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가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도서관보다 집에서 작업하는 것을 좋아한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왠지 공부한다는 말을 쓰기가 싫어졌는데, 아마 내가 지금 하는 것은 고등학생 때 했던 공부의 연장선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전문 지식을 쌓는 행위임을 강조하고 싶어서 일 것일 것이다. 왜인지 엄마는 여전히 공부한다는 말을 쓴다. 어쨌든 나는 도서관보다 집에서 작업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집에서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리바리 짐을 싸지 않아도 되어서이다. 밖에서 작업하다가 아 이게 필요한데 집에 두고 왔을 때와 같은 불편한 상황을 마주한 적이 여러 번 있다. 그것 없이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결국 집에 다녀올 때도 있었고, 그것 없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미리 당겨서 끝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늘 변하지 않는 사실은 내 침대는 미처 가방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손 닿는 거리에 모든 것이 있는 내 방에서의 작업을 포기하고 내 가방 안에 엉성하게 짐을 싸서 다른 공간에 가서 작업하는 것은 영 내키지 않는다.
엄마는 내가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 엄마는 내가 조금 더 밖을 돌아다녔으면 좋겠다고 한다. 아마, 엄마는 내가 도서관에 가는 길에 하는 산책, 그 속에서 마주치는 바람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내가 구경하는, 나와는 다른 옷을 입고 다른 곳을 향해 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생각할 것이다. 영국의 위성지도 안에서 뚜렷이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나의 이동하는 정수리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도서관에서 다른 79명의 학생들과 공부하며 1/80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나의 부피감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의자와 다른 모양의 의자에 앉아있는 나의 자세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도서관 창가에 앉아 있는 나의 머리칼에 묻어 있는 햇살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엄마는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나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는 엄마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 도서관에 왔다. 얼기설기 짐을 싸서. 나는 이 글을 학교 도서관에 앉아서 쓰고 있고, 나의 사방에는 각자의 작업을 하는 학생들이 앉아있다. 나도 옆 자리에 은근슬쩍 앉아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이 되어본다. 생각하는 엄마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