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에서 이름을 찾다

by 야생


난 사람을 덜 사랑하기보다, 자연을 더 사랑한다! 영화 <인투 더 와일드>는 사람을 덜 사랑하기보다, 자연을 더 사랑한 한 청년의 실제 이야기다. 그는 톨스토이, 잭 런던, 소로우의 책을 열독한다. 그도 자연주의자다. 그는 문명이 주는 혜택을 떠나 원시인적인 삶이 기다리는 야생으로 향한다.


2년간의 도보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알래스카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않은 태고적 모습을 간직한 곳. 자연만이 숨쉬는 곳. 그는 그곳에서 4개월간 자연인으로 살다가 죽음을 맞는다. 짧고 굵게 산 그가 남긴 마지막 인사말이다.


I HAVE HAD A HAPPY LIFE

AND THANK THE LORD.

GOOD BYE

AND MAY GOD BLESS ALL!


CHRISTOPHER JOHNSON MCCANDLESS



크리스토퍼의 이야기는 우리를 야생으로 이끌어간다. 우리는 문명과 자연 사이 그 어느 지점엔가 살고 있다. 어쩌면 문명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만큼, 문명에 구속된 우리들.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쉽게 문명을 떠나지 못한다. 크리스토퍼는 우리를 한발 야생으로 초대한다. 그리고 자유를 선물한다. 야생은 자유다! 그렇다면 야생의 자유를 얻기 위해 그가 떠난 문명의 이기는 무엇일까.



가족을 떠나다



인간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다. 엄마 아빠를 선택할 수도 없다. 태어나보니 이런 환경이다. 크리스토퍼도 태어나보니 브로큰 패밀리다. 엄마는 아빠의 정부다. 크리스토퍼는 여동생과 함께 사생아다. 그래서일까. 엄마 아빠의 싸움은 끊이질 않는다. 아이들 앞에서 육탄전도 서슴치 않는다. 아이들은 깊이 상처받는다.


크리스토퍼는 부모님의 비밀을 대학생이 되어서야 알게 된다. 부모님에 대한 불신은 더욱 깊어진다. 여행 중에 만난 히피 친구 잰이 묻는다.


"부모님은 어디 계셔?"

"어디선가 거짓 삶을 살고 계시죠."


크리스토퍼의 대답이다. 그의 눈에 부모님의 삶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거짓으로 똘똘 뭉쳐진 삶이다.


크리스퍼에 대한 부모님의 기대 또한 억압이다. 크리스토퍼는 애틀랜타 에모리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다. 하버드 법대에 들어갈 수 있다. 부모님은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자식은 부모의 면류관이다. 그러나 이것이 자식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온다. 부모님의 명예를 위해 자식을 도구로 사용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크리스토퍼는 부모님을 떠난다.



대학을 떠나다


에모리 대학 졸업식에서 여동생과 함께. 둘도 없는 오누이 사이다.

부모님은 크리스토퍼가 당연히 하버드 법대에 입학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크리스토퍼의 손에는 대학 기금으로 2만 4천 달러가 있다. 그러나 그는 그 돈 전부를 국제 구호 단체에 기부한다. 그에게 있어 대학은 추상적 개념과 아이디어의 세계다. 그는 가장 자기답게 살기 위해, 하버드 법대를 휴지조각처럼 버린다.



돈을 떠나다



크리스토퍼는 처음에 자동차 여행을 한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자동차가 홍수피해를 입는다. 그는 자동차 번호판을 떼고 도보여행을 시작한다. 그때 주머니 속 얼마되지 않는 돈도 태운다. 그것은 물질과잉인 세상에 종지부를 찍는 그 나름의 의식이다. 그는 사회와 소비문화로부터 자유를 선언한 것이다. 히피 친구 잰이 왜 돈을 불태웠냐는 물음에 그가 대답한다.


"왜그런거야?"

"돈은 필요 없어요. 사람을 걱정시키거든요."

"약간의 걱정은 필요해. 네가 가지고 있는 그 책들 다 좋은 얘기긴 한데, 풀만 먹고는 살아갈 수 없어."

"풀 말고 뭐가 더 필요한지 모르겠네요."



이름을 떠나다



부모님이 지어준 그의 이름은 크리스토퍼 존슨 맥캔들리스다. 그는 그 이름을 버린다. 여행을 떠나기 전 그는 자기를 증명하는 모든 신분증을 가위로 잘라 버린다. 그리고 스스로 자기 이름을 짓는다. 알렉산더 슈퍼트램프! 그의 부모님이 2년 동안 그렇게 분노하고 좌절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그를 찾지 못한 이유다. 세상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그는 행방묘연, 완전 실종이다.

법과 규제를 떠나다



콜로라도강에서 카누를 타기 위해서는 면허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무려 12년이나. 알렉스는 무단으로 카누를 타고 멕시코 국경을 넘기까지 한다.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올 때는 화물차에 무임 승차한다.


사회의 일원으로 살기 위해서는 수많은 법과 규제와 규칙에 따라야 한다. 이것은 인간 사회와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딜레마에 봉착한다. 반드시 '인간을 위해서'라는 대답을 이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법이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법을 위해서 존재할 때가 많다. 인간이 법의 노예로 사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생긴다. 법의 관점에서 크리스토퍼는 무법자다. 그러나 인간의 관점에서 그는 법과 규제를 초월한 자유인이다.



섹스를 떠나다


트레이스! 알렉스와 친해지며 호감을 표현한다.

알렉스는 히피들의 도시인 솔튼시에서 트레이스를 만난다. 트레이스는 알렉스에게 호감을 가지고 섹스 어필을 한다. 그녀는 18살이라고 나이를 속이며, 부모님이 안계신 틈을 타서 알렉스를 유혹한다. 그러나 알렉스는 그녀가 16살이라는 것을 고백하게 만든다. 이럴 때 보통 남자라면 모르는 채 눈감고 그녀와 섹스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섹스가 과도하게 부풀려진 시대 아닌가.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섹스로 이어지는 게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세상이다. 그런데!


"넌 멋진 애야, 인생에서 원하는 게 있으면 팔을 뻗어 잡아!"


알렉스가 트레이스에게 들려주는 말이다. 자기가 충분히 멋지고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사람의 관심을 끌려고 애쓰지 않는다. 사람과의 관계만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붙잡을 때 얼마든지 다른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의 기쁨은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에 존재한다.


문명 사회에서 사람들은 섹스 어필하기에 바쁘다. 문명의 테두리 안에서 규정된 삶을 살며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른다. 인간 본연의 모습을 따라 살 때, 얼마나 기쁨이 반짝거리는지. 알렉스는 알고 있다. 그의 마음 속 가득한 기쁨이 섹스의 즐거움에 압승!


이것은 문명에 대한 야생의 승리이기도 하다. 빈번한 섹스는 문명의 산물이지 않을까 싶다. 야생의 동물들은 생식 외에 그렇게 많이 섹스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명의 인간은 미친듯이 섹스를 한다. 섹스를 하면 할 수록 더 인간다워지기라도 하듯, 경쟁하듯, 자랑하듯. 이것은 자연을 떠난 인간의 모습인 것 같다.



사람을 떠나다


알렉스는 2년동안 여행하며 여러 사람과 의미있는 만남을 갖는다. 그들 모두는 알렉스가 떠날 때마다 아쉬워한다. 그러나 알렉스는 그들 곁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다만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알래스카를 향해 걷는다.


"삶의 기쁨을 인간관계에서만 찾으려는 건 잘못이에요. 신은 곳곳에 삶의 기쁨을 심어두셨죠.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에 존재하죠. 우린 그저 관점만 조금 바꾸면 돼요."



원시 자연의 세계, 알래스카에 도달하다!


자연만이 숨쉬는 알래스카에 도달하다

그는 모험을 사랑하는 극단주의자다. 자연과 아름다움을 감상할 줄 아는 여행자! 그의 집은 길이다. 2년간의 방랑에 종지부를 찍을 가장 위대한 모험을 시작한다. 내면의 허상을 쫓아내고 정신의 혁명을 당당히 완성시킬 극한의 투쟁을 시작한다. 몹쓸 문명에 더 이상 물들지 않기 위해 달아난 그는 홀로 대지 위를 거닌다.


마법의 버스 발견

문명의 발자취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알래스카 대지 위에 캠핑용 낡은 버스다. 알렉스에겐 마법과 같은 존재다. 이 버스가 없었다면 극한의 혹독함을 어찌 견뎌낼 수 있었을까. 알렉스는 버스에서 생활한다. 그리고 그를 속박했던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한다.


어느덧 얼음이 녹는 여름이 찾아온다. 준비해온 식량도 바닥이 난 상태다. 이제는 또다시 길을 떠나야 한다. 그런데 지난 봄에 건너온 강물이 어마어마하게 불어나있지 않은가. 알렉스는 어쩔 수 없이 버스로 돌아온다. 그때부터 알렉스의 야생의 삶은 더 혹독해진다. 쌀이 떨어진 마당에 사냥감도 잘 잡히지 않는다. 먹을 수 있는 식물을 찾아 연명한다. 이렇게까지 체력이 바닥나기는 처음이다. 프란츠의 가죽 공방에서 만든 허리띠의 구멍을 몇번이나 다시 뚫어야 했다.



야생에서 길을 잃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몸이 마비된 듯하다. 알렉스는 식물도감을 뒤져 어제 먹은 식물을 찾아본다. 아뿔사! 식용식물인지 알고 먹었던 것에 독성분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빨리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문명의 혜택을 누릴 수 없는 야생에서 죽음은 불가피!



버스 안에서 크리스는 행복은 나눌 때만 현실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지막으로 몸을 닦고 침대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부모님을 떠올린다.


"내가 미소지으며 두 분 품에 안긴다면 어떨까요? 지금 제가 보는 걸 두 분도 보게 될까요?"


크리스토퍼가 문명을 떠나 야생으로 길을 떠난 목적이 무엇인가. 각각을 올바로 부르기 위해서였다. 올바른 이름으로. 크리스토퍼는 죽음 직전에 비로소 자기 이름을 되찾아 온다. 이제는 자기 이름을 올바로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다. 부모님의 이름도 말이다. 크리스토퍼는 죽음의 순간에 부모님을 용서한다. 그리고 절대자의 빛을 받으며 24년(1968.2.12. - 1992.8.18.)의 짧은 생애를 마친다.




난 사람을 덜 사랑하기보다, 자연을 더 사랑한다! 결국 크리스토퍼는 인간을 더 사랑하기 위해 야생으로 들어간 것이 아닌가. 자연을 더 사랑할 때, 사람을 더 사랑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 사랑을 가지고 문명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한 크리스토퍼의 죽음이 안타깝다. 그러나 그의 생애는 우리에게 울림이 된다. 자연을 떠나서도 문명을 떠나서도 살 수 없다! 자연과 문명 사이, 당신은 그 어디쯤에 있는가.


크리스토퍼 실제 모습
이전 07화전세값의 변신, 당황스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