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르트벨로] 여섯 번째 이야기, 트빌리시 Tbilisi
따뜻한 물의 도시
아침부터 게으름을 피웠다. 느지막이 일어나 식사를 하고 텔라비의 햇살을 즐기다가 정오가 되어서야 숙소를 떠났다. 출발하기 전까도 S는 뜨개질을 하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
배낭을 메고 나왔다. 무거운 짐이 어깨를 눌렀다. 아제르바이잔 바쿠 이후로 작은 마을만 전전하다가 큰 도시로 가려하니 괜스레 긴장이 되는 듯했다. 트빌리시까지 한 시간 반 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낡고 오래된 마슈롯카가 덜덜덜 떨리면서 진동하는 데다가 너무나도 빠르게 달리는 바람에 약간의 멀미를 느꼈다.
트빌리시 이사니ISani역에 도착했다. 역 근처에 앉아서 게스트하우스를 검색해보다가 지하철을 탔다. 구소련권의 지하철역들은 모두 다 이렇게 깊고도 깊은 걸까. 곰팡이 냄새가 코 끝을 찌르고 역사의 분위기는 사뭇 을씨년스러웠다.
교통편을 제외하고는 사전 조사를 하지 않고 일단 몸부터 움직이는 편이라 어디쯤 묵어야 좋을지 감이 오지 않았다. 즉흥적으로 루스타벨리Rustaveli역에 내려 숙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후보지를 몇 군데 정한 뒤에 둘러보기로 했는데 첫 번째로 찾은 게스트하우스는 어딘지 모르게 '가난한 장기 여행자의 소굴' 같은 느낌이었다. 주인장과 눈이 마주쳐 어쩔 수 없이 방이 있는지 묻기는 했지만, 빈방이 없다는 말에 안도하며 돌아 나왔다. 근처 또 다른 숙소는 햇살이 잘 드는 큰 창이 있고 깨끗했으며 실내에서 키우는 고양이까지 있었지만, 난간이 없는 2층 침대가 너무 높고 위태로워 보였다.
그러다 구글맵이 안내해주는 31번 버스를 타고 다른 후보지로 가려했는데, 예상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 바람에 마르자니쉬빌리Marjanishvili역에서 내려버리고 말았다. 그곳에는 한국인 사장님이 잠시 동안 운영하는 C 게스트하우스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피하고 싶었지만 이미 숙소를 돌아보느라 지칠 대로 지쳐 하루라도 묵어가기로 했다.
4인실 도미토리룸에 짐을 풀었다. 룸메이트는 미국인 한 명과 중국인 두 명이었다. 이란에서 아르메니아를 거쳐 자전거를 타고 왔다는 중국인 친구에게 아르메니아의 동향을 물었다. 당시 아르메니아의 광장은 민주화의 열망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 차 있던 때였다. "평화 시위여서 위험하지는 않았어. 오히려 지금 이 시점에 가는 걸 추천해. 역사적인 장면을 눈으로 볼 수 있잖아."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다.
그는 조지아를 지나 터키를 거쳐 유럽 여행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중국인은 쉥겐 비자를 얻는 게 쉽지 않지만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겠냐며 씁쓸한 표정으로 웃음 지었다. 짧은 대화였지만 그가 단단하고 깊은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유럽에 무사히 들어갈 수 있었을까, 그렇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여행은 분명 계속되었을 것이다.
다음날, 바쿠에서 처음 보았던 한국인 여행자 J를 만나기로 했다. J는 나보다 며칠 일찍 트빌리시에 도착했는데, 아예 조지아에서 1년 이상 장기 거주를 할 모양이었다. 그는 러시아와 구소련권을 여행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약 7개월 동안 러시아어를 배우고 온 여행자였다. 아는 것도 많은 정보통인데다 현지인들과 말까지 통하니, 그의 여행의 깊이는 정말이지 남달라 보였다.
J와 만나기로 한 플리마켓까지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아 걸어서 가기로 했다. 여행에서 도보 10km는 기본, 20km는 옵션일 뿐! 트빌리시를 가로지르는 강을 따라 남쪽으로 쭉쭉 내려갔다.
오랜만에 만난 J는 여전히 유쾌한 사람이었다. 그간의 안부를 물으며 플리마켓 구석구석을 열심히 살폈지만, 보는 눈이 없어 무언가를 건지지는 못했다.
J에게 내가 자유광장 쪽으로 숙소를 옮기겠다 하니 본인의 숙소를 함께 보러 가자고 했다. 그가 말한 대로 위치가 좋았고 시설도 깔끔했지만, 방을 제외하고는 해가 들지 않았으며 쉴만한 공간이 부족해 보였다.
J의 숙소에서 딸기를 먹으며 잠시 쉬다가 주변 다른 숙소를 여러 곳 들러보았는데 마땅한 곳을 찾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래 머물 계획이다 보니 숙소 선택에 보다 많은 기준이 생겼는데, 예산의 범위 내에서 가성비까지 챙기는 건 이기적인 내 욕심인 것 같았다.
셋째 날 아침, 본격적으로 숙소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무작정 걷다 보니 어느새 중심지와 가까우면서도 한적하고 조용한 골목길에 서있었다. 오래된 건물이 줄지어 있는 고즈넉한 풍경이 따스했다. 골목에는 한눈에 보아도 배낭여행자들이 묵어가기에는 값비싸 보이는 호텔들이 있었다. 몇 발짝 가다 보니 K 호텔 & 호스텔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골목길의 다른 숙소들은 대부분 호텔이었는데, K 호텔에만 호스텔이 딸려 있었다. 1층에는 방과 부대시설이 있었고 2층의 방 중 단 두 개만 도미토리룸이었다. 원색으로 칠해진 방문과 벽이 감각적이었고, 작은 소품하나하나 신경을 쓴게 눈에 보였다. 다락방처럼 기울어져있는 천장과 흰 시트가 씌워진 침대도 마음에 들었다. 그중에서도 화장실은 아주 깨끗해서 반짝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여기서도 역시나 테라스가 내 마음을 홀랑 빼앗아갔다. 테라스에 나가면 정면으로는 츠민다 사메바 성당과 대통령궁이 보였고, 야외 레스토랑의 재즈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고민할 시간이 조금도 필요치 않았다. 세상사 모든 일이 이처럼 명료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할 정도였다. 덜컥, 보름치 숙박비를 한 번에 내고 말았다.
집을 떠나온 지 벌써 두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모든 나라에서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싶은 건 아니었다. 힌디어와 네팔어는 생김새에서부터 과도하게 종교적인 느낌을 받았고, 러시아어는 특정 발음을 할 때 입 안에 침이 고이는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알파벳을 사용하는 언어는 익숙해서 그런지 흥미가 생기지 않았고, 아랍어나 페르시아어는 진입장벽이 너무 높았다.
그런데 조지아어를 보는 순간, 동글동글한 그림 같고 암호 같기도 한 이 복숭아 엉덩이 문자를 꼭 해독하고 싶어 졌다. 귀여운 모양새와는 달리 막상 조지아에 와서 사람들이 쓰는 억양을 직접 들어보니, 어딘지 모르게 과묵하고 투박한 느낌의 언어였다. 맑고 부드럽다기보다 둔탁하고 거친 느낌이었는데, 그 야성적인 리듬이 글자 모양과는 반대되는 매력이 있어 마음에 들었다.
호스텔의 테라스에 앉아 매일같이 알파벳을 공부했다. 조지아어는 한 번, 두 번 '그려서는' 좀처럼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난처한 언어였다. დ, თ, ლ, ო, რ, ღ... 비슷하게 생긴 것도 많고, 우리말에는 없는 발음, 예를 들면 '그냥 ㄲ와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한껏 끌어올린 ㄲ'를 구별해서 발음하는 건 가히 불가능해 보였다. 예사소리와 거센소리를 분간하지 못하는 외국인이 된 느낌이랄까.
모음을 동반하지 않는 단어도 많았는데, 트빌리시는 ㅌ빌리시로, 므츠케타는 ㅁ츠케타로 발음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어쩐지, 현지인들에게 트.빌.리.시라고 하면 한 번에 못 알아듣는다 했다. 그래도 'ㅈㄷㄹㅅㅌ부이쩨'에 비하면 양반이다.
이상하게 열심히 공부를 해도 테라스에서 앉았다 일어나면 알파벳들이 뒤섞여 희미하게 잊혔다. 역시 언어는 살아있는 말로 배워야 하나 보다. K 호스텔의 직원 '아나'와 요리사 '메기'는 기꺼이 내 조지아어 선생님이 되어주었다. 아나는 '친구 მეგობარი', '말 ცხენი'과 같은 단어들을 조금씩 알려주었고, 메기는 매일 아침 '기분이 어때? როგორ ხარ?'라고 질문하고는, 내가 '좋아요. 당신은요? კარგი. და შენ?'라고 대답하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조지아에서 만난 친구들로부터 한 문장, 한 단어씩 배워갔다.
한 나라의 언어를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배워서 유창한 대화를 할 수는 없겠지만, 조지아어를 배운 가장 큰 이유는 현지인들에게 한 발짝이라도 더 다가가고 싶어서였다. 어느 나라든 작고 깊은 마을로 들어갈수록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기 마련이고, 구글 번역기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나누는 대화의 온기를 대신해 줄 수는 없다고 믿는다.
불완전한 내 문장에 담긴 마음을 그들이 온전히 읽어주었던 걸까. 내가 했던 말은 고작 '메고바리(친구), 라마지야(아름다워요), 잘리안 게므리엘리야(엄청 맛있어요), 모디(이리 와요), 츠켈리 쯔깔리(뜨거운 물), 메 민다~(~를 하고 싶어요)' 같은 것들이었지만, 한 없이 너그러운 조지아 사람들은 나의 조지아어를 칭찬해주며 다가와 말을 걸어주고는 했다.
여행지에서 엽서를 보낸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몇 줄 안되는 문장 안에 내 여행의 모습과 길에서 느끼는 감상들을 함축해야 하기 때문이죠.
받는 사람에 따라 문장의 온도가 달라지기도 하고, 때때로 완성되지 못한 글로 끝을 맺기도 해요.
그렇지만 다시 쓸 필요는 없어요.
펜을 들고 당신을 기억하며, 생각에 잠겨 문장을 곱씹었던 그 순간의 감정이 온전하게 쓰였을 테니까요.
그것만이 내 진심이라고 믿어요.
그리고 아무렴 어떤가요.
내가 당신에게 여행 중에 엽서를 보냈다는 사실 만으로 충분하잖아요.
곧 내가 당신을 떠올렸고, 당신에 대해 생각하며, 잠시나마 당신을 그리워했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