아가네.

아들,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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