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되는 멍청함

어쩌면 십 대의 특권

by 김나길

어린 딸을 뒤에 태우고 물놀이장으로 향했다.

음악이라도 들어볼까, 스트리밍앱을 실행하자

남편이 가장 최근 들은 노래가 자동으로 재생된다.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

오랜만에 느끼는 심장이 쿵쿵 울리는 시원함.


I feel stupid and contagious



너바나의 바로 이 노랫말처럼

이상하고 유치했던 나의 십 대가 떠올랐다.

그 시절의 우리는 모두,

어쩐지 멍청하고 찬란하게 이상했다.


고3 어느 여름밤, 모두 야간 자율학습 중이었다.

같은 반 남학생 두 명이 아래층 남자 화장실에

피가 흥건하게 고여있다며 떠들어댔다.

뭔가 끔찍한 사건이라도 벌어진 줄 알았다.


우리 셋은 호기심에 이끌려 조심조심 내려갔다.

화장실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두렵고 떨렸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흥분에 휩싸였다.


추리소설 속 사건 현장이라도 목격할 줄 알았던

그곳에는 똥이 있었다.


세면대 위에 똥덩어리 하나.


똥이라니.


정적.


곧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퍼졌다.

선생님께 들키지 않아야 했기에

조용히 웃느라 힘들었다.


그리고 교실로 돌아가 우리 역시 같은 거짓말을 했다.

피가 고여있다고.


곧이어 두세 무리가 나가서 보고 오더니,

우리와 같은 말을 한다.

피가 고여있다고.


그러자 교실 안

거의 모든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가

아래층 화장실로 뛰어내려 갔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누구도 신고하지 않았다.


그 이상한 열기, 유치하고 허무한 선동.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단 하나,

우리가 십 대였기 때문일 게다.


그 광경을 본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지고,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뿔뿔이 흩어져 제자리로 돌아갔다.

교실 안 공기는 어딘가 뜨겁고 들떠있었다.

그 순간을 함께한 이상한 연대감이 우리를 들끓게 했다


똥덩어리를 피라고 믿고 싶었던

그 철없고 우스꽝스러운 순간의 집단적 기만.

쓸모없는 일에 몰입할 때의 즐거움.

어처구니없는 유대감.

십 대만이 가질 수 있었던 이상함은 아니었을까.


나는 지금도 그 순간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내 앞을 날아가던 무지개색 똥파리 한 마리.

그 위잉- 하던 소리가 생생하다.


마흔이 넘은 지금

아직도 친구들과 만나면 이 이야기를 한다.

아마 일흔이 되고 아흔이 되어도

우리는 그때 이야기를 하게 될 거다.


그리고 지금의 십 대들도

곧 십 대가 될 내 딸도

실컷 이상할 수 있으면 좋겠다.


곧 재미없고 뻔한 어른이 되더라도

이상했던 그날들이 있어 가끔은 즐거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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