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의 껍질 속엔 무엇이 있나요

by 키미킴

집을 메고 꾸물꾸물 다니는 달팽이. 달팽이는 자기가 메고 다닐 수 있는 만큼의 크기의 집에 산다. 런던에서 고향으로부터, 내가 자라온 집과, 가족들로부터 독립해서 사는 나도 그랬다. 내가 이사 갈 때 감당이 가능할 만큼의 세간살이만 갖고 살았다.


나의 경제적 능력에 비해 렌트 값은 턱없이 비쌌고, 연고 없이 혼자 온 영국에는 당연히 보증인도 없었기에 이런 나의 조건에 맞는 집을 찾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눌러앉을 집도 찾지 못해 매년 이사를 다녔으니, 매년 여름에 찾아오는 새 집 사냥 기간은 내가 도시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 눈물을 흘려가며 (이건 농담이 아니다) 숨 가쁘게 움직여야 했던 시간이었다.


나의 고향에서의 집은 건물이었다면 영국에서의 내 집은 물건의 집합이었다. 다시 설명하자면, 고향에서 내가 자라온 집에 대해 설명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할 것이다. 틈새에 시멘트가 발리고 햇빛에 빨갛게 익은 벽돌들, 나의 키가 어떤 속도로 자라왔는지 알려주는 도어 프레임의 아빠의 젊은 날의 글씨, 엄마가 주말마다 먼지를 닦아내던 벽의 치마, 늦잠 자고 일어나 내가 얼굴을 비벼대던 머리맡 창문의 커튼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영국에서의 내 집을 설명하려 할 땐, 그러한 집의 재질, 모양 같은 것들이 생각나지 않는다. 서늘한 천장, 비릿한 페인트 벽, 일 년 후면 또 바뀔 그 모든 것들은 내가 그 공간을 “집”이라고 여기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는 내가 머무는 공간을 “집”이라고 인식할 수 있도록, 물리적인 애착을 가지는 것이 필요했고, 몇 년 동안의 시행착오를 거쳐, 그 어떤 공간에 살게 되더라도 둥지를 꾸리고 집이라 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 방법은 건물이 아닌, 내가 내 방안에 두는 물건의 집합을 집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꽂혀있는 책장, 세 마리의 말이 그려진 패브릭 포스터, 세이지 색 이불 커버, 식물 포트, 그리고 다이어리. 이 다섯 가지 물건들이 꼭짓점이 되어, 내가 그 어디에 있든 나에게 "집"을 씌워주었다. 나에게 집이 되어주었어야 할 건물의 공간성과 관련하여 긴 시간동안, 그리고 질이 좋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여 느끼는 집 건물의 부재를 이런 식으로 메우며 살았다. 그리하여 영국에서 나의 집은 건물이 아니라 물건의 집합이 된 것이고 이 물건들의 크기와 양은, 내가 이사를 여러 번 다니더라도 절대 잃어버리지 않을, 감당이 가능한 수준으로 책정되어야 했다.


달팽이에게는 가는 곳 그 어디든 집이 되는 것처럼.

나도 내 수트케이스 껍질에 집을 담아놓고 런던을 돌아다니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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