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잎의 그리움

그리운 나의 어머니!

by 야생

따뜻하게 물든 단풍 아래

포근하게 덮인 솔잎 속에

익어가는 어머니의 모습


솔가지를 지펴 아궁이를 지키시고

솔불 속에 고된 삶을 태우시며

희뿌연 밥냄새에 자식들을 품으셨던 어머니


아버지의 병상 앞에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던 어머니가

아버지의 죽음 앞에 통곡했다


어머니의 울음 속

고개 숙인 삶의 진실이

내 마음속 걸음으로 다가오네


소나무가 누런 잎을 떨구고 있다. 포근하게 땅을 덮고 있는 솔잎을 밟을 때마다,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죽음으로 이별한 지 오래지만, 솔잎에 얽힌 어머니의 모습이 내 맘 속에 깊이 새겨져 있는 모양이다.


우리 집의 일 년 땔감은 솔잎이었다. 연탄아궁이를 설치하고 나서도 그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밥은 물론, 겨울에는 군불로, 여름에는 감자나 옥수수를 삶기 위해, 가을에는 고구마를 삶기 위해, 솔잎은 일 년 내내 우리 집 아궁이 속에서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불꽃을 살랐었다.


어떤 이는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왜 장작이 아니고, 솔잎이냐고. 맞다! 솔잎도 화력이 좋지만, 장작에 비할쏘냐. 시골 여염집 마당에 수북이 쌓여있을 법한 장작이 우리 집에는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안뜰 한켠에 장작 같은 것이 있긴 했다. 장작이라고 하기에는 뭣하고 도끼로 패지 않아도 될 만큼 적당히 굵은 나뭇가지였다. 그 색깔은 검었었지. 오랜 세월 풍상에 견딘 모습이었어. 지금 생각해보니 어머니는 그것을 아껴 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장작을 패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일 거다. 우리 집에 도끼가 없었던 이유가. 어머니는 아버지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 이맘때쯤이면, 솔잎을 긁어모으셨다. 갈퀴로 다듬으면, 솔잎들이 자석처럼 착착 달라붙어 어느새 큰 덩어리가 되어 어머니의 머릿 짐이 되었다. 나도 가끔 호출되어 솔잎을 이고 어머니의 뒤를 따랐던 것과 그 뾰족한 이파리가 살갗을 찔렀던 감각을 기억한다. 그때는 산림보호니 뭐니 산에서 솔잎을 긁어 집으로 가져오는 것이 여의치 않은 시대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런 시대 상황에 굴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삶의 자리가 더 절실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어머니의 노동으로 헛간에 켜켜이 쌓여있었던 그 솔잎들은 술을 저장하고 익히기도 했더랬다. 그때는 쌀이 귀한 시대여서, 집에서 술을 담그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술을 담가서 그곳에 숨겼었지. 아버지 주려고? 설마! 엄마는 술이라면 지긋지긋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날마다 술에 취해 귀가했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아버지가 술에 취해 넘어져 객사할까, 나는 면소재지인 이웃동네에서 아버지를 모셔오는 심부름을 했었다. 그래서였을 거다. 어머니 자신이 술을 멀리했던 것도.


그런 어머니가 매년 술을 담갔다니. 시골 농사일에 꼭 필요해서였겠지. 봄 모내기와 가을 추수에 품앗이하는 동네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으리라. 혹시 알려나 모르겠다. 희뿌연 막걸리가 가라앉으면 항아리 윗부분에 떠오르는 맑은 액체가 동동주라는 것을. 어머니는 명절 손님용으로 동동주도 그렇게 준비했더랬다.


그러고 보니, 우리 어머니가 나라에서 금지한 일을 많이 하셨네. 근데 소문만 무성했지, 나무를 해서 잡혀간 사람도, 술을 담가서 벌금을 낸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감시관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그냥 공포만 놓았던 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어머니는 그런저런 모든 것을 뛰어넘어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기 위해 강인한 여성으로 거듭났던 것이다. 우리 어머니야말로 우머니즘의 대표 주자였다. 그리운 나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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