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래 선 나는 나일 뿐이다.
부침을 느낀지 꽤 되었다. 변화는 언제나 쉽지 않기 때문이다.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것 아는 순간, 원하지도 않았던 기다림이 시작된다. 행복은 확실히 아는 것에서 온다고 하는데, 외부에서 오는 변화를 확실하게 아는 순간부터는 약간의 두려움이 함께 느껴지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 그 두려움은 설렘으로 포장할 수 있다. 부정적인 감정을 최대한 속이고자 하는 이유는 외부에서 오는 변화로 인해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오늘 마주한 이 변화는 나에게 꽤 큰 일처럼 느껴져서, 두려움이 너무나도 컸다. 가까워질수록 점 점 더 커지는 것만 같은 실제의 사이즈에 자꾸만 압도되는 듯 했고 나는 자꾸 도망가고 싶었다. 외부의 변화는 "쉽지 않다" 정도로 말할 수 있겠지만, 사실 내가 정말 무서운 건 "내부의 변화"다. 외부의 변화는 스스로의 사이즈를 키우지 않을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일상의 모습이 바뀌면서 지금 내가 좋아하는 나의 버전이 변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점 점 더 커졌으니까.
그 두려움은 직전에 너무나도 커져서 어제는 약간의 방전을 겪었다. 퇴근 후 숨어들듯 집에 돌아가 침대에 누워 네시간을 가만히 있었다. 지난 몇주간 그 두려움을 피하고자 평일과 주말 쉴틈없이 바쁘게 나 자신을 갈았다. 일기를 쓸 수 없을 정도로 늦게 자는 경우가 많았으니, 숙제처럼 쌓인 감정의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나갔다. 눈물을 보이기엔 현실적인 일이었으니, 가만히 고요하게 나는 침전하는 듯 했다.
거실 불만을 켜두고 어두워진 방안에 잠겨 창밖을 바라보는데, 커튼 사이로 희미한 빛이 보였다. 달이었다. 남서향의 집을 계약하면서 달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달은 꼭 이런 때 모습을 보여주는구나. 뛰지 않아도 가빠진 숨을 내쉬며 발코니로 나가 한참 손톱달을 바라보다보니 나는 좀 괜찮아진 기분이었다. 이 흐린 하늘에 달도 뜨는데, 인생이 조금 흐리다고 빛나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겠어? 늘상 변화하는 달은 늘 뜨던 자리에 뜨기 마련이다. 예쁜 모양의 달일 수도 있고, 기운 모양의 달 일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그 모양새는 보는 나의 마음에 따라 달라졌다. 마음에 구름이 많이 낀 날에는 처량해도 보였다가, 맑은 날에는 곁의 별도 보였다가. 정말 중요한 것은 달이 어땠든간에 그 아래 서있는 나는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달이 어떻게 보였던 날이든 나는 나일 뿐이었다.
부침을 느끼는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때로는 그런 날도 필요하다. 숨통이 트이는 경험을 하면, 숨통을 트는 법을 배우게 되기 마련이니까. 나는 조금 버거운 나 자신을 인정하기로 했다. 인정은 모든 것을 우습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인정을 하고 보면 이게 뭐라고 우스워지나. 하고 피식 웃게 되기도 한다. 변화를 거부할 수는 없으니, 그 아래 선 나를 받아들이는 수 밖에. 말하지 않는 것들에 받는 위로가 소중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