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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나 Aug 18. 2019

[청음] 나의 여름, 나의 음악

92914, Vampire Weekend, EXO, 아이즈원


1. "험난한 취준생활 중에는 떠나고 싶었어요" 92914 - 오키나와



이 노래를 들으면 당시가 떠올라서 마음이 축축히 무거워진다. 취준은 힘겨웠다. 아직 인턴이니까 끝이 난 것은 아니지만, 그 때를 돌아보면 정말 많이 힘들었다. 당시 가고 싶은 기업이 있었는데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다. 면접도 좋은 경험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그때 뱉은 한마디 한마디, 들은 한마디 한마디를 돌아보는 날이 계속되었다. 아침에 눈을 떠도 몸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에게는 매일 "나 오늘은 수업 가지말까..."하고 보냈다. 이쯤 되면 오늘 이라는 단어 뒤에 붙은 조사가 바뀌어야할 것 같은데, 싶을 정도로 자주.


술도 자주 마셨다. 마침 보드카 담금 세트를 선물받아서 이를 핑계 삼아 삼만 오천원짜리 투명한 보드카를 샀다. 보드카와 립톤 아이스티를 섞고, 얼음을 넣어 홀짝거렸다. 적막한 집이 싫어서 인스타그램 라이브도 켜서 사람들이랑 술 마시고 놀다가 잤다. 어떨 땐 맥주였고 어떨 땐 와인이었다. 그 때 일주일에 와인을 두 병은 비운 것 같다. 나는 맥주 한 캔에 빨개지는 사람이었는데, 그 땐 그거라도 마시고 싶었다. 그래야 했다.


그 시절에 이 노래를 많이 들었다. 92914의 오키나와. 파도 소리가 밀려오고, 갈매기 소리가 작게 들리고, 보컬의 숨소리 섞인 목소리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어디에 누워 들어도 나를 바다 앞으로 데려다주었다. 때는 한창 학기 중인 5월. 나는 아무 곳에도 가지 못하는 겁쟁이였으므로 한 눈에 부엌과 화장실이 보이는 원룸의 침대 위에 누워 눈을 감고 이 노래를 들었다. 여기는 바다다, 이곳은 바다야, 하면서.


I want to stay by the sea

Watching turn into red

Sit down with the people

Listen through this song


바다 옆에 머무르고 싶어

빨갛게 물드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사람들과 어울려 앉아

이 노래를 들으면서


반복되는 벌스라고는 흠흠 하는 허밍밖에 없는 이 노래는 파도가 부르는 노래 같았다. 파도소리가 잠시 치고 빠지는 소리가 아니라 꾸준히, 6분의 시간동안 계속 됐다. 그 위에는 사람의 목소리가 얹히기도 했고 통기타의 선율이 얹히기도 했고 동글동글한 일렉기타 소리가 얹히기도 했다. 조약돌을 닮은 소리였다. 무엇 하나 힘주지 않아서 좋았다. 더이상 어떤 것도 나를 힘들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 누워 이 노래를 들었다. 6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도 좋았다.


92914는 2017년 EP [SUNSET]으로 데뷔한 남성 듀오다. 92914는 그들의 작업실 주소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이들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아트인사이트의 류승진 에디터님이 작성해주셨다. 감사한 마음으로 링크를 첨부한다. (역시, 좋은 아티스트는 다들 알고 있는 법이다. 아트인사이트는 멋진 곳이다.)(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1206)



2.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은데, 죽고 싶지도 않아" Vampire Weekend - Harmony Hall



음악에 대한 애정으로 받아보는 이메일이 있다. 최근 케이팝 레이더로 아이돌 덕후들 사이에서 소소하게 화제가 된 Blip을 출시한, 스페이스 오디티의 뉴스레터다. 추천곡을 받아본다. 솔직히 많이 듣지는 않지만 자주 받아본다. 그 때 한 에디터가 뱀파이어 위켄드 라는 밴드의 컴백 소식을 무척 크고 요란하게 알려주었다. 6년 만의 컴백이라고 했다. 당시에는 스쳐지나가는 이름이었지만, 그 후에도 여기저기서 들으며 유명하긴 한가보다, 했다.


사실 지금 찾아보니 올해 1월에 받은 메일에서 추천받았다. 그런데 들어보게 된 이유는 면접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하하... 준비하던 회사와 연관이 있는 노래였다. 회사는 아쉽게 떠나갔지만 음악은 남았다. 지금 생각하니 좋은 점이 남았다!


I thought that I was free from all that questionin'

But every time a problem ends, another one begins

Ooh, ooh, ooh

I don't wanna live like this, but I don't wanna die


온갖 질문들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했지만

하나의 문제가 해결 되면 다른 문제가 시작돼

오, 오, 오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은데, 죽고 싶지도 않아


이 음악도 취준 시기에 들었다.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은데, 죽고 싶지도 않다. 딱 나의 심정이었다. 이렇게 사는 것도 싫은데 죽고 싶지도 않아서 우왕좌왕 어쩔줄 모르고 허둥댔다. 그리고 아직도 그러고 있다. 사실 한 개의 문제가 해결되면 다른 문제가 터지는 건 지금의 상황이랑 더 많이 닮은 것 같다. 실수투성이 인턴 생활을 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언젠가 때가 되면... 그러니까, 내가 실수를 덜 하게 되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최근에 개인 브런치에 인턴 생활 이야기를 썼었는데, 그 때마다 거대하게 실수를 쳤다.)


지금까지는 가사를 중심으로 이야기했지만, 가사에 반한 만큼 도입부 기타 리프에도 매료됐다. 원래도 컨트리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도입부에서 잔잔한 통기타 스케일이 울릴 때부터 이 노래를 오래 듣고 싶었다. 그리고 여전히 나 자신이 싫을 때마다 듣는 곡이다.  곡의 밝은 분위기와는 달리 가사는 꽤 장엄한 편이다. 내가 꽂힌 '이렇게 살고 싶진 않지만 죽고 싶지도 않다'는 것도 원래 맥락은 '우아한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안에는 뱀이 드글거리는- 이런 곳에서 살고 싶지는 않지만 죽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이렇게 살고 싶진 않은데 죽고 싶지도 않다면 열심히 사는 수밖에는 없기 때문에 왠지 들으면 힘이 난다.


뱀파이어 위켄드는 미국의 인디밴드로 콜롬비아 대학교 출신 친구들이 모여 시작했다. 현재는 세 명의 멤버가 남아있고, 여전히 미국에서는 인기 탑을 달리는 밴드라고 한다. 2010년 낸 정규 2집 [Contra]가 발매 즉시 빌보드 1위를 찍으며 그 인기를 증명하기도 했으며 2019년 1월에 낸 이 음반의 'Harmony Hall'도 롤링 스톤스 지의 '꼭 들어봐야할 곡'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3. "회색빛 하늘 위엔 분명히 더 밝은 빛이" EXO - 지나갈 테니



이쯤에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의 여름은 엑소였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상반기 전체가 엑소였다. 1-3월은 그동안 나온 노래들을 들었다. 4월에는 첸의 첫 솔로 앨범 [사월이 지나면 우리 헤어져요]를 듣고 찬열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들었고, 5월에는 시우민을 국방부에 뺏기면서 '이유'를 들었고, 7월에는 디오를 국방부에 뺏기면서 '괜찮아도 괜찮아'를, 백현의 첫 솔로앨범 [UN Village]과 EXO-SC의 [What A Life]를 들었다. 더불어 콘서트도 세 번 다녀왔다. 그 외의 많은 비공식적 행사들도 다녀왔다.


정말 많은 위로가 되었다. 오늘 본 호텔 델루나에는 귀신이 되어서도 오빠들의 꿈에 나와 '나에게 많은 힘이 되어주어 고맙다'는 말을 전하는 소녀귀신이 나왔는데, 물론 이 귀신은 방탄소년단의 팬이었지만 언젠가 나도 엑소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을 정도다. 나의 무조건적인 행복이 되어줘서 고맙다고. 나의 열렬한 엑소 덕질에 대한 이야기도 공유하고 싶다. 나는 후에 내가 엑소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게 되더라도 지금을 후회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엑소를 좋아하기 시작했던 건 2014년이었지만 중간중간 열정이 식었다가, 사람이 힘들면 종교에 귀의하듯 2019년 상반기 크게 힘들었던 나는 다시 엑소를 찾았다. 그리고 이렇게 된 데에는 2018년 12월에 쓴 [청음 이달의 아이돌 - EXO편]의 영향도 크다. 그 글을 보면 4집이 마음에 안든다고 써놨던데, 지금의 김나연은 4집을 무척 사랑한다. 내가 미쳐, Forever가 있는 그 앨범을 별로라고 칭했다니.. 코코밥이 별로였다니... 여름 하면 코코밥인데... 쉼미쉼미 코코밥... 아띵크아이라이킷...


그러다보니 엑소 콘서트도 처음이었다. 앞서 말했듯 나는 3장의 티켓이 있었다. 그 중 두번째 티켓을 사용한 토요일에, 공연 시작 30분 전에, 올림픽공원 입구에 있는 파리크라상에서, 나는 긴급한 업무 전화를 받게 된다. 그리고 내가 회사에 꽤 큰 금액적 손실을 입혔음을 깨닫는다. 문제는 월요일까지 해결할 수 없었고, 팀장님도 '월요일에 해결해요 나연님~'하고 전화를 끊으셨다. 손은 덜덜 떨렸고 머리 속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 와중에 공연은 시작했다. 응원봉을 흔들었지만 잠시 틈이라도 날라치면 나는 계속 회사 메신저로 사태를 수습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을 때에, 수호의 솔로 무대 차례가 되었다. '지나갈 테니'였다.


회색빛 하늘 위엔 분명히 더 밝은 빛이

먹구름 걷힌 뒤엔 눈부시게 빛날 테니


You shine like the stars

You light up my heart

오늘의 시련 끝엔 찬란하게 나를 비춰


정신 차리고 다시 일어나 툴툴 털고

더 이상 너에겐 고통은 스쳐가는 소나기

모두 참아내야 해-해-해

지나갈 테니 지나갈 테니

잠깐이면 돼-돼-돼

지나갈 테니 지나갈 테니


첫 날은 전혀 울지 않았지만 이 날은 무대를 보며 엉엉 울었다. 그의 복근 때문만은 아니었고(...) 다 지나갈 것이라고 말하는 그 말이 너무 고마워서 그랬다. 물론 무대를 하는 사람도, 같이 응원봉을 흔들던 나의 옆자리 에리도 전혀 몰랐겠지만 나는 그 말이 너무 고마웠다. 그 이후에도 무슨 실수라도 칠라 치면 이 노래를 듣는다. 지나갈테니... 지나갈테니... (5일 전에도 들었다. 정신 차리고... 다시 일어나 툴툴 털고...)


4. "어쩜 날 기다리는 내 무대를 찾아서" 아이즈원 - Airplane



작년, [청음]에서 '이달의 아이돌'이라는 기획을 시작했을 때 동료 에디터님의 추천으로 정한 첫 아이돌이 아이즈원이었다. 그들의 리뷰를 준비하면서 또 푹 빠져버렸었다. 아니 어쩜 이렇게 다들 귀엽고 노래도 좋지? 그리고 나는 여전히 조금은 아이즈원의 팬이었는데, 최근에 '비올레타'가 수록된 [HEART*IZ] 앨범의 'Airplane'을 듣고 완전히 빠져버렸다. 2주째 나의 출근곡이다.


출근이 10시까지이기 때문에 지하철이 아주 혼잡하지는 않지만, 50분 통근 시간 동안 환승을 2번이나 해야하는 가련한 위치에서 살고 있는 관계로 매일 출근길은 꽤 고단한 전쟁이다. 빠른 환승에 유리한 위치를 찾아 지하철에 몸을 실으면 꼭 이 노래를 듣는다. 살면서 힘듦이라고는 느낀 적 없는 것 같은 밝은 목소리들이 나의 출근을 응원해준다! 아직 노래 속 목소리의 주인을 찾을 만큼 열성팬은 아니지만 아이즈원이 함께 만들어내는 그 에너지는 정말 힘이 된다. 해체하지 말아줘...


날아라 Airplane

저기 반짝이는 작은 별을 따라서

어쩜 날 기다리는 내 무대를 찾아서

조금 더 높이 떠오를 Airplane


너무 서두르지 마 Take your time baby

계기판에 떠 있는 숫자들처럼

오롯이 너만의 속도를 따라가야

어떤 기류에도 흔들리지 않을 테니까


저 바람이 말해 숨지 말라고

이젠 나를 보여줄 차례라고

조금만 더 용기를 내보라고


이런 가사를 들으면서 어떻게 힘을 내지 않지요..? 저는 그런 방법을 모릅니다만.. 하루의 출근도, 눈앞에 닥칠 모든 일들도 이 노래를 들으면 어떻게든 될 것 같다. 그래서 출근은 아이즈원과 함께! (이래놓고 사고 치면 지나갈테니를 듣는다...) 이렇게 하루하루 조금 더 힘을 내본다!



음악의 흐름을 보니 나의 감정 상태의 흐름도 알 것 같다. 우울하고 차분했다가,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욕하다가, 자기 위로를 하다가, 이제는 힘을 내서 출근을 하는 상태. 나는 이런 상반기를 보냈구나, 하고 되돌아본다. 지금은 음악과는 전혀 상관 없는 일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음악이 너무 좋다. 이렇게 나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콘텐츠가 또 있을까 싶다.


나의 청춘은 아직도 계속되고, 나는 여전히 파랑을 좋아하므로 나의 [청음]도 계속 된다. 그리고 앞으로 [청음]에 함께하실 에디터님들의 색깔로 또 조금 다른 파란 빛이 더해져서, 우리의 파도가 이 글을 읽고 음악을 듣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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