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이야기가 아니야, 그냥 내 이야기야.
간호조무사 시험응시는 고졸이상만 가능하기에 최종학력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해야만 한다.
졸업한 학생들의 서류를 정리하다 보니 다양한 전공들이 눈에 띄더라.
귀금속보석디자인과, 웹멀티미디어전공, 영문과, 국문과, 경제학과, 아동학과, 재활치료학과, 무용과, 컴퓨터학과, 건축설계과, 세무회계정보과 등등
참으로 다채로운 배경을 가진 이들이다.
각자의 전공을 살려 활발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도 있었던 이들이 어쩌다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이곳까지 오게 되었을까. 그들의 삶을 어땠을까. 어떤 사연으로 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나도 이들과 같았다. 나 역시 제2외국어를 전공했지만 (다 까먹었다), 어쩌다 보니 간호사가 되었고, 이제는 강사가 되었다. 결국 대학 전공이 삶의 방향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내 삶이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인문학 따위 개나 주라지, 역시 여자는 기술이지."
라고 말하며 다시 대학을 갔던 나의 선택은 역시 남들처럼 취업에 대한 간절함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취업에 대한 열망과 경력단절의 무게를 통감한다. 한 때 자신의 분야에서 꿈꾸고 열정을 불살랐을 이들이 이제는 낯선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 그 앞에서 감히 내가 잘난 척을 할 수는 없겠더라.
꽤 오래전 지금은 성함도 희미한 어떤 간호학원 강사님을 뵌 적이 있다. 그분은 강의를 하실 때, 학생들을 아랫사람으로 대하는 듯한 태도 때문에 학생들의 원성을 샀다. 병원 내에서 본인이 경험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관계만을 염두에 두신 것이었을까. 어른이 학생들 이면의 역사를 미처 못 보신 것이었을까.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업무의 한계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것을 알려주는 것과 그것을 가르치는 강사의 태도 사이에도 분명한 간극이 있다. 이미 각자의 삶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한 어른들이기에, 강사는 그 간극을 겸손과 존중으로 채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