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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나 Jul 10. 2017

빗소리엔 역시,
윤종신&정준일 - 말꼬리

누군가의 이별과 절규를 뒤로 한, 편안하고 저릿한 비오는 밤

 어디에서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수많은 이야기 중의 하나는 비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다. 비가 오는 날에는 익숙한 음악을 찾아 듣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비'노래는 어떻게 듣지 싶으면서도 이 노래를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가 오는 날의 테마송은 하나씩 있을 것이다. 윤하와 에픽하이의 '우산', 비스트의 '비가 오는 날엔', 태연이나 이적의 'Rain'. 내게도 그런 노래가 두 개 정도 있다. 한 곡은 김예림의 'Rain'이고 다른 한 곡은 정준일의 목소리로 듣는 윤종신의 '말꼬리'다. 그리고 오늘 지금은 '말꼬리'를 듣고 있다.


 노래는 슬쩍 창문을 열면 들리는 먼 천둥 소리와 투툭, 투툭 빗소리를 들려주며 시작한다. 그리고 정준일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비는 오고 너는 가려하고 내 마음 눅눅하게 잠기고 
낡은 흑백 영화 한 장면처럼 내 말은 자꾸 끊기고


 정준일의 목소리는 답답하면서 애절하다. 아무리 높은 고음을 시원하게 질러도 왠지 가슴 한켠이 답답하다. 아마 정준일의 노래가 가진 상황의 힘일 것이다. 대개 정준일이 노래하는 울부짖음은 처절하고 때론 찌질하기도 해서 가슴이 울먹하는, 가슴이 메어오는 느낌이다. 내 곁에 있어달라 애원하는 '안아줘'의 정준일은 이 노래에서 떠나지 말아달라 연인의 말꼬리를 잡는다. 사랑하니까 헤어지는 것이라는 말에 나는 덜 사랑해서 널 보내지 못하니까, 남은 사랑처럼 쓸모 없는 것은 남기지 말고 전부 나에게 주고 가라 애원한다.


 말꼬리는 윤종신의 섬세해서 찌질하기까지한, 극사실주의 가사와 정준일의 가슴 메이는 목소리가 만난 수작이다. 애처럼 매달리고 말꼬리를 잡으며 늘어지지만 미워할 수 없는, 오히려 화자의 감정에 이입해서 마음이 아려오는 곡이다. 우는 듯한 기타연주에 올려지는 정준일의 힘찬 절규는 듣는 사람까지 이별의 상황으로 데려간다.




 비 오는 날, 카페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 남자의 앞에는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여자의 앞에는 찬 아메리카노가 놓여있는 오후. 내리는 비에 바쁘게 움직이는 창 밖 사람들, 어둑한 하늘. 빨대만 꽂힌 채 한 입도 대지 않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흰 머그잔에 담긴 따뜻한 아메리카노. 컵을 둘러싼 남자의 손과 그 앞에서 만나 조심스럽게 하지만 긴장된 채로 부딪히는 남자의 검지손가락.



 이 노래를 들으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뻔한 상황과 그 장소로 소환된다. 당연하게도 남자의 입장이 되어 애원하게 된다. 모두 듣고 울컥해진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눈물 한 방울로 감정을 내뱉는다.
 
 지금 내가 사는 동네에는 비가 내린다. 내릴 듯, 내리지 않던 비는 쏟아지다가도 잠시 주춤해서 지금은 잔잔한 빗소리가 밖을 울린다. 무언가에 부딪혀서 타탁 나는 소리는 일정하지 않은 간격으로 일정하게 들려온다. 스피커에서는 말꼬리가 흘러나오고, 창밖으로는 빗소리와 창틀에 맺힌 빗물이 보이는 밤. 누군가의 이별을 뒤로 하고 이렇게 편한 느낌을 가져도 될까, 하는 조금의 죄책감과 함께. 저릿하지만 편안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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