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선 모두 춤을 추는 거야, 암스테르담 AMF

멋쩍어하며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by 킴나

외국에서 교환학생을 하면, 거기서 열리는 제일 큰 공연에 가보고 싶었다. 그것이 무슨 공연이든 상관 없었다. 클래식이라면 클래식, 재즈라면 재즈. 인터넷을 뒤져보니 내가 있는 하반기에는 암스테르담에서 EDM 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했다. EDM이라면 전혀, 나의 장르가 아니었다. 한국에서 클럽도 몇 번 가본 적 없었다. 더욱이, 나는 익숙한 악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EDM을 ‘라이브’로 연주하고 그걸 사람들이 보러 공연장에 가는 것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제일 크고 유명한 페스티벌이라서 고민하던 중, 암스테르담 뮤직 페스티벌(AMF)의 슬로건에 삘이 꽂혀서 바로 티켓을 예매해버렸다. 슬로건은 'WE OWN THE NIGHT'이었다. 그 밤은 우리가 지배한다. 패기있고 멋졌다. 밤 9시부터 새벽 6시까지 하는 페스티벌다웠다. AMF가 ADE라는 더 큰 행사의 일부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다.


네덜란드를 스피드 스케이팅의 나라라고만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사실 네덜란드는 EDM 강국이다. 돈 디아블로, 마틴 개릭스 등 한 번쯤 들어 보았을 법한 DJ들이 네덜란드 출신이며 심지어 네덜란드에서 가장 큰 국경일 중 하나인 킹스데이(King’s Day)에는 국가(國歌)도 EDM으로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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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네덜란드의 EDM 사랑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ADE, 암스테르담 댄스 이벤트(ADE)다.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은 10월 중순이 되면 ADE와 함께 온 도시가 EDM으로 물든다. '댄스 이벤트'라는 말은 곧이곧대로 들었을 때는 이게 웬 춤판인가 싶지만 사실 댄스 뮤직은 전반적으로 EDM 음악, 춤출 수 있는 음악을 뜻하고 암스테르담 댄스 ‘이벤트’라는 광범위한 이름은 이 기간에 일어나는 많은 이벤트들을 함축하고 있다.


ADE가 열리는 일주일 동안 암스테르담 시내 전역에서는 EDM 공연도 열리고, EDM 아티스트들의 팝업스토어도 열리고, EDM 관련 세미나와 컨퍼런스도 열린다. 암스테르담이 네덜란드 뿐 아니라 전세계의 EDM 수도가 되는 셈이다. 각 국의 EDM 전문가들, 음악 산업 전문가들이 모여 음악 산업의 미래를 예측하고 토론하고, 음악 산업에 진입하고 싶은 젊은이들이 와서 다양한 질문을 하며, 각 나라에서 떠오르는 뮤지션들이 세계의 관계자들 앞에서 공연을 할 기회를 얻는다. 온 도시에는 ADE 깃발이 펄럭이고, 암스테르담의 공연장에서는 매일매일 다른 공연이 열린다. 꽤 유명한 DJ들의 공연은 일치감치 매진된다.




그 주, 길거리를 지나다가 만난 옷가게는 간이 클럽이 되어 낮 2시부터 사람들이 디제잉을 즐기고 있었다. 굉장하다고 생각했다.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옷가게에서, 대낮부터 바운스를 타기에는 조금 멋쩍어서 조용히 웃으며 잔뜩 신이 난 사람들과 공연장의 광경을 핸드폰에 담았다. (영상은 사라졌다...) 물론 멋쩍어하는 타지인은 나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에 옷가게 안만큼 옷가게의 문가에도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서성거렸다. 다들 웃는 표정이었다. ‘저 사람들은 조금 미친 게 아닐까’하는 표정이었지만 옷가게 안의 사람들도, 문가의 사람들도 즐거워보였다.


이 광경을 보고 나는 그 주 토요일 밤부터 시작되는 마무리 콘서트, 암스테르담 뮤직 페스티벌(AMF)를 상상하며 기다렸다. 그 땐 나도 마음껏 춤추고 놀고 싶었다. 대낮의 옷가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신경 쓰지 않고 몸과 머리를 흔들었다. 눈치를 보던 건 문 밖의 사람들 뿐이었다. 토요일, 나는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흔들어 제낄 것이다.


공연 당일, 흔들어 제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미리 소개받은 일행을 만났다. 건너건너 아는, 처음 본 사람이었지만 다행히 우리 둘 다 낯을 많이 가리지 않았다. 겨우 표를 보여주고 마약과 담배, 위험 물건을 찾는 검색대를 지나 들어갔는데 웬걸, 공연장 안은 텅텅 비어있었다. 11시는 넘어야 달아오르는데 나는 너무 범생이처럼 일찍 가버렸던 것이다. 나름대로 30분은 늦게 들어간건데, 역시 노는 물이 다르구나. 조금 김이 새서 맥주를 사 마시며 분위기가 달아오르길 기다렸다. 평소에는 맥주 355ml 캔 하나면 취했는데 내가 이미 잔뜩 흥분한 탓인지 꽤 큰 한 잔을 쭉 들이켜도 멀쩡했다. 일행은 아직 맥주가 남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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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잘 못 마신다며?”

“몰라 근데 오늘은 잘 들어가네! 나 한 잔 더 마실게.”


그렇게 맥주를 한 잔 더 사서 홀짝이며 가장자리 펜스에 기대어 앉아있다 보니 슬슬 사람이 찼다.


사람들은 다양했다. 과감히 헐벗은 사람, 평범하게 반팔 티를 입은 사람, 토끼 머리띠에 짧은 튜튜를 맞춰 입은 친구들, 남녀노소 할 것 없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4050의 비율이 높았다. 우리나라 페스티벌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인구 표본이라서 더 신기했다. 이 나라의 EDM 사랑은 나이와 성별, 인종 그 모든 걸 초월했다.


“끌리는 노래가 생기면 그 때 사람들 사이로 가자!“


이야기를 해둔 뒤에 일행과 함께 사진도 찍고 인스타에도 자랑하던 중이었다. 아델의 ‘Hello’ 리믹스가 나왔다. 처음 들어보는 버전이었는데 소름끼치게 좋았다. 무대 위에는 왠 하얀 플라스틱 원통을 쓴 사람이 올라와있었다. 원통은 조명에 맞춰 색색 조명이 들어왔다. 눈처럼 그려진 커다란 x자 두 개가 익살맞아 보였다. 마시멜로(Marshmello)였다.


무슨 노래를 들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미 잔뜩 흥분상태였을 뿐만 아니라 모르는 노래여서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대신 ‘와 이 사람 집에 가서 찾아봐야지’했던 다짐만 기억난다. EDM은 모르는 노래여도, 터지기 직전에 공식처럼 고조되는 부분이 있어서, 미리 알아야만 따라 부를 수 있었던 많은 콘서트와는 달랐다. 몰라도 함께 터질 수 있었다. 평생 마주칠 일 없는 전세계 사람들이 같은 노래에 미쳐서 같은 공간에서 뛰고 있었다. 짜릿한 순간이었다.


아티스트가 바뀌는 사이에는 사회자가 시간을 메웠다. 제일 흔한 멘트는 여러분의 국기를 보여달라는 거였다. 나는 몰랐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미 국기를 준비해왔다. 브라질,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미국, 일본, 한국, 중국, 그리고 수많은 국가들의 국기가 사람들 머리 위로 올라왔다. 누군가의 수고로 무등 위에 올라온 국기들도 여럿 보였다. 한국 국기도 위쪽에 있었다. 사회자는 한 국가 한 국가 보이는 국기의 나라 이름을 외쳤다. 새삼스럽게도 이렇게 많은 국적의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놀고 있다는 것이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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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AMF의 음악보다는 순간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고조되기 전 폭풍전야같이 잔잔하던 파트에서 내 주위 사람들이 갑자기 원을 만들며 작게 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어리둥절해하며 일행과 함께 밀려났다. 몇몇 사람들은 다시 가운데로 뛰어들었고, 그 때마다 임시 진행요원을 맡은 것 같은 사람이 진정시키며 그를 원 밖으로 밀었다. 나는 영문을 몰라 일행에게 물었다.


“이거 뭐하는 거야, 왜?”

“그거 하려나봐! 그거 몰라?”

“뭐?”


소리를 지르듯 대화해야했다. 채 대답을 듣기 전, 서서히 치닫던 음악은 정상에서 펑하고 터졌다. 동시에 사람들이 그 원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슬램이었다. 락페스티벌에서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걸 지금, 여기서, 이렇게? 혹시나 일행을 놓칠세라 서로 팔을 잡고 있었다. 사람들이 밀려들었고 나도 뛰어들었으니 충돌은 당연했다. 아팠다기보다는 놀랍고 즐거웠다. 이걸 하려고 갑자기 밀어댄 거구나, 귀여운 사람들.


그 와중에도 나는 언젠가 이 순간을, 내가 가진 공연에 대한 열정의 증거로 쓸 수 있겠지 생각했다. 전형적인 포트폴리오형 인간. 영상을 여럿 찍고, 일행과 함께하는 셀카를 찍으려고 팔을 올린 때였다. 전혀 모르는 백인 아저씨가 끼어들었다. 응? 하고 돌아보니 아저씨는 빨리 사진을 찍으라며 재촉했다. 그렇게 아저씨는 눈을 크게 뜨고 좀 찌그러진 표정을 하며 우리와 사진을 여러 장 남겼다. 핸드폰을 내리고 아저씨와 우리는 굿, 굿, 하며 엄지를 들어보였다. 그리고 다시 무릎 관절이 고장난 인형처럼 바운스를 타며 손과 머리를 흔들었다.


9시에 시작한 공연은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이어질 예정이었다. 잠시 쉬기 위해 스탠딩이 아닌 좌석 구역으로 가려고 했더니, 프리미엄 티켓을 산 사람만 올라갈 수 있는 좌석이라며 출입을 통제당했다. 어쩐지 사람들이 스탠딩에만 많더라니. 다행히도 무대 바로 옆, 시야 제한석은 별도의 티켓 없이도 올라갈 수 있었다. 우리는 무대가 가려진 옆자리에 앉았다. 스피커의 뒷면을 볼 수 있는 자리라서 소리도 웅웅거렸다. 공연은 포기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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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공연장 가득 찬 사람들과 현란하게 쏟아지는 수십, 수백 개의 레이저를 볼 수 있었다. 작아진 사람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뛰놀고 있었다. 왜 팬들을 새우젓이라고 하는지 어렴풋이 느꼈다. 새우젓처럼 작아진 사람들은 끊임없이 뛰고 환호하고 춤췄다. 그 날의 옷가게처럼 멋쩍어하며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기선 모두 함께 춤을 췄다. 나도 다시 그 춤판으로 섞여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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