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파도를 넘어야 한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by 킴나

악뮤가 최근에 발매한 앨범의 제목은 [항해]다. 첫 트랙은 '뱃노래'.


사는 건 갈수록 항해 같다. 사는 건 마라톤이라고, 결국은 길게 오래오래 지치지 않고 뛰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항해 같다. 그저 무난한 트랙 위를 달리는 마라톤은 나만 지치지 않으면 될 것 같다.


그래서 가끔은 응원하는 사람들도, 물을 건네는 사람들도 있는 마라톤보다는, 언제 어떤 것이 덮쳐올지 모르는 망망대해에서 드문드문 떠있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저 멀리서 반짝이는 등대를 향해 나아가는- 그런 바다 위에서의 항해가 더 '삶'이라는 것과 어울린다.


오늘 우리는 또 한 명의 여성을 떠나보냈다. 사람의 감정은 복합적이고 동기 또한 마찬가지이므로 어떤 이유로 그가 생을 마감하겠다는 결론을 내린 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조심스럽게 추측하고 분노할 뿐이다. 그의 소식이 아니었더라도 분노할 이야기였다. 최종범의 무죄.


불공평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공평한 삶이다. 오늘도 느꼈다. 오늘, 애인과 잠깐 이야기를 했다. 3년 전에 끊겼던 '발신번호 표시 제한'의 전화 성희롱이 얼마 전 다시 이어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3년 전까지, 부재중 전화를 7번을 찍어가며 전화해서는 폰섹스를 요구했던 그 여자가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는 것이다. 3년 전에 아는 후배가 강력히 경고하니 더 이상 전화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한 달 전에 들었던 차였다.


그 여자가 얼마 전 새벽에 전화를 걸어와서는 '오랜만이네'하며 다시 폰섹스를 요구했다고 한다. 나는 그것이 성희롱이며 위협적이므로 당장 경찰에 신고하라고 했지만 그는 별다른 위협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신고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냥 차단했다고, 더 이상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발신자가 남자였으면 무서웠겠지만 여자라면, 설령 만나더라도 자신이 이길 자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그가 저렇게 범죄에 안일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솔직히 걱정보다는 비참함이 앞섰다. 정말이지 비참했다. 그것 따위 별거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단순히 남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고른 적 없는 성별로 너무나 많은 것을 빼앗기며 살아간다. 매달 피 흘리지 않을 자유, 섹스하며 임신을 걱정하지 않을 자유, 임신 출산 육아로 경력 단절을 걱정하지 않을 자유, 남성에게 위협받지 않을 자유. 여기에 삶의 무게가 얹어주는 수많은 고민들까지.


구하라뿐 아닐 것이다. 이 세상의 수많은 여성들이 동시에 대면하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그렇게, 드러나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까지 생각하다 보면 아득해진다. 이 파도는 또 어떻게 넘어갈 수 있는 걸까. 운이 좋아 당장 이 파도를 마주하지 않고 있지만, 옆에 서있는 나 또한 파동을 피할 수 없다. 운이 좋아 커다란 파도를 비껴간 우리도 파동을 피할 수는 없다. 그저 손을 붙잡고 서서 잔잔해지기를 기다려왔다. 도무지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파도를 멈출 순 없나. 이 폭력의 고리를 끊을 수는 없나. 사람의 생명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나. 정말이지 평온해지고 싶다.


뱃노래 뱃노래

외로움을 던지는 노래

몇 고개 몇 고개의

파도를 넘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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