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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ing Mar 24. 2020

좋은 기억을 남기는 법, 해마를 찾아서.

기억의 파편을 모아 완성한 과거의 나, 그리고 현재.


해마를 찾아서윌바 외스트뷔 & 힐데 외스트뷔 안미란 옮김, 민음사


#오랜 친구가 좋은 이유는 공유하는 추억이 많기 때문이다. 무르익는 술자리에 현재의 이야기들이 바닥나고 나면, 하나 둘 이야기 보따리가 펼쳐지듯 그때 기억나 로 시작하는 말이 늘어간다. 10년을 함께 한 친구들이고 한떄는 24시간을 공유한 사이였다고 해도, 이따금 기억의 톱니바퀴가 어긋나는 순간들이 있다. 한 사건을 두고 모두 "함께" 그 사건을 겪었음에도 객관적인 사실의 기억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저 삶의 파편들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입장에서 각자의 시각으로 다른 면을 보았나보다 하였다. 기억이 나의 지배 아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20년이 넘는 나이를 먹어가고 날마다 조금씩은 다른 하루를 쌓아가다 보면 기쁜 일은 기쁜 일이라 기억이 나면 좋고 나쁜 일은 나쁜 일이라 잊을 수 있으면 좋을 것이라고, 결국 기억을 소유하는 것도, 꺼내어 회상 하는 것도 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윌바와 힐데의 <해마를 찾아서>에서의 결과는 그렇지 않다. 기억을 바라보는 우리의 한계를 확장시키고 그저 신의 선물이라 생각했던 망각의 원리까지 알게 된다면, 더해 기억을 통해 미래까지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는 과연 기억을 소유하는가 , 기억에 지배 당하는가에 대한 회의가 몰려온다.


-몇 분 밖에 살 시간이 남지 않았고삶을 돌아봐야 한다면 무슨 기억을 선택하겠는가?-


 언젠가부터 깜 빡 했다는 것이 잦아지기도 하고, 어느 누군가는 그런 걸 어떻게 기억하느냐고도 묻는다. 혹자는 출국길에는 꼭 향수를 하나 사서 냄새로 여행지를 기억한다고 한다. 나의 경우에는 여행지에서 꼭 귀걸이 한쪽을 잃어버리는 편인데, 그 여행지와 아주 잘 어울리던 것이라 자주 끼고 다녔던 것일 때가 많다. 그렇게 귀걸이를 잃어버리면 마치 다신 그 곳에 가지 못할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이따금 지도에 꽂아놓은 귀걸이를 보면서 그 나라를 추억하는 매개체로 삼고는 한다. 이렇듯 누군가에게는 후각으로, 시각으로 . 늦은 오후의 저녁 우연히 들은 풍경 소리로 고향집에 들어가 맡게되는 엄마의 요리 냄새로 다가오는 기억들의 이야기가 과학으로 풀어졌다. 케이스를 다루며 구체적인 상황의 설명과 실험의 방법들을 읽다 보면 몇번이고 페이지를 돌아가 다시 읽어봐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인간의 기억이, 이렇게 단순하게 조작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을 꽤 잘 보냈는데 인생이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을 경우에도 탓을 부모에게서 찾는 경우가 있어요. 무언가를 잘못했거나 어딘가가 부족했을 게 뻔하니까요.완벽한 부모는 없잖아요.사람들이 어린시절에 나쁜 경험을 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지만, 사소한 사건에 과중한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들이 있죠

.p.115 - < 해마를 찾아서 >



뇌 깊숙한 곳, #해마 를 닮아 이름 붙여졌다는 기억 중추의 발견부터 기억의 위치를 설명하는 흐름은 실제로 #해마 라는 신비한 생물에 빗대어져 이해하기 쉽다. (진짜로 나는 문과에 어문학과 졸업생인 슈퍼 문과니까 믿어도 좋다.) 그 이후로 흘러가는 #트라우마 의 이야기나, #허위기억. 기억력의 한계 실험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실제로 기억을 바탕으로 해마는 가짜로 추억을 만들기도 한다는 것으로, 리플리 증후군으로 불리는 #허언증 이 아니라도 인간 스스로는 주변인들로부터 개인의 이야기를 수집해 그 때 그랬잖아, 맞잖아 맞아 하는 식의 반복을 통해 있지도 않았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심지어는 그저 우연히 본 영화의 한 장면이거나 어린시절 잠깐 한 상상을 통해서도 기억은 가짜 추억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한다. 혼란스럽지 않은가? #메멘토 가 따로 없을 지경이다.



우리가 경험했다고 믿는 게 언제나 사실인 건 아니다. 티끌만치도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다른 사람의 기억을 '훔치게' 될 수도 있다.

p.147 - < 해마를 찾아서 >


우울증의 대표 증세로 꼽히는 건망증을 예시로 망각을 설명하는 흐름이나, 현재를 알지 않고서는 미래의 트렌드를 읽어낼 수 없다는 뉴욕의 건축가들의 입을 빌려 진행되는 기억의 미래 구축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한 과학의 영역을 넘어서는 재미를 선사한다. 숨쉬는 것을 인식하면 갑자기 들숨 날숨이 어색해진다. 혀 놓는 위치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 순간 혀는 입 안을 공회전 하듯, 어느 순간부터는  내 머릿속에 당연히 있고, 내가 원하는 대로 추억하고 멍하니 공상하던 순간들을 어색하게 생각하게 된다.



"젊은 사람들의 기억이 피해를 입는 경우, 이는 아주 뜻밖의 일인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기억력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 망각은 점점 흔해진다.  학습이 느려지고 이름이 생각 안 나는 등의 흔한 형태의 망각은 우리를 점점 더 자주 괴롭힌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 떨어져도 그떄까지 평생 모은 지혜를 앗아가지는 못한다. 모든 지식과 인생의 경험들은, 비록 이들이 자리잡는 데 점차로 시간이 더 많이 걸리기는 하지만 커다란 지식 저장고가 된다

.…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몰락이 아니라 변화이다."



 수많은 기억의 수 만큼이나 다양하게 등장하는 현존 인물들의 생생한 경험담과 그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연구들은 '과학' 이라기 보다는 '관찰'에 가깝고, 따라서 깊은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알츠하이머의 시작과 끝, 기억하지만 추억하지 못하는 이들의 대화를 읽어내리다 보면 너무나도 당연해서 굳이 고민하지 않았던 기억을 어떻게 남겨왔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수 많은 것을 보고 듣고 , 원하지 않는 것 마저 알아가는 삶의 여정 속에서는 잊지 않아야 할 것도, 잊어야 할 것도 많을 것이다.  스스로가 무엇에 중점을 두고 살아가는지, 기억이 단순한 오감의 조각들이 아닌 개인의 가치관과 인생을 이어오는 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순간들에 이 책이 함께할 수 있다면 조금의 논리를 더해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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