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자 여성을 마주하는 것, 암스테르담 홍등가

Red Light District(De Wallen), Amsterdam

by 킴나

“And you don't have to change a thing,

the world could change its heart”

- Alessia Cara ‘Scars to your Beautiful’


암스테르담에서 처음 묵은 숙소는 중심가의 기독교 호스텔이었다. 그런데 이 호스텔이 위치한 장소가 홍등가 바로 옆이었다. (기독교 호스텔이라며?)


홍등가는 말 그대로 붉은 빛이 가득한 곳이다. 암스테르담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곳이기도 하다. 자유와 개방의 나라 네덜란드에서 합법화된 세 가지가 마약, 성매매, 동성결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이 대학 수업을 들은 암스테르담 사람들은 홍등가를 자신들이 생각하는 암스테르담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사실 중심가는 별로 가지 않는다고, 홍등가는 암스테르담의 극히 일부일 뿐이라고 말하며 이방인에게 설명하는 암스테르담에서 빼고 싶은 부분처럼 이야기했다. 하지만 홍등가는 외면하기엔 너무 시내 한 가운데에 있고 인상이 강렬하며, 중요한 담론의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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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텔 문을 열고 오른쪽으로 열 발자국만 걸어 나가면 빨간 커튼이 쳐진 창문 하나가 나왔다. 그 창문을 시작으로 골목을 나가면 운하 하나를 사이에 둔 홍등가가 펼쳐진다. 낮에는 평범해 보일지 몰라도 조금씩 하늘이 어두워지면 건물 1층의 각 창문에서 나오는 빨간 불빛이 거리를 강렬하게 비춘다.


주위를 둘러보면 전부 어두운 붉은 색의 커튼이 유리창 가장자리에 쳐 있고, 야한 속옷을 입은 여성들이 투명한 유리 뒤에 있다. 낮에는 커튼이 쳐져 있지만 어두워지면 여성들은 모습을 드러낸다. 거리를 빤히 쳐다보기도 하고, 행인들을 뚫어져라 보기도 한다. 붉은 색은 열정, 정열, 섹스 같은 것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그 불빛이 육체를 비추고 있음은 정육점의 고기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팔리는 몸이라는 측면에서는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아 슬퍼진다.


이 지역을 지나갈 때엔 고개를 푹 숙이고 빠르게 걸어 이곳을 벗어났다. 남사스럽달까, 왠지 창피하달까, 그리고 어떻게 쳐다봐야할지도 몰랐다. 우리나라에서도 성매매가 암암리에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이렇게 공개적으로 성 판매여성들을 본 건 처음이었다.


홍등가에는 개별 성매매 종사자들뿐만 아니라 라이브 섹스 쇼를 보여주는 공연장, 섹스 코스튬 및 섹스 토이 샵도 있다. 호객을 위해 거리에는 검은 칠판에 형광초록색이 나는 펜으로 ‘LIVE SEX SHOW’, ‘LIVE FUCKING SHOW’라고 써있다. 차마 갈 용기는 없지만 호기심은 생겨서 인터넷으로 후기를 찾아봤는데 거의 묘기 수준의 체위를 보여주며 실제 성행위를 무대 위에서 보여준다고 한다. 갈 용기도 없거니와 남의 성행위를 무대 위에서 보고 싶지도 않았다. 성행위는 가장 개인적이며 친밀한 관계에서만 이루어지는, 맨 몸의 무언가인데 그것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사람은 무슨 생각일지, 괴롭지는 않을지, 지극히 여성혐오적으로 쓰인 후기를 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Amsterdam-Red-Light-District-De-Oudezijds-Armsteeg-1895-small.jpg?resize=556%2C656 출처 Amsterdam's Red Light Distirct Tour

암스테르담의 사창-사(史)는 12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암스테르담은 유럽의 주요 항구 도시로서 생선잡이, 목재 운반부터 후에는 동인도회사로 대표할 수 있는 아시아 향신료 무역까지 주도했다. 항구로 오고가는 사람들과 물자는 암스테르담 발달의 주된 동력이었다. 그리고 항구와 근접한 곳에 사창가가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네덜란드 말로 이 지역은 ‘벽들’(De Wallen)이다. 과거에는 이 지역이 벽으로 보호, 혹은 단절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항구를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했으니 자연스럽게 홍등가는 중앙역에서 가까운 시내 한가운데에 있다. 암스테르담 시에서 말하는 범위는 Nieuwmarkt 옆길부터 구 교회(De Oude Kerk)까지 포함한 지역이다. 사창가가 ‘교회’를 끼고 있다. 구 교회 또한 1200년대에 세워져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성매매가 먼저 발생했는지 혹은 교회가 먼저 세워졌는지를 구분하는 것은 어려울 듯하다. 확실한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구 교회와 사창가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성 판매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서 남성 성 판매자가 조금 늘어났다고 하지만 역시 거의 모든 성 판매자가 여성이다. 홍등가의 중심 거리에는 어린 백인 여성이 많지만 모퉁이를 돌아 중심에서 멀어지면 나이가 많은 유색인종의 성 판매자도 있었다. 여기서도 등급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야한 속옷 차림에 나이대도 인종도 천차만별인 여자들을 보며 기분이 이상했다. 홍등가는 지금까지의 역사가 여성혐오의 역사, 남성우월의 역사임을 증명해주는 곳이었다. 남성은 돈을 주고 여성과의 성관계를 살 수 있기에 여성 성 판매자가 많지만 여성은 주체자가 되지 못하고 판매하는 역할, 혹은 판매 당하는 역할만을 맡아온 것이다.(성을 사는 주체자의 윤리를 차치하고도 특정 성이 행위의 객체 역할만을 수행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홍등가는 자유, 개방성, 진보와 같은 암스테르담의 핵심 가치를 뒤흔드는 요소다. 사회학 강의 중에 암스테르담은 진보적이지 않으면 오히려 손가락질을 당하는 곳이면서도, 여전히 자신들만의 보수성을 가진 곳이라고 배웠다.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며 성소수자를 배려하는 듯하지만 어떤 여성은 시내 한복판에서 빨간 커튼을 치고 자신의 성을 판매하는 곳. 그것이 자유와 개방으로 허용될 수 있는 문제일까. 마냥 그렇지만 않다는 증거는 최근 엠네스티에서 네덜란드가 인간 밀매가 성행하는 세계 열 개 국가 중 하나로 꼽혔다는 것이다. 성을 판매하면서도 그 주체가 되지 못하고 뒤에서 누군가의 조종을 받고 있는 여성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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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에서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시에서는 홍등가에 해당하는 건물을 시(市)가 사들이는 등 홍등가를 줄여나가기 위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며, 여성 단체 및 기독교 단체에서도 성 판매 여성들에게 새로운 사회망을 만들 기회를 제공하여 자립을 돕거나 그들을 존중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 상징 중 하나가 구교회 광장 앞에 세워진 동상이다. 동상 아래에는 ‘성 노동자를 존중하라(RESPECT THE SEX WORKER)’이라고 적혀 있다.




소수자 인권에 대한 의제에 관심이 높아지고 발화의 주체도 많아지면서 관련 국내 담론도 다양해지고 있다. 누구는 성매매를 금지하면 성 판매여성들이 갈 곳이 없으며 성을 판매하는 것은 어느 업종이나 마찬가지인데(하물며 빵집 아르바이트에서도 젊은 여성들은 그들의 나긋나긋함, 상냥함 이런 것들을 판매하지 않는가) 굳이 성매매 여성들만 비판하는 것이 이중적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그럼에도 성매매는 성행위까지 팔아가며 개인의 인권을 가장 깊이 침해하는 일이라고 했다. 어떤 성매매 종사자는 그 환경에서 탈출하고 새로운 일을 찾길 원하지만 어떤 성매매 종사자는 성매매를 합법화하여 법의 제도 아래에서 보호받기를 원한다. 이런 것들에 대한 나의 입장을 정확히 표명할 수 없어서 이 공간이 더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성매매 합법과 비합법을 막론하고 여전한 것은 성매매 종사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억압, 그리고 불평등이다. 성매매 종사자임을 알리지 못하는 이유는 사회적 선입견과 낙인 때문이다. 성 노동자의 성폭력 피해사실은 비성매매 종사자의 피해사실보다 약하게 여겨진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합법화와 비합법화가 아닌 사회적 시선과 인식이다.


이 지역은 2차 대전 당시 네덜란드 내의 유대인들을 몰아넣은 곳이었다. 나치는 이를 ‘유대인 구역(Jewish Corner)’라고 이름 붙였다. 그러나 비유대인 거주자가 35%를 넘었고, 이 지역은 네덜란드 내 모든 유대인들을 담기에 턱없이 좁았으므로 해당 구역을 분리하려는 시도는 실패했다. 하지만 명명이 실패했을 뿐 학살도 실패한 것은 아니다. 2차 대전 이전 10만 명에 달했던 네덜란드 내 유대인의 숫자는 히틀러의 유대인 말살 정책 이후 5000명으로 줄었다. 과거에는 유대인, 지금은 성노동자. 낙인 찍혔던 이들의 역사는 이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홍등가를 보고 이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고 나서도 확신이 서지 않는 것은 나의 주관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당사자들의 통일된 의견을 알 수 없어서다. 앞으로도 홍등가는 암스테르담 관광객이 가장 먼저 들릴 곳 중에 하나일 것이며 해가 지면 빨간 불빛으로 물들 것이다. 홍등가를 찾는 것을 반대하거나 권장할 생각은 없다. 그저 독자와 관광객의 몫이다. 하지만 홍등가에 들어서서 가벼운 마음으로 나서지는 않았으면 한다. 내게 그랬듯 성산업이 합법화된 국가에서의 광경, 그 속의 성노동자의 처우와 인권에 대해서 한 번 쯤은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 암스테르담 대학교 교환학생 단체에서 열었던 인트로덕션 위크의 첫 조별활동은 ‘도시 안내’였다. 중간에 홍등가도 들렸다. 남자 리더는 홍등가에 가기 전, 사람들을 모아놓고 다음 장소는 홍등가라고 말하며 근처에 모여 있던 우리 팀 남자들에게 노골적인 눈빛을 보내고 눈썹을 씰룩거리며 웃었다. 그새 친해진 남자들은 서로를 치며 낄낄댔다. 나는 어떤 표정도 없이 조용히 그를 쳐다봤고 그는 나의 시선을 눈치 채지 못했다.


홍등가 내부 건물에 들어간 것은 처음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룸살롱처럼 좁고 어두운 복도를 따라 방이 늘어선 곳이었다. 아직 낮이었기 때문에 영업 전이었고, 여자들은 속옷 차림으로 대충 문에 기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두운 건물을 나오자 같이 다니던 독일 여자애가 말했다.


“저 사람, 루마니아 사람이네.”

“어떻게 알아?”

“나 어머니가 루마니아 사람이라서 루마니아 말을 좀 알아들어.”


그 말을 하며 친구의 얼굴에는 씁쓸함이 스쳤다. 혹은 내가 씁쓸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본 걸지도 모르겠다. 루마니아에서 온 저 여자는 어떻게 여기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 사람의 사연을 상상했다. 역시 난 다시 홍등가에 가고 싶지 않다.



홍등가 (Red Light District)

De Wallen

Amster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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