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는거만 하는게 아니고.. 할 이유가 없거덩여
들어가며
새해를 맞아 감사하게도 승진을 했습니다. 승진 전부터, 채용을 하고 팀원을 멘토링하며, 이따금 이런 고민을 했어요. “아니, 왜 시키는 일만 하는 거야?”
외국인 리드로서 현지 직원들과 소통하는 건 어떨 땐 Exotic 한데요, 어떨땐 Exhausted 합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죠. 그들이 시키는 일만 한 게 아니라, 제가 시키는 일밖에 할 수 없게 그들의 손발을 묶고 있었다는 사실을요. 이건 저의 아주 부끄러운 반성문입니다.
딱딱한 인더스트리에서 일하며 제가 제일 싫어했던 게 Waterfall식 주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제가 그러고 있더라고요. 싸가지없이..! “이거 언제까지 해주세요.”라고요.
기획자로서 잘 알면서도 간과했습니다. ‘왜(Why)’가 빠진 지시는 소통이 아니라 그냥 소음일 뿐이라는 걸요. 하물며 요즘 친구들에게 Waterfall이 얼마나 답답할까요?
그래서 판을 깔아봤습니다. “이게 왜 필요하고, 유저가 지금 뭘 원하고 있는지”를 투명하게 다 까놓고 공유했죠. 그랬더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서비스 기획은 처음이라던 팀원이 뉴스레터 기획에서 의견을 내고, 시키지도 않은 데이터를 뜯어보고, 광고 없이도 engagement rate 우상향 곡선을 그려냈어요. 역시 사람은 '덕질'할 수 있는 판만 깔아주면 무서운 속도로 달린다는 걸, 제가 가르친 게 아니라 팀원한테 배웠습니다.
상사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걸 '아부'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그건 고도의 생존 전략(Managing Up)이라는 걸요. 상사의 KPI를 먼저 챙겨서 그를 안심시켜야, 내 프로젝트에 가해지는 자잘한 태클을 막을 수 있거든요.
팀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시스템을 만든 건 대단한 인격자라서가 아닙니다.
주 1회 싱크(Sync): 팀원의 병목을 빨리 뚫어줘야 제 퇴근이 빨라집니다.
온보딩 시트화: 제가 처음 왔을 때 겪은 '정보의 늪'을 팀원들이 반복하면, 결국 질문 폭탄은 저에게 돌아오니까요.
"우리 모두 다 같이 정시 퇴근하자”는 아주 이기적이고도 절박한 목표가 시스템을 만든 셈이죠. 리더의 피드백은 대단한 평가가 아니라, 그냥 다 같이 내일 좀 덜 고생하기 위한 ‘환경 설정’일 뿐입니다.
직장 생활에서 제일 현타 올 때가 언제일까요? 일은 태산인데 결정권은 하나도 없을 때입니다. 저도 그걸 제일 싫어하면서, 현지 직원들에게는 “이거 오타 났네”, “이건 내 스타일 아냐”라며 숟가락을 얹고 있었더라고요.
적어도 저에겐, 사소한 수정은 오너십을 갉아먹는 독약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방향성만 맞다면 제 취향이 아니더라도 꾹 참습니다. 미팅에서도 막내 직원이 직접 현지어로 소통하게 하고, 결론도 본인이 내게 했습니다.
있지도 않은 내 권위가 없어질까 봐 사실 조금 쫄았는데요? 그런데 결과는 반대였어요. 파트너사는 우리 팀원을 전문가로 존중했고, 제가 뒤에서 슬쩍 등장하면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최종 보스 효과’까지 덤으로 얻었습니다. 통제는 일시적인 결과를 만들지만, 존중과 권한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만들어 줍니다.
주말을 쪼개 무언가를 배우고, 더 나은 곳으로 이직을 꿈꾸는 우리 팀원들이 정말 의지가 없는 사람들일까요? 아니었습니다. 단지 ‘더 열심히 할 이유’를 제가 못 찾아줬던 것뿐이죠.
물론 지금도 우리 팀원 중 누군가는 어디선가 제 욕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직원은 자기 이름으로 된 뉴스레터 시리즈가 있고, 파트너사와 치열하게 밀당해 본 경험이 생겼습니다.
오늘도 맥락 한 바가지를 들고 대화를 시작합니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서 '시키지 않은 일'을 멋지게 해낼 준비가 된, 꽤나 괜찮은 사람들이라는 걸 이제는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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