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흐름을 따라 자기다운 삶으로

아이는 엄마의 스승이다

by 야생


큰 아이는 나의 스승이다. 며칠 있으면, 그 아이가 내 곁에 온지 딱 23년이다. 나는 엄마의 세계에 대해 아무런 지식없이 덜커덩 큰 아이를 낳았다. 그 세계는 캄캄한 밤 같았다. 그런데 용케도 나는 23년 동안 엄마로 살아 왔다. 거기에는 딸 아이의 공로가 크다. 딸은 캄캄한 세계를 비추며, 내가 엄마가 되도록 이끌어 준 장본인이다. 이제 그 애가 내 곁을 떠나 독립을 하려한다. 23년 동행의 끝자락에서 지나온 발자취를 돌아본다.




인생은 제멋대로 흘러간다


딸아이는 초등학교 때 친구로부터 장애인인줄 알았다는 편지를 받았다. 한국말을 잘 못했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일본에서 태어나 2학년 때 한국으로 전학을 왔다. 받아쓰기도 빵점을 맞았다던데. 3학년 때부터는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지만, 친구 관계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듯 했다.


반면 선생님과의 관계는 언제나 좋았다. 중학교 선생님들이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중1 담임은 그 아이를 그 반의 복덩어리라 불렀다. 중2 담임은 교직 생활 중 이런 애는 처음 봤다고 했다. 중3 담임은 그 애를 보면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며, 엄친아(그 당시 유행어)라는 표현을 썼다. 동네에서도 칭찬이 자자했다. 학원을 다니지 않았던 그 애는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았다. 동생들과 놀이터에서 놀며 다른 집 애들까지 돌봐줬으니, 동네 아줌마들이 좋아하는 것은 당연했다. 와, 그 때는 내 어깨가 얼마나 으쓱했던지.


고등학교 때는 친구랑 잘 지내려고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먼저 다가가서 인사하고 공부의 내용도 공유하면서 말이다. 고1친구들이 써 준 롤링 페이퍼를 보면, '천사같은 ○○'라는 표현이 많았다. 내가 보기에도 큰 애는 별로 잔소리가 필요없는 아이였다.


이렇게 집 안팎에서 착한 딸로 성실한 학생으로 살았으니, 대입으로 보상이 될 거라 생각했다. S대에 지균으로 수시 지원을 하고, 우리는 99.9% 붙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 고등학교는 지역 명문이고, 그동안 선배들의 입시 결과를 미루어보면 그러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낙방! 그 때의 배신감이란. 사교육 없는 학교 생활의 결과가 이것 뿐이라면, 사교육은 필수란 말인가. 이 쓴 맛은 오랫동안 나의 마음에 남았다.


결국 그 아이는 정시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학과에 들어갔다. 올해 마지막 학년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S대 떨어진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웃으며 이야기한다. 학년이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만족도가 더 높아진다. 주변 친구들이 취업준비로 휴학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그 애는 졸업이 가까워도 상대적으로 취업 걱정은 안해도 된다.


나는 큰 아이 옆에서 이런 일을 겪으며, 인생이 마음 먹은 대로, 계획한 대로 되지않는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생각대로 인생이 흘러간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인생의 복이 화가 되기도 하고, 화가 복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도. 이것은 성공의 집착에 또는 실패의 쓰라림에 오래 머무르지 않을 수 있는 비밀이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좀더 긴 안목으로 인생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


가장 자기다운 삶으로


그렇다면 큰 아이에겐 사춘기가 없었던가. 큰 애도 중학교 2학년 즈음, 나를 쳐다보는 표정이 달라졌었다. 뭔가 뚱하기도 하고, 뭐라 하면 울 것 같았다. 질풍노도 정도는 아니었기에 나는 크게 신경쓰지도, 크게 힘들지도 않았다. 다만 그 애가 자기를 존중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 아이를 통제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기 때문에 그 메시지를 무시했던 것 같다.


그런데 사람은 겪어야 될 것은 꼭 겪어야 되나보다. 대학생이 된 그 애는 본격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의 고민도 덩달아 깊어질 수 밖에. 그 때 고민의 흔적이 남아있다.




2016년 5월 2일


요즈음 ○○이는 나를 또다른 세계로 데려가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배운 것으로는 이 상황을 헤쳐나가기가 어렵네요. ○○이는 고3까지 비교적 순탄하게 엄마 아빠의 울타리 안에서 생활하며 무난하게 자라주었답니다. 근데 지금은 ○○가 울타리를 치고 '부모 접근금지'라는 푯말을 붙여놓은 느낌. 왠지 배신감도 들고 서운하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고. 이제는 제가 성장해야 하나봅니다. 여전히 ○○이가 내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면 안되는거죠.


2016년 5월 9일


○○이는 점점 웃음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대학에 들어가면 고된 수험생활 끝! 더 많이 웃어야 되지 않나요? 사춘기 시절 미뤄놓은 숙제라도 있는 양, 자기 방속에 숨어있네요. 너무 당황스러워요. 더 착하고 더 많이 웃는 딸을 기대했건만. 예의 없고 버릇없고 배려심없고. 없는 것 투성이에요. 왜 그러냐고 물어보기도 어려워서, 그냥 바라보며, 그 방에서 숙성되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이제는 착한 딸을 바라는 허황된 마음 버리려구요. 다만 ○○이가 자신의 굴레와 주변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길 바래요. 자기 색깔을 내며 살도록 응원하려구요.



나는 큰 애가 얌전하고 착한 아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더니 180도 달라졌다. 집에 붙어있는 날이 없었다. 하루에도 몇 탕이나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다녔다. 방학 때도 해외 봉사, 국내 컨퍼런스로 바쁘기는 매 한가지였다. 나는 처음 2년 동안은 정말 적응이 되지 않았다. 나는 자꾸 울타리에 가두려 하고, 그 애는 망아지처럼 뛰쳐나가려고 하고.


이 싸움 끝에 결국 나는 큰 아이를 내 자식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내가 교회를 그만 다니기로 결정했을 때, 그 아이도 내 생각과 똑같은 생각을 가지기를 바랬다. 그런데 큰 애는 자기가 경험하고 살아보고 결정하겠노라 했다. 똑 부러지는 반응이다. 이제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큰 애가 자랑스럽다. 칼릴 지브란은 말한다.


당신은 활이 되어
살아있는 화살인 아이들을
미래로 날려보내야 한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중에서


큰 아이는 2월 중순경에 부모로부터 물리적인 독립을 할 예정이다. 몸의 독립이 마음의 독립과 자유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멀리 멀리 날아가, 자기의 우주에서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고 가장 자기답게, 어떤 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강하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엄마는 활, 아이는 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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