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bert Heijn, Amazing Oriental Amsterdam
이렇게 맛있어도 되나요
이게 사람이 만든 건가요
-슈퍼주니어 ‘요리왕’
교환학생에게 유럽에서 매 끼 외식을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암스테르담은 외식 물가가 비싼 편이다. 한 끼에 만 삼천원씩 매일 쓰다보면 기숙사에 누워서 숨만 쉬어야하는 때가 금방 오고야 말 것이다. (매 끼 사먹지 않아도 그런 때가 생각보다 금방 와서 문제다.) 그래서 요리를 많이 했다. 한국에서 자취를 할 때는 밥솥도 없었는데 암스테르담에서는 쌀을 몇 번 산 지 모르겠다.
나는 정말 잘 해먹고 살았다. 같이 교환학생을 간 친구들 중에 요리를 제일 잘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국경을 넘나드는 메뉴였다. 토마토소스를 넣으면 양식이고 굴소스를 넣으면 중식, 간장과 생연어를 먹으면 일식. 한식 중식 양식 일식을 아우르기 위한 재료는 두 곳에서 구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 국민 슈퍼마켓 알버트 하인(Albert Heijn)과 “놀라운 동양!“ 어메이징 오리엔탈(Amazing Oriental)이다.
나는 마트를 정말 좋아한다. 이건 특히나 아빠와 닮은 면인데, 아빠나 나처럼 ‘쌈마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마트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꽉 차있는 식재료와 그걸 담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좋고, 각종 할인행사를 하는 상품들을 꼼꼼히 따져보는 것도 좋다. 쾌적하고 시원하고 적당한 소음, 먹을 것이 가득 찬 곳. 항상 무언가를 분주히 사는 사람들은 무엇을 해먹을지 상상한다.
룸메이트는 마트 가길 귀찮아했다. 나는 매일매일 마트에 갔으므로 내가 식재료를 사오거나 산책 겸 같이 재료를 사러 갔다. 항상 구비할 것은 마늘, 양파, 우유, 생과일 오렌지주스, 햄, 베이컨, 계란, 치즈, 토마토소스, 쌀, 면. 여기에 난 채소와 플레인 요거트, 과일 몇 알을 챙겼고 룸메이트는 아보카도를 챙겼다. 식재료가 떨어질 즈음 가서 20유로 이상 지출하는 것이 살짝 부담스러웠지만 야무지게 다 해먹었다.
알버트 하인은 이마트같은 곳이라서 생활용품부터 식재료까지 다양한 것들을 구비하고 있다. 캔들 켜는 것부터 프라이팬, 두유 요거트도 있다. 주로 여기서 장을 봤다. 와중에 쌀, 팽이버섯, 떡볶이, 라면 같은 것이 먹고 싶어지면 어메이징 오리엔탈에 갔다. 청정원 돼지불고기 양념도 있고 비비고 떡볶이 양념도 있다. 그러니 암스테르담에 살면서 한식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중국인이 하는 가게였는데 예상과는 달리 서양인 손님도 무척 많았다.
그 중에서도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친구와 함께 어메이징 오리엔탈에 간 날이었다. 국물 요리를 해먹고 싶어서 다시마와 국물용 냉동 멸치를 샀다. 계산대 줄을 섰는데 뒤의 서양인 남자가 불닭볶음면을 종류별로 들고 있었다. 불닭볶음면, 핵불닭볶음면, 카레불닭볶음면, 냉불닭볶음면까지. 나도 불닭볶음면을 좋아하지만 오리지널만 먹어본 차였다. 혼자 있었다면 흘긋 보고 신기해했을 일이지만 친구는 오지랖이 넓었다.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지드래곤 콘서트에 혼자 가서 스탠딩하던 앞뒤 유럽 팬들과 친구가 되는 사람이었다.
친구는 나와 눈빛을 주고받더니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두 유 라이크 불닭볶음면?
“왓?”
“두 유 라이크 디스 라면!”
“아~ (이하 한국어 번역) 응. 나 불닭볶음면 맛있게 먹었어. 내가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데 학생들이 불닭볶음면을 추천해주더라고. 오리지널이 맛있길래 나머지도 사본거야.”
“여기서 ‘핵’이 무슨 뜻인지 알아?”
친구는 핵불닭볶음면의 포장지에 그려진, 빨간 폭탄 위의 글자 같은 것을 가리켰다.
“아니, 뭔데?”
“핵! 누클리어 핫! 베리베리, 베리 핫!”
“하!하!하!하!하!”
들어본 중 가장 호탕한 웃음소리였다. 하하하하하, 하고 남자는 크게 웃었다. 우리는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외국 남자를 ‘핵’불닭볶음면으로 웃겼다는 데에 큰 기쁨을 느꼈다. 다시 생각해도 참 이상하지, 누클리어(nuclear) 파이어 치킨 누들이라니... 어쨌든 몹시 맵다는 걸 강조하고 맛있게 먹으라고 했다. 그쯤 우리 계산 순서가 왔다.
네덜란드에서 해먹은 음식은 수도 없이 많은데 역시 가장 큰 챌린지는 <암스 추석 대잔치>였다. 같은 학교 교환학생들끼리는 암스테르담을 ‘암스’라고 불렀다. 다른 학교도 그렇게 줄이는지 모르겠다. 그걸 조직할 당시 나는 참을 수 없이 지루한 수업을 듣고 있었다. 노트북을 열고 카카오톡을 하던 중이었다. 외국 애들은 구글링을 하거나 왓츠앱을 했다. 사람 심리는 다 똑같다.
갑자기 사촌오빠에게 사진 한 장을 전송받았다. 외갓집 추석 저녁을 위해 엄마가 한 갈비찜과 잡채. 추석이었다. 엄마의 음식 솜씨는 매우 화려하다. 못하는 요리는 탕수육 하나밖에 없다. 이유는 아직도 모른다. 그중에서도 엄마의 갈비찜은 추석과 설 두 번만 맛볼 수 있는 고급 반찬이다. 그 사진을 보고 참을 수 없이 부러워졌다.
나는 원체 샘이나 불평이 많은 사람은 아니어서, 암스테르담의 그저 그런 (나쁜) 날씨나 으깬 감자를 네덜란드 전통 음식이라고 소개하는 그들의 (안일한) 식문화에는 크게 감흥이 없었는데 그날은 정말 샘이 났다. 우리도 추석 음식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비록 명절에 전조차 한 번 부쳐본 적이 없었지만. 백종원과 황금레시피의 힘을 빌려 30분 만에 뚝딱 레시피를 완성하고 단체 카톡에 뿌렸다.
>암스 추석 대잔치<
1. 개요
2017.10.04
추석 당일을 맞아 시차가 7시간 늦은 암스테르담에서도 추석을 챙겨보자는 의미에서 시작됨
(이하 생략)
사람은 6명, 손은 12개. 요리에 능숙한 손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날은 모두 일심동체가 되어 고맙게도 이 일을 벌인 나의 지휘를 따라주었다. 메뉴는 닭볶음탕, 모듬전(두부, 대구, 애호박, 가지), 동그랑땡, 잡채. 모두 백종원 혹은 황금레시피였다. 12개의 손 중 칼질에 조금이나마 익숙한 손은 2개여서 그 주인인 내가 동그랑땡에 들어갈 야채를 다지고, 잡채에 들어갈 야채는 길게 썰고, 대구살은 포를 떴다.
전은 3명이 한 조가 되어 밀가루 – 계란 – 굽기 기술을 선보였다. 나머지 친구들은 동그랑땡 반죽에 양념을 조물락조물락 섞었다. 그렇게 여섯 사람 열두 손의 사투가 두 시간 이어지고 한 상이 완성되었다. 방을 치우고 의자를 동원해서 6명이 둘러앉았다. 닭볶음탕은 정신이 없어 간도 보지 못했고 잡채는 미리 해서 식어있었다. 우리는 하이네켄 맥주를 하나씩 따서 마셨다. 모든 요리는 우리의 노동의 결과물이어서 무척 맛있게 느껴졌다. 실제로도 닭볶음탕은 황금레시피보다 20분 더 끓인 탓에 진하게 우러나서 식당 요리 같았다. 갈비찜은 아니었지만 행복했다.
다음날 아침, 앓아누웠다. 명절증후군이 이런건가 싶었다. 암스테르담에서 명절 증후군을 겪을 줄 몰랐는데. 룸메이트에게 학을 떼며 1주일간 요리 보이콧 선언을 했다. 기름 냄새는 맡기도 싫다고 침대에 누워서 아침 요가 수업도 안갔다. 칼질 고거 했다고 손목이 아팠다. 요리 안하겠다고, 시리얼만 먹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 남은 소고기로 소고기볶음밥을 또다시 한 팬 가득 만들어 룸메이트와 나눠먹었다. 친구는 요리 보이콧한다고 하지 않았냐며 웃었지만 음, 내겐 한 끼를 요리해서 먹는 게 참 소중한 일인가보다. 그날 저녁도 참 맛있었다.
알버트 하인
Albert Heijn
암스테르담 각 지역에 다 있음
어메이징 오리엔탈 암스테르담
Amazing Oriental Amsterdam
Nieuwmarkt 27, 1011 JS Amsterdam, 네덜란드
http://www.amazingoriental.com/
월 – 토 9:30 – 18:00
일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