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건강한 "거리두기"의 방법. 내 문제가 아닌데 내가 죽겠습니다. - 유드 세메리아
사람에 대한 욕심은 대게 과하지만,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한 욕심은 정말이지 항상 투머치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끼기 때문에. 그리고 나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바른 길로 갔으면 하는 마음과 그의 의지 그대로 이루어내기를 바라는 마음. 오직 행복이라도 했으면 하는 마음 사이에서 늘 갈등한다. 특히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가정의 분위기에서 자라왔다면 이 책의 제목에서부터 한숨을 쉴 지도 모르겠다. 프랑스의 심리치료사 유드 세메리아가 애착관계에 대한 연구를 기반으로 써내린 가족 심리학, < 내 문제가 아닌데 내가 죽겠습니다. > 는 가족관계에서 사랑으로 인한 고통을 감내하는 이들을 위한 솔루션과 공감을 담았다.
다양한 가정의 분위기가 존재하고 있는 지금이지만, 대부분의 가족은 끈끈한 유대로 이어진다. 함께한 추억과 성장, 고난과 역경 등의 과정에서 피보다 진한 그 무언가로 느껴지는 가족애는 당연히 서로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 할 것 처럼 보이나, 안타깝게도 때로는 그 방향이 엇나갈 때가 있다. 특히 마음 아픈 누군가를 가슴에 품은 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유난히 아픈 손가락, 내가 놓쳐버리면 영영 없어질 것 같은 그 가족을 위해 평생을 무던히 노력해오며 오히려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은 공허함을 느껴본 경험이 아마 한번 쯤은 있는지?. 프랑스의 다양한 가정을 연구하며 이러한 감정을 느껴온 이들과 함께한 유드 세메리아는 이런 문제를 위해서는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기꺼이 그 손을 놓아버리는 것도 때로는 중요하다는 조언을 건넨다.
조력자는 심리치료를 통해 의존적 가족의 삶을 통제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더불어 조력자는 의존적 어른에게 자기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버리려고 애써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말 그대로 자신의 에너지를 계속해서 헛되이 흘려보내야 하니까요.
<내 문제가 아닌데 내가 죽겠습니다.> 중
한국의 사회에서, 혹은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특정한 가정의 분위기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곤 했던 문제들이 사실 사랑하는 마음 그 하나만으로 어떤 관계에서나 일어나곤 한다는 사례들을 읽다 보면 "이런 문제가 없어서 다행이야" 라는 생각 보단 언제든지 이런 문제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괴롭힐 수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비단 자살을 빌미로 나를 붙잡는 혈육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닌, 어떤 관계에서든지 얼마든지 애정을 위해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경중을 따지며 안도하고 걱정 하기 보다는 올바른 관계를 정립함으로서 건강한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것. 그로 인해 나를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만이 나를 살리는 방법이다.
실제 원인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근거 없는 화난 감정에 사로잡혀 있으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러한 감정을 정당화 시키려고 하니까요.
의존적 어른은 갈등 상황 속에 상당한 장점이 있음을 직관적으로 압니다.
바로 갈등 상황이 그 안에서 대립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단히 붙들어 매어 준다는 점이지요.
나 스스로 또한, 가끔 가족의 문제로 괜한 걱정을 하거나 화를 낼 때가 있다. 사람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단 걸 알지만 서로 사랑하는 게 당연하고, 그렇지 않으면 죄책감 마저 들곤 하는 가족의 관계에서는 욕심이 흘러넘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읽어 온 숱한 심리학의 책에서는 그저 원인을 밝히기에 급급했다.
모두가 알듯이, 그렇기 때문에, 그래서 이렇게 된거야 라는 단 하나의 이유를 찾거나 나를 망쳐온 수많은 역사를 들춰내다 보면 '탓'을 하게 된다. 내 탓 , 남 탓. 쉽지만 결국 돌아오는 현실에서 해결되는 것은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잊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무심한 조언 또한 그저 이상향이 아닌가. 수많은 가정의 케이스들을 연구하여 상처 받은 이들, 상처받은 이들로부터 상처받은 가족들을 연구한 저자는 단순히 그 원인을 밝혀내거나 모든 걸 내려두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조언 대신 '그러한 관계에서일지라도' 나 스스로를 돌보기 위해 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삶의 장치들을 소개한다.
가족을 사랑하는 당신의 마음도, 나를 위하는 나의 마음도. 맞고 틀린 것은 하나도 없다. 그저 살아야 한다. 그리고 살아갈 것이라면 바르고 건강하게 생존해야 한다.
자기 자신과 타인 사이에 제대로 된 경계선을 분명히 긋고,
이것에 익숙해지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사회는 '가정의 문제'를 대단한 것으로 치부하는 듯 하다. 온갖 매체에서 흘러나오는 자극적인 기사와 극한까지 내몰린 듯한 아동학대, 부부 문제 등을 바라보다 보면 가끔 "이건 아무것도 아닐거야" 라는 식으로 가까운 문제를 흘려버리게 된다. 감정의 역치가 낮아져버리면 나중에 눈덩이 처럼 불어난 감정에 압도되기 쉽다. 어차피 해결 못할 거니까, 가족은 원래 그런 거니까. 라는 마음으로 미뤄왔던 무거운 가슴 속 한켠을 위한 건강한 #거리두기 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유드 세메리아의 <내 문제가 아닌데 내가 죽겠습니다> 는 다정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통한 해결책의 실마리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