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와 메밀전병
보험 영업이라는 세계는 참으로 냉정합니다.
문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우리는 거절의 전문가가 되어야 하고, 누군가의 거절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하루를 견뎌냅니다.
밖에서 우리는 때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귀찮은 방문객이 되기도 하죠.
그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적어도 우리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만큼은,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이 있습니다. 분기 마감을 마치고 50명 가까운 인원이 인근에서 손꼽히는 소고기집에 모였습니다. 지금이야 흔한 고기집이지만, 제가 영업소장을 하던 시절에 전체 회식을 소고기집에서 하는 건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일이었습니다.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그날의 컨셉은 명확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대접한다'는 것.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 소리보다 더 활기찼던 것은 평소보다 조금 더 어깨를 편 설계사분들의 표정이었습니다. 실적이 좋았던 이에게는 뜨거운 박수를, 실적은 아쉬웠지만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닌 이에게는 더 큰 고기 한 점을 건넸습니다.
"소장님, 우리 오늘 진짜 대접받는 기분이네요."
그 한마디에 회식비의 무게는 사라지고 보람만 남았습니다. 영업은 밖에서 대접받는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끼리 모였을 때만큼은 최고급으로, 가장 정성스럽게 서로를 예우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최고로 대우하지 않는데, 누가 우리를 전문가로 봐주겠습니까.
거창한 분기 회식도 중요하지만, 제가 공을 들인 건 매주 금요일 마감 후의 '작은 식탁'이었습니다. 금요일은 한 주의 피로가 정점에 달하는 시간입니다. 저는 이때 모두가 사무실로 모이게 했습니다.
어느 날은 강원도 봉평에서 당일 배송된 메밀전병 한 박스가 사무실 책상 위에 펼쳐졌습니다. 또 어느 날은 손맛 좋기로 유명한 우리 설계사님께 부탁해 제철 굴김치와 보쌈을 차려내기도 했죠. 제철 음식을 챙겨 먹는다는 건, 단순히 영양을 섭취하는 게 아니라 '계절의 흐름 속에서 나를 돌보는 행위'입니다.
"이거 먹으려고 금요일 마감 서둘러 끝냈어요!"
웃으며 한 입 베어 무는 전병 속에 한 주의 고단함이 녹아내립니다. 저는 이 시간이 단순한 간식 시간이 아니라, 한 주간 치열하게 살아낸 전우들에게 보내는 제 나름의 '훈장'이라 생각했습니다.
회식을 준비하다 보면 늘 구석에서 미안한 표정을 짓는 분들이 계십니다. 실적이 좋지 못해서, 혹은 이번 주에 계약을 하나도 못 했다는 이유로 젓가락질을 망설이는 분들이죠. 저는 그분들에게 다가가 꼭 이렇게 말했습니다.
"실적 때문에 먹는 거 아닙니다. 한 주 동안 거절당하느라 고생했고, 그럼에도 다시 현장으로 나갔던 그 시간들에 대한 보상입니다.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이에요."
실적은 결과일 뿐이지만, 노력은 과정입니다.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과정까지 부정당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성과가 안 나올 때일수록 더 잘 먹고, 더 귀한 대접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현장으로 나갈 '자존감'이라는 동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제가 회식에 진심이었던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영업인들에게 '직업적 자긍심'을 심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미래를 설계하고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가치 있는 일을 합니다. 그런 우리가 스스로를 '실적에 일희일비하는 사람'으로 낮춰봐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를 대접할 줄 아는 사람이 고객도 진심으로 대접할 수 있습니다.
잘 차려진 음식, 서로를 향한 진심 어린 칭찬, 그리고 "수고했다"는 따뜻한 눈빛. 이 삼박자가 어우러진 회식 자리는 다음 주를 버티게 하는 강력한 엔진이 됩니다.
소장으로서 제가 차린 식탁은 단순히 음식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당신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이 직업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일깨워주는 '자존감의 성찬'이었습니다.
오늘도 현장에서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있을 나의 동료들에게, 마음으로나마 봉평의 메밀전병 한 접시를 건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