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terlooplein에서 중고 자전거 사기
(♪볼빨간사춘기 – 나만 안되는 연애)
“ 나만 이런 세상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바라보기만 하다 포기할 수는 없겠죠“
흔히 네덜란드라고 하면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고 있다. 풍차, 튤립, 히딩크..? 내게 네덜란드는 자전거의 나라다. 보행자보다도 자전거가 우선되고, 모든 곳에 자전거가 주차되어 있으며 어린이집 선생님은 자전거 앞에 카트를 달고 아이들을 운반한다. 심지어 네덜란드의 문화에 대해 배우는 수업에서는 네덜란드의 자전거 문화를 국가적인 아비투스(national habitus)로 분석한 논문을 2시간 내내 다룬 적도 있다.
네덜란드에서 특히나 자전거가 발달된 이유는 딱히 환경주의적인 정책을 펼쳤다거나 사람들이 운동을 좋아해서는 아니다. 여기에는 보다 실질적인 정치, 경제적 이유가 얽혀 있다. 원래부터 네덜란드는 자전거를 많이 타던 나라이긴 했지만 그건 자동차의 보급 이전이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자동차가 보급된 이후부터 자전거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자전거와 자동차의 빈번한 충돌 사고와 그로 인한 인명 피해로 이어졌다.
이에 국민들의 반발이 거세졌는데, 학교에 가는 아이들이 차에 치여 죽는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자 여론에 불이 붙었다. 국민들은 자전거와 자동차 문제에 대한 국가적 대책을 요구하게 되었다. 자전거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은 정부 측에서도 손해 볼 일이 아니었다.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는 오일 쇼크로 국제 정세가 흔들리고 있던 시점이기 때문에 만일 자전거 인프라를 키운다면 국제사회의 지긋지긋한 파워 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정부는 적극적으로 자전거 도로를 설치하고 자전거 이용을 장려했다. 그 결과 지금의 네덜란드는 자전거가 사람보다 더 많은 나라가 된 것이다.
이 긴 서론은, 그래서 네덜란드에서는 꼭 자전거가 필요하다는 말의 뒷받침이다. 교환학생이 자전거를 타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는데(심지어 타지 않는 방법도 있다. 한 번 외출에 2시간을 잡으면 된다.) 그 중 가장 보편적으로는 중고 자전거를 사거나 일정 기간을 대여한다. 중고 자전거는 Waterlooplein에서 우리나라 돈으로 10만원 내외에서 자전거와 자물쇠까지 한 번에 구입할 수 있다.(총 60-80유로) 대여는 분실/수리 보험이 되는 학생 대여 업체도 있고, 여타의 것을 책임져주지 않아 비교적 싼 업체도 있다.
그 중 나는 중고 자전거를 사기로 결심했다. 산 자전거는 도로 되팔 수 있기 때문에 돈이 적게 들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바털루플레인 마켓에 가서 슬금슬금, 내가 자전거를 쳐다보며 천천히 걷는 순간 나는 상인들의 레이더에 포착된다. 자연스러운 인사에 대답을 하다 보면 당신은 어느새 아저씨가 권하는 자전거를 타보고 있다.
“자전거 찾아요?”
“네. (튼튼해 보이는 자전거를 가리키며) 얘는 얼마에요?”
“150유로 정도?”
“(손을 떼며) 비싸네요..”
“어느 정도 생각하고 왔는데?”
“65유로요. 자물쇠까지 전부.” (무조건 낮게 불러야 한다)
“에이, 그 가격으로는 없어요. 자전거만 적어도 70은 줘야 해. 이 자물쇠만 30유로야. 이리 와봐. 이거 타 봐요.”
이렇게 여럿 타보다보면 감이 오...기는 개뿔. 자전거를 10년 만에 타보는데 이게 나한테 맞는지 아닌지 알 길이 없었다. 삐걱대면 원래 그런가보다, 안장이 너무 높아도 그런가보다. 그렇게 어영부영 하나를 정한 뒤에는 가격 협상에 들어간다. 아저씨와 끊임없이 네고를 시도하면서 각자 자기소개까지 했다. 나는 한국에서 왔고, 암스테르담 대학교에 다닐 것이며, 사회학을 전공한다고. 아저씨 이름은 뭐냐고 물어봤는데 Bruce Lee랬다. 아는 유명한 아시안이 이소룡밖에 없는 것 같았다.
이렇게 호구짓을 하면서 첫 자전거, 보라색 자전거와 두꺼운 쇠사슬 자물쇠를 도합 85유로에 샀다. 쇠사슬 자물쇠는 정말 굵어서 장발장이 발목에 묶었을 것만 같은 굵기였다. 그러나 이 자물쇠에는 결정적인 흠이 있었다. 아무도 자물쇠를 잇는 쇠사슬을 끊어 가져가지 않고, 자물쇠 자체를 망가뜨려 자전거를 훔쳐갔다. 물론 그 때는 몰랐다.
생각해보면 꽤 좋은 자전거였다. 튼튼하고 깔끔했고 도색이 되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결정적으로 자전거 짐받침대가 없었다. 자전거 짐받침대는 자전거 가방을 매달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부분이다. 바로 다음날 아침, 어떻게 짐받이가 없을 수 있냐며 이소룡 아저씨에게 가서 따졌다. 아저씨는 당연히 그럴 수도 있는 것이라며 짐받이 추가에는 10유로를 더 내라고 요구했다. 내 피 같은 돈. 그냥 자전거를 교환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만난 자전거가 두 번째 자전거, 은색 자전거였다.
“있잖아요, 나 진짜 다시는 다른 자전거를 사러 오고 싶지 않아요.”
“나도 그래. 이 자전거는 네가 원하던 짐받침대도 있고, 좋은 자전거니까 괜찮을 거야. 잘 가!”
그 날은 결핵 검사를 위한 엑스레이를 찍으러 집에서 20분 정도 자전거를 타고 가야 했다. 오른쪽 페달을 굴릴 때마다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자전거를 못 탈 정도는 아니니 그냥저냥, 내가 예민한 탓이겠지 생각하며 결핵 검사장에 갔다. 검사는 예상보다 일찍 끝났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자전거를 탄지 3분 만에 안장이 흔들렸다. 자전거 안장이 앞뒤로 흔들리자 페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언덕 같은 다리를 건널 수 없었고, 작은 과속방지턱에도 엉덩이 사이가 강하게 부딪히며 아팠다. 거지같은. 친구들은 다 자전거를 문제없이 구했는데 나만 이틀 사이에 두 번째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소룡 아저씨에게 다시 가야했다. 하지만 안장이 고장 난 자전거는 타고 달리기도 쉽지 않았다. 15분이면 도착했을 바털루플레인에 반은 내려서 끌고 반은 고통스럽게 타고 가느라 두 배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거의 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왜 암스테르담 생활의 시작부터 이렇게 힘들지? 왜, 자전거 하나 사기가 이렇게 어렵지?
“이소룡 아저씨, 안녕하세요.”
“어, 한국 아가씨 안녕. 왜 또 왔어?”
“하... (깊은 빡침) 아저씨. 이거 안장 고장 났어요. 전 그냥 타기만 했는데.”
“어? 잠깐만, 다시 봐봐. (사태를 파악한다) 아, 이거 고정만 하면 돼.”
“아저씨, 아까는 이 자전거 괜찮다고 했잖아요. 저 진짜 다시는 여기 오기 싫었어요.”
“아니, 여기. 안장만 싹 고정하면 돼. 잠깐 기다려봐.”
30분이면 그 자전거에 있는 정 없는 정 다 떨어지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제는 오른쪽 페달을 밟을 때 탁, 탁, 걸리는 소리가 나는 것도 싫었다.
나는 풀썩 주저앉아서 이 자전거는 다시 못 타겠다고 울먹거렸다. 가뜩이나 자전거도 못 타는는데 돈까지 많이 쓰고, 이렇게까지 모든 것들이 나를 도와주지 않다니. 암스테르담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증명 같았다. 예상외로 아저씨는 무척 빠르게 환불을 제안했다.
“그럼 가져가. 나는 내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한테 팔고 싶으니까, 가져가. 이건 좋은 자전거고 아가씨가 못 알아보는 거야. 나는 내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한테 팔 거니까, 너는 환불해 가. 나머지 여분 키는 안 가져왔으니까 90%만 줄게. 나머지는 가져오면 줄 테니까 가.”“그럼 가져가. 나는 내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한테 팔고 싶으니까, 가져가라고.”
아저씨는 진심으로 질린, 그리고 어이가 없는 듯한 말투였다. 정말 좋은 자전거지만 이 것을 두고 찡찡거리는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투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콧대 높음 뒤에 자존심밖에 남아있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 자전거는 좋은 자전거가 아니었다. 오른쪽 페달이 앞으로 나갈 때마다 덜그럭거리는 낡은 자전거는 당연히도 좋은 자전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환불을 받았으니 목적은 달성, 참 다행이었다. 그 길로 바로 집에 와서 여분의 열쇠를 가지고 다시 마켓으로 향했다. 작은 메모도 써 갔다.
“브루스 리 아저씨, 고맙고 미안합니다. 구제불능(hopeless)의 바이커(biker)가.”
이래서 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 구제불능의 암스테르담 바이커가 될 줄은 몰랐으니까. 나는 첫 두 대의 자전거에게 상처받은 뒤 1주일 동안 자전거를 사지 않았다. 고민은 했지만 그 정도가 예의라고 생각했다. 이별한 전(前) 자전거들과 내 마음의 상처에 대한 배려. 같이 갔던 한국인 친구 중에는 자전거를 처음 산 날 도둑맞은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은 그냥 4달 내내 걸어 다녔다. 그 사람을 보며 나도 걸어 다닐지 진심으로 고민했지만 나는 결국 자전거를 또 샀다. 그리고 그건 내 마지막 자전거가 아니었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