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값의 변신, 당황스러워요

박성우의 <배추꽃>으로 마음의 여유찾기

by 야생


박성우 시인의 <배추꽃>, 들어보신 적 있나요? 하루 아침에 봄동이 배추꽃이 되었다네요. 배추꽃을 대하는 시인의 마음이 제 마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배추꽃/박성우


시골집 다녀오는 길에

텃밭에서 겨울을 난 배추 캐왔다


겉절이를 하거나 쌈을 싸는

저녁은 생각만으로도 달았지만

노모가 챙겨준 반찬만 꺼내도

저녁 식탁은 어지간히 푸짐했다


비닐봉지에 들어 있던 봄동,

배추는 그새 꽃대를 내밀고는

겉절이도 쌈도 거부하고

지 맘대로 꽃으로 돌아갔다


꽃대 당당히 밀어올리고는

고추장이나 된장 따위 말고

화병과 물을 내놓으라 했다


꽃병이 어디에 있더라,

하루걸러 물 갈아주지 않으면

유리병 뿌옇게 까탈 부렸다


배추를 캐온게 아니라

까탈스러운 꽃을 모셔왔구나,

물이 탁해진다 싶으면 얼른

병 씻고 물 바꿔줘야 했다


배추꽃은 배추꽃답게 꽃대

겨드랑이 사이로 새 꽃대 내밀어 댔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걷어주면


순식간에 몰려온 햇살이 앵앵

왱왱, 샛노란 배추꽃에 달라붙었다


배추꽃을 보셨나요? 저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시골 출신이랍니다. 뜨거운 볕 아래 끌려가 밭을 매기도 하고, 김장철이면 배추를 뽑고 무를 뽑던 기억은 있는데, 배추꽃을 본 기억은 오리무중입니다. 무꽃이라면 몰라도 말이죠. 그럼에도 '배추꽃'이라는 말에 이끌려 이 시를 읽게 되었어요. 그리고 뒤통수를 맞고 즐거워하는 시인의 마음을 읽었답니다.


겉절이나 쌈을 먹을 생각만으로도 달았던 봄동이 지맘대로 꽃대를 내밀었대요. 꽃대 당당히 밀어 올리고 고추장이나 된장 말고 화병과 물을 내놓으라고. 한술 더 떠 하루 걸러 물갈아 주지 않으면 까탈까지 부린다나요. 나참 우스워서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죠. 시인은 물이 탁해진다 싶으면 얼른 병 씻고 물을 갈아주고, 아침에 일어나면 커튼을 걷어주었다지요. 그랬더니 햇살이 앵앵 왱왱 샛노란 배추꽃으로 달라붙더랍니다.


봄동에서 샛노란 배추꽃으로 변신하기까지 유연하게 받아들이며 그 모습을 즐기기까지 하는 시인의 여유로움이 부럽습니다. 그렇잖아요. 자기가 생각하고 계획한 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화나고 짜증 나고. 새로운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렵잖아요. 그런데 시인은 그 과정을 고스란히 즐기기까지 하니 고수 중에 고수입니다.




전세값이 2년새에 두배가 가까이 되었어요


저희는 전세를 살고 있는데요. 계약갱신 청구권으로 2년 더 연장할 생각이었어요. 아무리 집값 전셋값이 올라간다 해도 걱정하지 않았어요. 전월세 상한제에 의해 법정 임대료 상한선인 5%만 전세 비용을 마련하면 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죠. 그도 그럴 것이 동일한 아파트 같은 동 같은 라인에서 16년이나 살고 있기 때문이었죠. 관성의 법칙에 안주해 있었다고나 할까요.


처음 8년은 3층에서, 지금까지 8년은 2층에서 살고 있어요. 한국에서 전세살이 하며 딱 한번 이사를 했던 거죠. 저희는 그것을 큰 행운이라 여기며 지금까지 감사하며 살고 있었는데 말이죠. 2년 연장을 더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집주인이 거주 목적으로 이사를 온다 하니, 계약 갱신권이 무용지물이 된 거예요.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느니, 대한민국이 들썩들썩하는 상황에서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중심을 잘 잡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 불똥이 내 발등에 떨어지게 된 거예요. 부랴부랴 네이버 부동산을 열고 주변 시세를 알아보았죠. 뒤로 나자빠지는 줄 알았어요. 2년 전 전세보증금이 2억 8천이었던 것이, 지금은 5억이 되어있더라고요.


2년마다 거래했던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어요. 아마 집주인의 연락을 받았던 모양이에요. 그 사장님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5억 2,3천에 거래가 되고 있다는 더 황당한 내용이었어요. 평범한 회사원 월급으로 당장 2억 4,5천을 마련할 수 있는 사람 누가 있을까요. 우리 집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에요. 그럼에도 길거리에 나앉는 기분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와 같은 상황에서 얼마나 더 박탈감을 느끼며 울분을 삼킬까 싶더라고요.

하루아침에 벼락거지가 되었어요


저도 막 입에서 욕이 나오려고 해요. 집을 사재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싫은 마음이 드는 것은 처음이에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을 불리는 것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죠. 그러나 의식주 기본 생활에서만큼은 공생의 도리를 조금이라도 생각하길 바라게 되더군요.


사재기를 하면 수요공급의 원칙에 의해 집값이 상승하고, 전셋값이 상승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죠. 그 차액을 챙기면 벼락부자가 된다는 것도 말이에요. 그런데 그것이 집 없는 사람들의 생존권을 박탈하고, 벼락 거지로 내몬다는 사실은 모르나 봅니다.


저희는 전세가가 매매가를 육박할 때도 집을 사지 않았답니다. 아파트 가격이 오르락내리락하는 파동을 타고 차액을 챙기는 이상한 현상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고요. 빚을 내서 집을 산다는 것에 부정적 정서가 있었어요. 전 재산을 거주비용으로 깔고 산다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었지요. 그리고 굳이 집을 살 절박한 필요가 없었거든요. 16년 전세를 살면서도 딱 한 번 밖에 이사를 다니지 않았던 행운! 그 행운이 이런 벼락 거지의 비운을 몰고 올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현실을 받아들여야죠. 그래야 앞을 향해 갈 수 있으니까요. 그동안 전세살이를 하면서 빚 없이 돈 걱정 없이 살았던 것, 절대 돈으로 살 수 없는 평안이었죠. 일단 감사하고요. 이제는 빚을 내서 이 동네 이 평수에 남느냐, 규모를 줄여서 다른 동네로 이사 가느냐 선택을 해야 해요. 20평대 다른 동네로 이사 가기로 잠정적으로 결정했습니다만. 이참에 미니멀 라이프를 살아보려고요. 장롱이든 침대든 책상이든 책장이든 필요 없는 것들 다 버릴 것을 생각하니, 홀가분한 마음이 들기도 하네요.


봄동으로 겉절이와 쌈밥을 기대했건만, 어느새 꽃을 피워 까탈을 부리는 배추꽃에게 정성을 다하는 시인! 그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기를 빌어봅니다. 새 둥지에도 햇살이 앵앵 왱왱 달라붙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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