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terlooplein, Amsterdam
Previously on 자전거 잔혹사 1
"아가씨, 이 자전거 좋아요. 가져가."
"네."
(다음날)
"아저씨, 짐받이가 없잖아요. 바꿔주세요."
"알겠어. 이건 진짜 좋은거야!"
(안장 고장나서 더운 여름날 개고생함)
"아저씨.. 저 진짜 못해먹겠어요.. (주저앉음)"
"그럼 가져가든가! 나도 내 자전거 좋아하는 손님한테 팔거야!"
(미안함에 쪽지를 씀 - '아저씨 미안해요. 구제불능 암스테르담 바이커가')
(♪다비치 – 또 운다 또)
“약한 마음아 상처 난 가슴아 나는 정말 울기 싫단다
또 운다 또 울지 말라니까“
일주일 뒤에 다른 자전거를 사러 갔다. 좀 낡았지만 빗물 튀는 것을 방지하는 가림막도 있고, 기어 변경도 되는 자전거를 발견했다. 타보니 나쁘지 않았다. 이번에는 실수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며 안장 높이도 꼼꼼히 점검했다. 그런데 녹슬어 보이는 바퀴살이 좀 걱정됐다. 아저씨는 중고 자전거니 감안해야한다고 했다.
아저씨는 파키스탄에서 온 이민자로, 다음 주에 결혼하러 파키스탄에 다녀올 거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아저씨는 끊임없이 엄마와 알 수 없는 언어로 통화했다. 길어지는 전화에 그는 양해를 구했다. 이쯤 되면 정말 확신이 들었다. 적어도 결혼을 앞둔 새신랑이 나에게 사기를 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인류애적 믿음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나의 세 번째 자전거, 토니를 만났다. 나는 페퍼톤스라는 밴드의 엄청난 팬이어서, 자전거에도 그들의 이름을 붙였다. 페퍼톤스, 펩톤, 펩톤이, 펩토니. 그렇게 성은 펩, 이름은 토니인 자전거가 완성됐다. 그렇게 자전거에 애정을 붙였다. 햇살이 좋은 날에도 비가 오는 날에도 토니를 타고 다녔다. 토니는 암스테르담 곳곳을 열심히 달렸다.
그리고 사고는 3주 쯤 이후에 일어났다. 햇살이 좋은 일요일이었다. 생리통으로 토요일 하루를 끙끙 앓다가 좀 살 것 같았던 일요일이었다. 날씨가 좋은 날을 흘려보낼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나와 친구는 자전거를 타고 근처의 우스터파크(Oosterpark)로 짧은 소풍을 나갔다. 즐겁게 소풍을 마치고 장을 본 뒤 배낭 한 가득 요거트와 쥬스, 과일 등을 싣고 자전거를 신나게 타고 가고 있었다.
딱 그 쯤에 ‘아, 나도 이 정도면 자전거를 좀 타네?’ 생각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꽤 언덕 경사가 가파른 다리를 하나 지나야한다. 정말 가파라서 암스테르담 현지 사람들도 으쌰- 하고 일어나서 페달을 굴리거나 멈춰서 끌고 지나가기도 하는 곳이다. 초반 2주 정도는 나도 내려서 끌었지만 그 이후로는 꽤 탄력을 받아서 가고 있었다.
열심히 페달을 굴려서 무사히 정상에 올랐고, 경사에서 내려가면 바로 왼쪽으로 돌기만 하면 됐다. 그대로 달려가면 주택 앞 화단에 바로 박게 되는 T자 형 구조기 때문이다. 매번 아찔했지만 사고는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사고가 났다. 급하게 커브를 돌면서 결국 화단과 자전거도로를 구분하던 보도블록을 들이받고 옆으로 쓰러졌다. 핸들에 허벅지를 강하게 부딪혔고, 급정거로 인해 미처 관성을 잃지 못했던 배낭 속 요거트, 주스, 청포도가 등 뒤 배낭 속에서 앞으로 로켓처럼 날아갔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보면서 옆으로 쿵 넘어졌다.
요거트와 주스, 청포도는 무사했다. 아무 것도 터지지 않았다. 내 허벅지도, 손바닥도 피가 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기적이다. 꽤 강하게 날아갔는데도 주스곽이 구겨지고 요거트 겉 뚜껑이 분리된 것 빼고는 그대로였다. 나또한 생각보다 멀쩡했다. 거기 있던 모든 사람이 달려와서 나를 걱정해줄 정도로 큰 사고였다. 한적한 도로라서 6명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잠깐 엎어져 있다가 괜찮다며 털고 일어났다. 바보같이 자전거로 이렇게 큰 사고를 내다니. 그래도 사람이 아닌 보도블록에 박아서 나만 다쳤기 때문에 다행이었다.
엄격히 말하자면 나만 다친 것은 아니다. 토니도 다쳤기 때문이다. 토니의 앞바퀴가 굴러가지 않았다. 자전거 바퀴가 굴러가지 않을 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걸 ‘들고’ 집까지 가야한다는 것이다. 나와 친구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끙끙댔다. 그런데 지나가던 더치 아저씨가 말을 걸고 우리에게 도와주겠다며 다가왔다. 아저씨는 멈춰버린 앞바퀴를 이곳저곳 만져보다가 갑자기 날 쳐다보고 말했다.
“이거 언제 샀어요?”
“저 이거 3주정도 됐어요.”
“그래요? 대체 어디서 뭘 산 거에요, 허허. 이런 자전거를 팔다니.”
아아... 그렇다. 토니는 나쁜 자전거였다. 낡은, 이렇게 고장 나도 이상하지 않은 자전거. 상태가 몹시 안 좋았다. 게다가 알고 보니 핸드브레이크에 기어가 있는 자전거는 비가 자주 오는 네덜란드에서는 고장 확률이 높은 자전거였다. 다행히 뒷바퀴는 굴러갔기 때문에 나는 앞바퀴를 친구 자전거 뒷바퀴에 얹고 자전거를 굴려 집에 갔다. 10분 정도 걸어서 집에 도착했다. 나는 토니를 살리고 싶었다.
바로 자전거 수리 업체를 알아봤다. 다행히도 앱을 통해서 현장으로 수리기사를 부를 수 있었다. 자전거의 고장 난 부분을 찍어서 주소, 가능한 날짜 및 시간과 함께 올리면, 업체에서 회원 정보 속 이메일을 확인하고 언제 누구를 보내주겠다고 답신을 보내준다. 다음 날 오후 3시 쯤 고치는 사람이 주차장으로 왔다. 그는 자전거를 구석구석 살펴보더니 고칠 수 없다고 했다. 자전거가 용수철마냥 앞뒤로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자전거는 모든 충격을 흡수하고 몸을 접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토니가 갔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해서 자전거가 고장 났다고 엉엉 울었다. 엄마는 황당해하면서 걱정했다. 생각해보면 이역만리에 있는 딸이 전화해서 우는 이유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전거가 망가져서라니, 황당하지 않은가. 엄마는 나중에 절대로 그런 이유로 울면서 전화하지 말라고 했다. 암스테르담에서 처음 울게 되는 이유가 자전거 고장일줄 나도 몰랐다.
고민을 많이 했다. 자전거를 대여할지, 자전거를 살지, 자전거를 사지 않을지. 하지만 나는 이틀 뒤 또 자전거를 사러 갔다. 이쯤 되면 읽는 사람도 지치리라고 생각한다. 쟤는 무슨 자전거를 계속 사? 어쩌면 바털루플레인 마켓에 소문이 났을 지도 모른다. 저 학생은 자전거 바꾸는 게 취미래. 하지만 확신이 있었다. 이젠 정말 액땜은 끝났으니 좋은 자전거를 살 수 있을 것이며, 나는 자전거를 잘 사는 조건을 알고 있다는 확신. 이번에는 라이트도 사고 이중락(Lock)도 샀다. 이중락이 없으면 쉽게 도둑맞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에는 자전거 도둑이 정말 많다. 같은 기숙사에 살던 한국인 5명 중 3명의 자전거가 도둑맞았다. 일주일 정도 타지 않으면 자물쇠의 쇠 부분을 파내고 자전거를 가져간다.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는 것인지. 가져간 자전거는 불법 매물로 중고시장에 다시 나오기도 하고, 부품을 수리하는 곳에서 멀쩡한 부품만 떼어간 뒤 운하에 던져버리기도 한단다. 실제로 운하에서 정기적으로 포크레인이 와서 자전거를 건져낸다.
결국 괜찮은 자전거를 샀다. Gazelle이라고 써있는 ‘브랜드’ 자전거였고 승차감도 좋았다. 이중락도 걸었고 밤에 쓰는 라이트도 달았다. 곧 있으면 해가 5시에 지는 11월이었기 때문에 꼭 필요한 선택이었다. 지금까지 샀던 자전거 중 가장 좋은 선택이었지만 왠지 또 이름을 붙이면 정을 너무 많이 줄 것 같아서 이름은 부러 붙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 여를 잘 타고 다녔는데 잠깐 이중락을 깜빡하고 슈퍼마켓에 간 10분의 시간동안 누군가 내 자전거를 타고 가버렸다. 내 자전거 주위에는 30대도 넘는 자전거가 있었는데도 나의 자전거만 홀연히 사라졌다. 슈퍼에서 잔뜩 장을 보고 나와서 자전거를 찾는데, 주차해둔 자리에 자전거가 없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혼자 ‘진짜로?’ ‘정말로?’만 반복하며 주위 주차장까지 20분 정도를 돌아다녔다. 곧 장을 본 가방이 너무 무거워서 그냥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길가에 세워진 자전거를 확인했지만 역시나 내 자전거는 아니었다.
이전처럼 울음이 나지는 않았다. 세상에, 이렇게 마지막 자전거까지 내 속을 썩이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울적해지는 기분은 어쩔 수 없어서 집에 도착한 후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며 조금 울먹였다. 아빠는 그 자전거를 더 탔으면 분명 사고가 났을 것이라면서 말도 안 되는 가정으로 나를 위로했다. 그냥 그 만약을 믿어버리고, 남은 3주는 걸어다니기로 했다.
마지막이 좀 허무하지만 나는 이렇게 4달 동안 4대의 자전거를 탔고 전부 떠나보냈다. 교환, 환불, 사고, 도난. 자전거로 할 수 있는 모든 사고를 다 당해보았지만 여전히 자전거를 보면 애틋하다. 암스테르담 사람들은 이것보다 훨씬 큰 자전거를 탄다고! 암스테르담에서 나는 자전거를 맨날 타고 다녔다고! 하는 무용담을 아직도 늘어놓는다. 더위가 좀 가시면 서울에서도 따릉이를 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