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휴학할래!

기다림의 끝도 희망입니다

by 야생

대학 4학년, 취업 문제가 숨통을 조여 오는 때죠. 우리 집 둘째, 제 딴엔 고민 좀 했을 거예요. 결론은 "엄마, 나 휴학할래!"였답니다. 다시 수능을 보겠다는 거죠. 전문직을 갖고 싶다나요. 본인의 계획대로라면 재수 1년에 대학 6년, 졸업이 무려 6년이나 늦어지는 것이지요.


우리는 한 달 동안 자기 자신을 테스트해 보는 걸로 합의를 했죠. 깨우지 않으면 정오를 훌쩍 넘기고, 시간만 나면 유튜브에 게임에 늘어져 있는 자신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지 시험해보라는 것이지요.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그의 생활이 180도 달라지더군요.


①누가 깨우지 않아도 7시 기상

②8시에 스터디 카페로 출발

③4시간 공부 후 12시 30분에 집에 와 점심식사

④1시 30분 다시 스터디 카페로 출발

⑤4시간 반가량 공부하고 6시 30분에 집에 와서 저녁 식사

⑥7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공부 후 취침




둘째 아이의 변화는 지금까지 그와 함께 한 나의 기쁨과 고통, 그리고 기다림을 떠올리게 했지요. 어렸을 때는 그 아이도 여느 집 자식처럼 사랑스러웠어요. 이런 시도 지었답니다.


가장 아름다운 그림

내가 성낼 때 그리시는
팔자주름
내가 아플 때 그리시는
눈가 주름
내가 근심할 때 그리시는
이맛 주름

부모님 얼굴은
부모님 얼굴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다.


그런데 그 애가 중학교 2학년 즈음, 우리의 평화도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지요. 전쟁 상황이 어찌나 오래 지속되던지. 그 애가 고2 때 제가 적어놓은 글을 꺼내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드디어 군자란이 피었습니다! 와~~~ 감동! 이웃에게 분양받은 지 7~8년, 이제나 저제나 꽃필 날 기다리며 지쳐갈 무렵, 문득 깨달음이 있었지요.

아, 얘들도 뿌리가 깊어지고
밑동이 굵어지고 포기가 넓어져야 되나 보다.
그래야 꽃을 피울 수 있나?
기다리는 수밖에.

기다림이 훨씬 쉬워지더군요. 재촉하지 않고. 저는 생각날 때마다 물을 줄 뿐, 대부분 잊어먹고살았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어느 날 갑자기 꽃대가 올라오더라고요. 장하다!
우리 ○○이도 이렇게 꽃 피울 날, 있을까요.

○○이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제 자식이 아닌 것 같았어요. 1학년 때는 새벽같이 일어나 공부한다며 졸기도 하고, 저는 그 모습에 '제발 잠 좀 자라'고 화를 내는 행복한 엄마였지요. 그런데 얘가 점점 변해가더니, 지금까지 영 시원찮습니다.

그동안 싸움도 많이 했지요. 네 방에서 나오지 마! 1박 2일 굶긴 적이 있었습니다. '엄마 잘못했어요.' 하면 끝날 일. 요 새끼는 끝까지 나오지 않았지요. 결국 오줌보 터질라, 제가 구출해줄 수밖에. 근데 참 기가 막혀서. 바가지를 들고 나오더라고요. 뭐가 들어있는 줄 다 아시죠? 저는 점점 지쳐가며 포기 상태로 돌입할 수밖에 없었지요. 지금은 휴전 상태!

우리 ○○이도 언젠가는 꽃을 피우겠지요. 뿌리가 깊어지고 밑동이 굵어지고 포기가 커져 꽃을 피워낸 군자란처럼.



그런데 고3 때도 정신 못 차리더라고요. 절실한 게 하나도 없었어요. 저는 어떻게 하면 1분 1초라도 아낄까, 걔는 어떻게 하면 1분 1초라도 늘어져 있을까, 그 싸움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뒤통수를 맞았던 일도 있었어요. 공부한 것에 비해 생각보다 과탐 점수가 안 나오는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 새벽까지 유튜브를 보고, 학교에 가서는 졸고. 기가 막히죠.


거기다 대학생이 된 그 애는 지난 3년 동안 낡은 고무줄처럼 더 축 늘어졌죠. 그래서 코로나 시국 비대면 수업에도 불구하고, 서울 자취방으로 내쫓아버렸던 게 바로 얼마 전 일이랍니다. 그런데 갑자기 휴학이라니요!




우리 둘째도 꽃을 피우겠지요, 군자란처럼. 12월 초였던가 봐요. 베란다 식물들에게 신선한 공기를 씌워준다고 창문을 열어놓았었죠. 그런데 깜빡하고 닫지 못했어요. 밤새 영하의 찬 공기를 고스란히 맞은 거죠. 이파리들이 축 늘어지더군요. 얼어버린 거예요. 군자란도 그중에 하나였어요. 뿌리까지는 상하지 않았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거실로 옮겨놓았죠. 그랬더니 얼마 전에 꽃대가 올라오더라고요. 굉장한 생명력이죠. 우리 둘째도 그 군자란과 같을 거라고 믿어요.


15살 사춘기 소년에서 23살 청년이 되기까지 무려 8년 동안 우린 참 많이 지지고 볶았어요. 제게는 기다림의 시간이었겠지요. 둘째 편에서는 부모의 잔소리 없이도 스스로 자기 길을 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시기였겠고요. 뿌리가 깊어지고 밑동이 굵어지고 포기가 커지고 냉해까지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생명력으로 말이죠. 저는 그렇게 믿고 싶어요. "엄마, 나 휴학할래!" 이 말은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잖아요. 이제부터는 자기 길을 자기가 알아서 가겠다는 말이겠지요. 이제는 긴긴 기다림의 시간을 끝내렵니다. 다만 그가 하루하루 자신의 꽃을 피울 수 있기를 바랄 뿐이죠. 군자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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