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르트벨로] 다섯 번째 이야기, 텔라비 Telavi
S와 나의 다음 행선지는 와인 산지로 유명한 카헤티 주의 주도 '텔라비'였다. 부지런히 아침을 챙겨 먹고 M 아주머니, G 아저씨와 인사를 나눈 후 배낭을 메고 광장으로 나갔다. 전날 시그나기 관광안내소에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4라리에 아랫마을 츠노리로 가는 택시를 탈 수 있을 거라 했다. 시그나기는 교통편이 좋지 않으니 츠노리에서 마슈롯카로 갈아타고 텔라비로 가는 편이 나을 거라면서.
광장에 도착하니 택시기사들의 무리가 보였다. 가격을 물으니 15라리라고 한다. 코앞에 보이는 관광안내소를 손가락을 가리키며 가격을 안내받았다고 해도 듣지를 않는다. 바가지이긴 하지만 그리 비싼 건 아니니 그냥 갈까 고민하는 사이, S가 '날씨도 좋은데 츠노리까지 걸어가는 게 어때요?'라고 묻는다. 산티아고를 걷고 온 S가 트래킹이 그리웠던가 보다. 금액에 관계없이 택시기사들의 담합에 동조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더해져 무작정 걸어보기로 했다.
우리가 선택한 길로 츠노리에 가려면 보드베 수도원을 지나야 한다. 가는 길에 에띠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스토랑에 들어서니 에띠가 나를 기억하고 반겨주었다. 인사만 하고 가는 게 아쉬워 야외석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슬슬 배가 고파지고...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한다. 메뉴판을 가지고 온 에띠에게 맛있는 요리를 추천해달라 했다. 우유, 마늘과 함께 닭을 끓여내는 요리인 '슈크메룰리, შქმერული, shkmeruli'에 대해 설명해주는데, 평소 좋아하는 것들의 조합이라 구미가 당겼다.
슈크메룰리의 걸쭉한 국물에 녹아있는 마늘 향기가 침샘을 한껏 자극했고, 함께 주문한 하차푸리를 국물에 적셔 먹으니 목 넘김이 너무도 좋았다. 조지아에 입국한 지 일주일이 채 안되어 슈크메룰리를 만난 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내 입맛에 그렇게 잘 맞을 수가 없는 요리였다. 이 훌륭한 음식을 뒤늦게 먹어보았더라면 얼마나 억울했을까. 재료의 조합이 기가 막힌 슈크메룰리를 먹으며 '모든 조지아 음식은 한 편의 시와 같다.'라고 극찬했던 푸시킨의 말이 떠올랐다.
식사를 마친 후, 후식으로 구리엘리 홍차를 마시고 아쉬움을 달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띠와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보드베 수도원으로 가는 길의 에띠, 한국 노래를 좋아하는 에띠, 상냥하고 친절한 에띠, 무엇보다 에띠는 나에게 '슈크메룰리를 알려준 에띠'로 기억될 것 같다.
보드베 수도원을 지나 츠노리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코카서스 지역에 독사가 많다기에 간혹 풀밭에서 뱀이 스쳐 지나가는 소리에 무섭기는 했지만, 다행히 들개도 없었고 수상한 사람을 만나지도 않았다. 잠시 그늘에 앉아 숨을 고르다가 조금 더 걸어가니 멀리 츠노리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네에 들어서니 곳곳에는 샘터가 보였다. 맑은 물로 세수를 하고 목을 축인 후 다시 터미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마을 입구 쪽 버스 정류장을 지날 때 즈음이었다. 우리를 보고 한 청년이 다가와서 말을 건다. 도와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말이 통하지도 않았고 술에 조금 취한 듯 보여 덜컥 겁이 났다. 여러 번 사양을 하며 빠르게 걷는데도 그는 결국 내 가방 하나를 빼앗아 들고 마슈롯카 정류장을 안내했다.
그런데 정류장에 도착하니 텔라비로 가는 마지막 차가 이미 떠났단다. 점심을 먹고, 티타임도 가지고, 트래킹도 하며 꽤나 느긋한 오후를 보낸 터였다. 슈크메룰리를 먹은 값어치와 텔라비행 막차를 맞바꾼 셈이니 크게 짜증스러울 일은 아니었다. 청년은 택시를 잡아주겠다고 했지만, 우리는 미안한 마음 반 두려운 마음 반에 그와 이만 헤어지고 싶어서 택시를 타지 않고 걸어갈 것이라며 그의 호의를 뿌리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청년도 참 일관성이 있다. 거절하면 거절하는 대로 가게 두면 될 일인데, 어디선가 텔라비로 가는 차편을 알아오더니 우리에게 그 차를 타고 가라 한다. 츠노리 청년이 히치를 시켜준(?) 차에는 차주로 보이는 젊은 청년 '주라'와 백발의 노인이 타고 있었다.
조지아가 히치하이커의 천국이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경계심 많고 겁 많은 내가 히치 하이킹을 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이 히치하이킹이 시작에 불과할 뿐이라는 건 더더욱 예측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글을 쓰는 게 조심스럽다. 불미스러운 사건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으레 피해자의 행동이나 옷차림을 거론하곤 한다. 더군다나 해외에서 그런 일을 당할 경우, '그러게 왜 그런(?) 곳에 갔냐'며,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탓하는 댓글이 달리기 십상이다. 납치, 살인, 강간, 강도 등의 중죄를 지은 가해자보다 피해자의 잘못이 더 커지는 건 어쩐지 억울하다.
여행을 하면서 낯선 사람을 경계해야 하는 건 정말이지 지긋지긋한 일이 되어버렸다.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는 사람에게 거리를 두는 일, 함께 차를 마시자고 하는 사람을 뿌리치는 일...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에게 고마워하는 동시에 의심하는 내 모습이 이제는 지겹다. 그동안 오감을 동원해 상대의 인간성을 부지런히 읽어내고, 육감에 의지해 최종적인 판단을 하며 여행을 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풍경을 보고, 재미있는 활동을 하는 선에서 만족을 한다면 모를까. 내게는 현지인과 친구가 되고 싶은 욕심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아니 꽤 자주, 사내 녀석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걱정을 해야 하는 게 도무지 싫기 때문이다. 남자로 태어나 꾸준히 운동을 한다면 범죄의 표적이 되지도 않을 테고, 설사 피해자가 된다 하더라도 '그러게 왜 여자 혼자서 그런 데를 가'라는 말 대신 '그러게 왜 그런 데를 가'라는 심플한 비난을 듣게 될 테니까.
그런데 달리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정말 '그런 곳'에 가기 때문에 안 좋은 일을 당하는 것일까. 한국에만 있으면, 안전한 길로만 다니면, 밤에는 최대한 집 안에서 몸을 사리면, 내 털 끝 하나 상하지 않으려나.
트빌리시를 걷던 중 S와 '여행을 하다 죽는 게 비극인가'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죽음이 존재하는데, 그중에 온전히 나를 위해 시간과 마음과 돈을 쏟아붓는 '여행'을 하다 죽는 건 비극이 될 수 없다며 입을 모았었다.
안전함을 추구하며 장수하는 삶과, 탐험과 모험을 즐기다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 것 중 무엇이 나을까. 판단과 선택은 각자의 몫이고 저마다의 취향일 뿐이다. 다만 나에게는 적어도 50세가 된 이후에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하는 축복이 있길...
츠노리 청년의 히치에 순순히 응한 이유 중 하나는 선해 보이는 노인이 조수석에 앉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노인이 5km도 못 가서 내리는 통에 S와 나는 잠시간 긴장을 해야 했다. 조금 불안했지만 주라의 눈빛은 다행히 맑고 투명했다. 번역기를 돌려가며 짧게 짧게 말을 하기도 하고, 한국에서부터 가지고 간 홍삼 캔디를 나눠먹기도 했다.
한 시간쯤 달렸을까. 주라가 텔라비에 가기 전에 들러야 할 곳이 있다고 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에게 좋은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와이너리로 유명한 치난달리 Tsinandali라는 마을이었다. 그곳에는 18세기에 태어난 귀족 Alexander Chavchavadze의 저택이 보존되어 있었다. 그는 시인이자 자선사업가이며 엄청나게 부유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저택은 굉장히 넓었고 연못과 정원은 정돈된 모습이었다. 건물 안에는 박물관과 식당, 와인 가게, 기념품 가게 등이 있었다. 치난달리라는 이름의 와인이 있을 만큼 와인으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S와 나는 와인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보니 잘 가꾸어진 정원에 더 눈길이 갔다. 예상치 못했던 정원 산책에 S가 특히 만족하는 듯했다. 그는 식물원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고,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나무와 풀이 있는 곳에서 일하기를 꿈꾸는 사람이었다.
저녁시간이 다 되어 텔라비에 도착했다. 시그나기에서 택시를 타고 곧장 츠노리로 갔더라면 만나지 못할 사람들과 함께 한 날이었다. 에띠, 츠노리 청년, 이름 모를 할아버지, 주라 등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사람들의 얼굴이 여전히 선명하다.
주라가 내려준 곳에는 엄청나게 커다란 나무가 있었고, 바로 옆에는 By Plane Tree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 있었다. 큰 나무 덕에 단체 관광객들이 나무를 둘러싸고 사진을 찍으러 와서 식사도 하고 가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주라와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그와 인연이 이어졌더라면 좋았겠지만 말이 통하지 않으니 방법이 없어 아쉬웠다.
레스토랑에서 나오니 하늘은 이미 어둑어둑해져 있었고, 구글 맵을 따라 릴리아 게스트하우스에 찾아갔다. 연노랑빛의 머리칼을 가진 집주인 릴리아 아주머니께서 방을 보여주었다. 싱글 침대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는 방은 작았지만 아늑했다. 게스트 전용 부엌과 작은 테라스가 딸려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이튿날 아침, 날은 흐렸고 도시는 고요했다.
텔라비는 보통 와이너리 투어를 위해 오거나, 여름철에 한시적으로 길이 열리는 튜세티 Tusheti 지역으로 가기 위한 관문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도시에 볼 것(?)이 많지는 않아서 여행자들이 눈에 띄지는 않았다. 아마도 트빌리시에서 당일 치기 투어 차량을 타고 근처 와인 산지를 돌아보는 관광객들은 많아도, 묵어가는 사람은 별로 없지 않을까 싶다.
도시의 느낌을 하나하나 경험해보는 게 좋다. 라고데키도 텔라비도 작고 아담한 도시였지만, 굳이 하룻밤이라도 머물려 한 이유는 그 동네의 냄새를 맡고 싶어서였다. 작은 도시여도, 별 볼 것이 없다 해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머물러갈 이유는 충분했다.
도시 중심가를 걷다가 유적지 같은 느낌의 성벽이 보여 안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수학여행을 온 것 같은 청소년들의 무리가 보였지만 내부는 한적했다.
성의 이름은 'Batonis Tsikhe'. '바토니의 성'이라는 뜻이다. 건물을 장식하고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의 모양이 이란과 아제르바이잔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했다. 성 안에는 교회도 있었는데 신도로 보이는 아주머니께서 들어왔다 나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높은 곳에 오르니 북쪽으로 텔라비 외곽 마을이 한눈에 보였다. 붉은 계통의 지붕과 푸른 나무들이 적절히 어우러진 모습이었다.
성벽을 둘러보고 나오니 그 사이 하늘이 맑게 개어 있었다. 관광안내표지판을 보다가 근처에 재래시장이 있다는 걸 알고 그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자르가 가까워질수록 사람들과 환전소, 기념품샵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어느 나라에 가든지 재래시장은 빠트릴 수 없는 여행 코스가 되어버렸다. 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얼굴들이 좋다. 그저 환영해주는 얼굴, 어딘가 수줍어하는 얼굴, 물건 판매에 열을 올리는 얼굴, 무관심한 얼굴... 시장에서 파는 물건보다도 그런 표정들을 보기 위해 시장에 간다.
시장을 구경하다가 저녁에 먹을 찬거리와 간식으로 먹을 과일을 조금 샀고, S는 내가 직접 만들어 두르고 다니던 목도리가 마음에 든다며 털실과 바늘을 구입했다. 저녁에는 급조한 뜨개질 수업이 열릴 예정이었다.
다시 시내로 돌아와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우연히 북카페를 만났다. 책과는 친하지 않지만 북카페는 좋아한다. 이란 사난다즈에서 북카페를 찾아 먼 길을 걸어갔는데 문이 닫혀 있어 속상했던 적이 있었다. 그날의 아쉬움을 보상받은 것 같아 기뻤다.
카페 내부에는 책과 잡화를 파는 서점이 따로 있었고, 와인 산지의 카페답게 커다랗고 높은 진열장에 와인만을 위한 코너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S는 책을 읽고 나는 조지아어 알파벳을 공부했다. 적어도 한 달 이상은 조지아에 머물 계획 아닌 계획을 세워둔 상태였기에, 조지아어 알파벳이라도 읽어내고 싶었다. 복숭아 같기도 하고 엉덩이 같기도 한 조지아 알파벳은 비슷한 글자가 하도 많아 꽤나 헷갈렸다.
숙소로 돌아가 한숨 자고 밖으로 나갔다. 이번에는 동네 뒷길을 산책하고 싶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나와 앉아있는 모습이 우리나라 골목길과 다를 바 없었다. 공동묘지 옆, 나무 밑에는 들개들이 잠을 자고 있었다.
발길이 닿는 대로 걷다 보니 Nadikvari 공원이 있었다. 공원 입구 쪽에 문을 닫은 리조트와 단출한 놀이기구가 보였다. 아마도 성수기에만 운영하는 리조트인 것 같았다.
공원은 꽤나 높은 곳에 있었다. 해가 기울며 온 동네가 노란빛으로 물들어 가는 게 보였다. 한적한 공원 벤치에 앉아 해가 지는 풍경을 보면서 S와 이 순간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니 집주인 부부가 골목길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릴리아 아주머니께서 선뜻 내주신 와인과 함께 간단히 저녁을 챙겨 먹고는 뜨개질 수업을 시작했다. S가 마음에 들어했던 내 목도리는 아제르바이잔 바쿠의 털실 가게에서 구입한 털실로 손수 만든 것이었다. 목도리는 작고 단순한 모양이었지만, 평면이 아닌 원통으로 감아 뜨는 방식이었기에 초보자에게 쉬운 뜨개 법은 아니었다. 그런데 S는 내 설명을 곧잘 이해했고, 잠자리에 들기까지 바늘을 잡고 있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내일이면 S와 나는 각자 다른 도시로 떠나게 된다. S는 나에게서 라고데키에 트래킹 코스가 있다는 정보를 듣고 라고데키로, 나는 원래부터 계획했던 트빌리시로 향한다. 아쉬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밤, 뜨개질 삼매경에 빠진 S를 옆에 두고 일기를 쓰며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