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운 기억을 만나니, 삶이 가벼워졌어요
인간은 과거에 일어난 방대한 사건 중에, 지금의 생존에 필요한 것은 기억하고, 생존에 위협이 되는 것은 망각의 세계로 넘겨버린다고 하네요. 실뱅 쇼메 감독의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서 주인공 폴의 망각의 세계에는 어떤 기억이 가라앉아 있을까요?
폴은 피아니스트예요. 이모 둘이랑 같이 살죠. 이모들은 댄스 교습소를 운영해요. 그는 거기서 피아노를 치고요. 왁자지껄한 댄스교습소와는 어울리지 않게 그는 무표정한 모습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고 있네요. 이모들의 꼭두각시 인형처럼 말이죠.
그의 정신연령은 2살 어린애랑 비슷한 것 같아요. 슈케트빵 하나에 삐치는 모습을 보면요. 그는 말을 못 해요. 부모님이 죽은 이후에 그렇게 되었다고 하네요. 그의 부모님에겐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마담 프루스트는 폴이 사는 아파트 4층에 살아요. 폴은 우연히 그녀의 비밀정원에 불청객이 되는데요. 어떤 문을 통과하자 놀라운 광경과 마주하게 돼요. 햇빛의 세례를 받고 반짝반짝 푸르게 빛나는 온갖 식물들! 눈이 휘둥그레지는 폴!
프루스트 부인은 이후로 폴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요. 그녀는 맹인 친구에게 폴에 대해 이렇게 말해요. "부모의 죽음을 본 걸 죄다 잊었다고? 나는 그런 얘기 안 믿어. 죽음이 그 애를 못 살게 하는 게 아냐. 쳇바퀴 도는 삶이 문제지, 당신 레코드처럼. 그 애에게 필요한 건 바로 충격이야. 어른들이 가만 놔두면 그 애는 평생 두 살로 살 걸."
프루스트 부인은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녀가 기른 식물로 만든 차를 마시고 마들렌을 먹으면, 누구든지 망각의 세계로 초대되어 잃어버린 기억을 낚게 돼요. 차와 마들렌이 기억을 낚아 올리는 낚시 바늘인 셈이지요.
폴은 일주일에 한 번씩 마담 프루스트의 정원을 방문하죠. 5유로를 내고 그녀가 제공하는 차와 마들렌을 마신 후, 2살 무렵의 엄마와 아빠랑 함께 했던 추억을 낚는데요. 그의 표정이 점점 밝아져요.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어요. 마담 프루스트가 유언처럼 남긴 차와 마들렌을 먹은 후, 그의 손에 잡힌 것은 그야말로 독약과 같은 충격이었어요.
고통스러운 기억을 만나는 것... 내 인생을 사는 길
2살짜리 폴이 보는 앞에서 엄마와 아빠가 죽었는데요. 2층에 있던 피아노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천장이 무너지는 바람에, 1층에 있던 부모님이 피아노에 압사한 것이지요. 그 피아노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것이기도 하고, 폴이 30년 동안 치고 있는 것이기도 해요.
너무 잔인하지 않나요? 지금 폴이 치고 있는 피아노가 부모님을 덮친 피아노라는 사실이! 이모들은 폴이 기억을 못 한다고 생각했었던 거죠. 그의 엄마랑 아빠가 어떻게 죽었는지 말이에요. 거기다 그녀들의 욕심껏 폴을 피아니스트로 만든 것이고요.
흔히 그렇듯 폴도 2살 때 부모님이 돌아가신 광경에 대한 기억이 없었을 거예요. 그 기억은 생존에 굉장히 위협적이라, 편집해서 망각의 세계로 옮겨놓았지 싶어요. 하지만 그의 무의식에는 그때의 슬픔과 고통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거죠. 그것이 지금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만들었죠.
프루스트 부인은 이것을 꿰뚫어 본 것 같아요. 그래서 충격 요법을 쓴 것이지요. 그 기억을 낚아서 만나고 흘려버리라고요. 이모들의 꼭두각시적인 삶,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에서 벗어나도록 말이지요.
프루스트 부인은 사실 암환자예요. 이제는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알고, 폴에게 편지를 남기는데요. 이렇게 쓰여있죠. "나쁜 추억은 행복의 홍수 아래 가라앉게 해. 수도꼭지를 트는 건 네 몫이란다. 네 인생을 살아라."
이 영화를 본 느낌은 한 편의 동화책을 읽은 것 같아요. 배경음악으로 폴의 피아노 연주와 프루스트 부인의 우쿨렐레 연주가 교차하죠. 아름다워요. 거기다 심오함까지!
저에게도 깊이 묻어두었던 기억이 있었어요. 첫째 아이를 낳은 지 20여 일 만에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장례식에도 못 갔죠. 그때 저는 일본에 살고 있었거든요. 저는 엄마의 죽음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어요.
저는 엄마 사진도 볼 수가 없었어요. 그것도 20년이나. 엄마가 기독교 신앙 없이 돌아가셨다는 것이 저에겐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이 고통을 한 번도 표현한 적이 없었어요. 삶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암 진단을 받고서야 비로소 엄마의 죽음을 애도하게 되었네요. 암이 나에겐 낚싯바늘이었던 거죠. 엄마를 잃은 슬픔과 고통을 낚아 눈물로 흘려보내니 삶이 조금씩 가벼워지더라고요. 마담 프루스트의 전략대로라면 이 과정이 내 인생을 사는 길 위에 있는 것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