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은 복지가 아니라 방향이다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길,
제법 연차가 쌓인 직원이 무심한 듯 던진 말이었다.
가볍게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이상하게 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맞는 말 아닌가?’
요즘 회사들은 커리어 패스도 만들고,
역량 모델도 정리하고,
교육 체계도 촘촘하게 설계한다.
그렇다면 개인의 비전까지 회사가 제시해 주는 것이 맞는 걸까.
잠시 생각한 끝에 나는 결론을 내렸다.
아니다.
회사는 조직이다.
조직은 생존과 성장을 목적으로 움직인다.
매출, 수익, 점유율, 확장…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어떤 일을 하며 인정받고 싶은가.
어떤 삶의 방향을 선택할 것인가.
이 질문은 회사가 대신 답해 줄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관리자를 하며 느낀 점이 있다.
“회사가 나를 어떻게 키워 줄 건가요?”라고 묻는 사람은 많지만,
회사 생활이 길어질수록 사람은 수동적으로 변한다.
발령을 기다리고,
평가를 기다리고,
교육을 기다리고,
기회를 기다린다.
그러다 보면 생각이 이렇게 바뀐다.
하지만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
진로를 대신 설계해 주는 상담소도 아니다.
회사는 이미 가야 할 항로가 정해진 배와 같다.
그 배에 올라탔다면
나는 어디에 설 것인지,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지,
얼마나 성장할 것인지는
결국 내가 정해야 한다.
현대해상에서 영업소장으로 일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점포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안정을 원하는 사람,
빨리 팀장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
돈을 목표로 하는 사람,
전문가가 되고 싶은 사람.
흥미로운 점은
목표가 분명한 사람일수록
회사에 대한 불만이 적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회사를 ‘도구’로 활용했다.
이 조직 안에서 어떤 경험을 쌓고,
어떤 실적을 만들고,
어떤 관계를 구축할지 스스로 설계했다.
회사 비전 위에
자신의 비전을 포개어 올렸다.
반대로
회사가 나를 어떻게 해 줄지를 기다리는 사람은
평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상처를 받고,
인사가 뜻과 다르면 분노하고,
기회가 오지 않으면 방치되었다고 느낀다.
비전의 주도권이 밖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고 싶은 방향과
회사가 가는 방향이
어디에서 만나는지 찾는 일.
나는 사람을 성장시키는 리더가 되고 싶은데
회사는 영업 성과를 강조한다면,
그 안에서 후배를 키우며 성과를 만드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나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은데
회사는 시장 확대를 말한다면,
그 확장 과정 속에서 깊이를 만들면 된다.
회사의 비전은 크다.
그 안에서 나의 좌표를 찾는 것이
직장인의 전략이다.
조금 냉정하게 말해 보자.
회사는 당신의 인생을 책임지지 않는다.
정년 이후의 삶까지 설계해 주지 않는다.
당신의 꿈을 대신 정리해 주지도 않는다.
회사는 계약 관계다.
시간과 역량을 제공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회사에 ‘인생’까지 기대한다.
그래서 실망이 커진다.
회사가 나를 성장시키지 않는다고,
비전을 제시하지 않는다고,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지만 질문을 바꿔 보면 어떨까.
그날,
“회사가 개인의 비전을 제시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묻던 그 직원에게
나는 그때 명확한 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말할 수 있다.
회사가 내 인생의 설계사가 되어 주길 기다리고 있는가.
아니면 회사라는 무대 위에서 스스로 설계하고 있는가.
당신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