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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노래 Sep 27. 2019

익숙한 듯 낯선 이름, 조지아

[사카르트벨로] 첫 번째 이야기, 시작하는 글

나의 첫 '조지아'


    조지아에 흥미가 생긴 건, 파키스탄의 훈자 마을에서였다. 카라코람 산맥의 우뚝한 봉우리들에 매료되어 다음 경로를 정하지 못한 채 열흘이나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던 터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무계획의 여행을 즐기던 까닭도 있었지만 여행지에서 내가 가장 우선시하는 '내 감정'이 대체 무엇인지, '남은 예산과 시간으로 이란에 가고 싶은지 인도를 좀 더 깊게 보고 싶은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파키스탄 훈자 마을


    하산을 하루 앞두고 불안정한 와이파이에 의지해 이란으로 가는 방법을 검색하고 있을 때였다. 훈자에 거의 한 달이나 머물던 한국인 배낭여행자들 중 한 명이 어디선가 내 소문을 듣고 나타나 날 꼬드기기 시작했다.

    "이란으로 가는 육로는 탈레반 때문에 사실상 막혔다고 보시면 돼요. 이란 말고 이란 북쪽으로 자연경관이 너무나 좋은데다가 '무비자 360일'인 나라가 있대요. 조지아라고... 같이 가시죠."

    당시 내 관심은 오로지 '이란'에만 있었고, 혈기 넘치는 여행자의 자존심(?)에 국가 이동시 비행기를 타는 건 도무지 용납이 되지 않았다. 결국 막힌 육로 탓을 하며 이란을 뒤로 한 채, 눈물을 머금고 다시 인도로 향했다.


    다만 '조지아'라는 나라의 이름은 확실하게 각인되었다.

    '세상에 어떤 나라길래 생면부지의 여행자들에게 360일이나 무비자를 내주는 거지, 자존심이 없는 걸까 자신감이 넘치는 걸까.'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도 '이란'에 대한 나의 집착은 계속되었고, 그 '이란'이 나를 조지아에 데려다 놓을 줄 누가 알았을까. 처음엔 그저 덤이었다. 이란 여행을 계획하며 지도를 들여다보다가 자연스럽게 근방 국가인 '조지아'를 콕 찍어 여행지에 포함시키게 된 것이다. 이번에도 큰 계획이나 구체적인 경로를 정하지는 않았다. 다시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의 이유


    절박한 이유나 충동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나는 여행을 해야만 하는 사람으로 태어났다. 해외는 꿈꾸지 못할 형편이었지만 주말이면 산으로, 들로, 바다로, 나를 데리고 다니던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부모님이 보여주셨던 다큐멘터리, 영화, 책 등을 통해 내 세계는 이미 나의 활동 반경 이상으로 확장되어 있었다. 여행을 가기 전부터 지구 구석구석을 많이도 보았고, 질리도록 꿈꾸었고, 오래도록 갈망했다.

    대학 입학 후 내가 선택한 동아리는 너무도 자연스런 행보였다. 여행 동아리 같은 건 없었고, 역사 동아리는 지루해 보였으며, 지역연구를 하는 연구소가 하나 있었다. '연구소 활동만으로 21학점'이라는 흉흉한 설이 돌았지만, 애초에 공부에 뜻이 많지 않았던 나에게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녔다. 오히려 '지역연구활동'이라는 명목이 더해져, 재미뿐만이 아니라 의미와 가치까지 추구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게 꽤나 그럴싸해보였다.    

    연구소는 8개 지역을 구분지어 놓았는데, 나는 타의반 자의반으로 P단체에 들어가게 되었다. (P는 Pacific의 약자이다.) Africa의 A나 Middle-East의 M이 지극히 내 취향이었건만, 마음 약한 나는 '사람이 적다'는 친구의 말에 순순히 P를 선택하고 만 것이다. 그런데 후에 P의 일원이 된 것이 신의 한수였다고 생각한다. 첫 국외 여행지가 '바누아투'인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는가.


바누아투 에스피리투 산토섬, '바론떼' 마을


    지역연구 활동은 기본이 3주였다. 대한민국을 떠나 바누아투의 에스피리투 산토 섬까지, 뉴칼레도니아와 바누아투 에파테 섬을 거쳐 세 대의 비행기가 나와 내 일행을 실어 날랐다.

    오프로드를 달리고, 목적지에 가기까지 꼬박 이틀 동안 풀숲을 헤쳐 산길을 만들며 힘겨운 산행을 했다. 마침내 깊고 싶은 산 속에 닿았을때, 태고적 모습까지는 아니어도 우리와 수 세기 정도 차이가 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풀잎 지붕 밑에서 흙바닥 위를 뒹굴며, 해가 떨어지면 잠에 들고 닭이 울면 깨기를 열흘이었다. 떡진 머리와 땀냄새 때문에 같이 간 친구들과는 한발짝씩 거리를 두기도 했다. 환영식 때 먹은 민물 새우에 남자 사람 친구 세 명이 배탈로 나가 떨어지는 동안 튼튼한 위장을 자랑했던 시간들. 세상에서 가장 밝고 환하게 쏟아지던 별빛,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자라난 바나나, 코코넛, 파파야의 맛. 그 중 제일이었던 건 역시, 집주인 딸 아이리스를 무릎에 앉혀놓고 노래를 불러주었던 순간.


    첫 외국의 맛은 상상 그 이상으로 짜릿했다. 누군가에게는 그 고생을 왜 사서 하냐 싶은, 조금도 부럽지 않은 무용담일테지만 나에게는 비로소 내가 앞으로 쭉 해야할 일을 재확인했던 날들이었다.

    여행을 해야만 하는 사람. 여행이 숙명인 사람에게 2018년이 운명처럼 다가왔다. 마침 퇴사가 다가오네, 시간이 남네, 돈이 생겼네. 여행을 계획하기에 다른 이유를 구태여 찾을 필요는 없어보였다.





사카르트벨로


    '조지아'라는 국명은 성 조지(St. George)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구소련 시절까지 러시아식 발음인 '그루지야'로 불리다가, 독립과 동시에 공식 국가명을 영어식 발음인 '조지아'로 바꾸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부터 공식적으로 조지아의 국명 변경을 인정했다고 하니, 마치 신생국가인 것처럼 여겨질 법도 하다.


    내가 조지아에 간다고, 혹은 지금 조지아에 있다고 하면 십중팔구는 이렇게 반응했다.

    "아... 미국이야?", "커피는 맛있어?"

    미국 조지아주는 알아도, 커피 이름으로는 기억해도, 나라 이름 '조지아'는 많이들 모른다는 사실을 그렇게 알게 되었다.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받다보니, 묻기도 전에 대답이 툭툭 튀어나왔다.

    "아니 여긴 미국이 아니고 동유럽의 '조.지.아' 라는 나라야. 커피는 유명하다기보다 맛이 없고 와인 맛이 좋기로 소문난 곳이야."

    조지아를 모르는 친구들에게 조지아를 홍보하며, 왜 이 나라의 이름은 하필 조지아일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조지아 사람들은 자기들을 '카르툴리'라고 부르고, 조지아의 자칭 국명은 '카르툴리의 땅'이라는 뜻의 '사카르트벨로' 이기 때문이다.


    사-카-르-트-벨로 საქართველო 

    따라 읽어보자. 이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나는 이 이름과 금세 사랑에 빠졌다. '조지아'보다 훨씬 더 긴 음절에 리드미컬한데다 둔탁한 발음까지 있어 썩 훌륭한 이 이름을 놔두고, 왜 흔해 빠진 '조지아'라는 이름을 국명으로 채택한 걸까. 과거 '페르시아'가 '이란'이 되버린 것만큼이나 아쉬운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안타까운 마음에 조지아의 자칭국명 '사카르트벨로'라는 이름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었다. 그리하여 이 여행기의 제목은 [사카르트벨로]가 되었다.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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