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지르면 달라져요

나의 생일 우리 집 풍경

by 야생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

속담 틀린거 하나도 없더라고요.


지난주 금요일이 제 생일이었는데 말이죠. 아침에 세 아이들의 축하인사를 받고, 산에 가려는데 공동 현관 벨이 울렸어요.

"누구세요?"

"꽃배달입니다."

오! 웬 꽃배달? 누가 보냈는지 예상할 수 있었지만 설레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지요. 장미꽃 다발 속에 카드가 꽂혀있었어요.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앞으로 늘 건강하고, 투지에 불타는 날이 되었으면 한다. 너의 절친 김하영."

너의 절친 김하영이 누구냐고요? 제 남편이에요.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제 이름이라 착각하기도 해요. 그에게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 꽃을 받아보긴 했지만, 꽃배달은 처음이었어요. 저는 호기심에 몇 송인가 세어보았어요. 35송이 정도였지요. 한참 시간이 지나서 남편이 그러더군요.

"이게 얼마 게?"

"2만 오천 원?"

딸아이는 좀 더 후했어요.

"5만 원?"

그런데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조금 과하다 싶은 금액이었죠.

"10만 원!"

옛날의 나였다면,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마!'라고 했을 거예요. 근데 이젠 안 그러기로 했어요. 나에게 그 이상의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마음을 고쳐먹었기 때문이죠.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딸아이가 장단을 맞추더군요.

"엄마! 이젠 나 짜장면 못 먹어, 이런 말 하지 마! 아빠 재력에 10만 원 별거 아냐!"

별거 아닌 것 아닌데... 꽃도 좋지만... 돈도 좋은데...


딸은 얼마 전에 독립을 했어요. 엄마 생일상 차려준다고, 목요일 저녁에 집에 온 거죠. 금요일 비대면 수업을 마치고 장을 봐서 저녁상을 차릴 작정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딸애의 요리를 기다리기엔, 저녁 먹을 시간이 너무 늦어질 것 같았어요. 거기다 딸아이가 정혈까지 겹쳐 힘들어하는 것처럼 보였지요. 그래서 우리는 피자랑 떡볶이를 배달해서 먹었어요. 딸아이의 생일상은 다음날 점심으로 미루어졌지요. 물론 그 약속대로 딸아이는 데리야끼 치킨 덧밥을 맛나게 만들어주었고요.


세 아이들이 십시일반으로 사 온 케이크는 얼마나 맛있던지요. 손바닥보다 조금 큰 케이크였는데, 다크 초콜릿으로 덮여 있었죠. 엄마 취향으로 골랐다고 하더군요. 에구구, 눈물 나네. 그다음이 중요해요. 첫째와 셋째의 손편지예요. 둘째는 그들 사이에 사인이 잘 안 맞아서 준비를 못했던 것 같더라고요. 둘째는 자기 방에 감추어놓은 제라늄 화분을 들고 나오더군요. 화분은 둘째랑 막내가 공동 투자한 건데, 편지를 쓰지 못한 형이 화분을 전달하도록 막내가 배려한 콘셉트인 것 같았어요.




오랜만에 받는 딸아이의 손편지에 가슴이 뭉클했어요.


엄마, 안녕?! 아니, 야생 안녕?ㅎㅎ

생신 축하해요~~

아직도 엄마로 부르는 게 익숙하지만.

엄마한테 받아왔던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어.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행동들이 야생을 힘들게 할 수 있으니까 내가 더 노력할게유♡ 자취해보니까 모두가 각자의 생활을 딱 그만큼만 챙긴다면, 이 세상의 어머니들의 어깨가 더 가벼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혼자의 것만 챙기는 건 양도 적고, 어차피 스스로의 것을 치우고 마무리하는 거니까 부담도 적고, 딱히 힘든 감정도 없고 그렇더라구~ 좀 더 일찍 집안일을 분담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앞으로는 더 행복할 거야~


요새 엄마가 하고 싶은 거 찾아서 하고, 글도 남기고, 이런 모습 너무 보기 좋아용~ 야생이 하는 모든 것 내가 열심히 응원할게!! 나중에 책 낼 때 펀딩 해서 책 낸다면, 거기 투자도 해야지! 공동 투자해서 책 발간하는 거 있던데.ㅎㅎ


나 집 올 때마다 반겨주고, 가스공사 이런 것도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따뜻한 밥도 고마워요♡ 내일 점심은 내가 닭 구워서 맛있는 거 해줄게!


야생이 야생의 삶, 야생의 취미 찾아가는 과정, 화이팅이야!

나한테도 공유해줘요~

사랑해


막내의 편지는 웃겨서 배꼽 잡았네요.

안녕? 야생? 나 신의야.

지금 나 학굔데 1교시 끝나고 쉬는 시간이야. 오늘 학교 빨리 끝나고 빨리 당신을 보고 싶소. 야생께 편지를 쓰는 건 거의 처음인 것 같아. 그 전엔 야생 생일도 잘 모르고 미안. 이제서야 챙기다니, 이건 아닌 듯;;; 오늘 학교 끝나고 집에 가서 누나랑 시장 가서 꽃이랑 케이크 사 올 듯해. 내 인생 16년 중, 님이 없는 시간이 없을 정도로 우린 껌딱지야, 그지? 나는 야생의 아들로서 참 기뻐. 난 행운아야.


나 지금 이 밑에 시를 쓸까 말까 고민 중인데, 지금 쉬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이따가 이어서 쓸게. 구상 좀 해야 해. 이제 2교시 끝났다. 시 한 편 쓰갔어.


< 껌딱지 >

우리는 껌딱지
일생을 함께 하자

우리는 껌딱지
떨어지지 않아

우리는 껌딱지
이 순간을 기억하자

영원히 우린 껌딱지
사랑해요

식구들 앞에서 막내의 편지를 읽었는데, 특히 시 부분에서는 눈물이 맺힐 지경이었답니다. 너무 웃다가 말이죠. 막내가 묻더군요. 엄마 울어?





제가 이렇게 축하를 받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어요. 그중에 제일은 목소리죠. 재작년 즈음 사라진 목소리를 되찾아 존재감을 과시했어요.

"나, 힘들어 미칠 지경이야!

이젠 이렇게 살기 싫어.

난 너네 엄마로도 살기 싫고,

네 마누라로도 살기 싫어.

난 이제까지 너희들에게 맞추느라,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잘하는지도 모르고 살아왔어.

나도 이제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며 살고 싶다고."

이렇게 소리를 질렀더니, 가족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더라고요.


'난 괜찮아!'

진짜 괜찮은 줄 알아요.

'말 안 해도 알겠지!'

말 안 하면 아무도 몰라요.

'참으면 나아지겠지!'

참으면 골병들어요.

소리 질러야 해요! 그렇게 하지 않아도 융숭한 생일상을 받고 계시다면,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이겠지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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