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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글쟁 Oct 16. 2020

실종

오래전에 한 번 들었던 이야기다. 내가 아주 어릴 때 나를 잃어버려서 엄마가 애를 태우며 나를 찾았다는 이야기 말이다. 결혼 전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웃으며 말했다. 

"거 봐. 나는 그때부터 여행을 좋아했다니까."

수 십 년이 지나버린 나는 그 사건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다 보니, 그저 엄마가 애를 좀 태우셨겠구나 생각하고 지냈다.


어버이날인 어제, 아이들을 데리고 본가에 갔다. 음식을 포장해서 부모님과 할머니와 함께 먹고 아버지는 남매를 데리고 산책을 다녀오셨다. 오랜 산책을 다녀온 남매는 외할아버지에게 치킨이 먹고 싶다며 투정을 부렸다. 우리는 치킨을 기다리고 있었다. 


"얘들아, 너희 엄마가 어렸을 때 집을 나가서 길을 잃어버렸는 거 아냐?"

아버지가 갑자기 그 이야기를 꺼내셨다. 옆에 계시던 어머니도 거들어 그 이야기를 하셨다.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니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나는 그 일이 있었던 때가 다섯 살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세 살이었다. 한 여름 저녁이었다. 그 날 아버지는 대구로 출장을 가셨고, 어머니 혼자 저녁을 먹고 두 아이들을 씻길 때였다. 어머니는 둘을 같이 씻기는 힘들고 먼저 두 살 터울의 오빠를 씻겨서 닦여만 놓고 나를 씻기려고 생각하셨다. 오빠를 씻기고 바로 씻길 거라 나를 러닝에 팬티만 입혀놓고 어머니는 욕실에서 오빠를 씻겼다. 


그런데.

오빠를 씻기고 나오니 내가 없더란다. 거실에 분명히 있었는데 아이가 감쪽같이 사라졌단다.  집안 구석구석을 찾아봤지만 흔적도 없었다. 세 살짜리 아이는 열어둔 문을 나가버렸다. 깜짝 놀란 어머니는 집 밖에 나가 이름을 부르며 나를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차마 시댁에 알리기는 무서워 친정에 알려 외할머니, 할아버지와 삼촌이 와서 동네를 샅샅이 찾았지만 나는 없었다. 이미 해는 넘어가버렸고 거리에 어둠이 내렸다. 엄마는 그 일대를 쫓아다니며 나를 찾았다. 내가 혼자서 이리저리 길을 따라갔다면 모르겠지만 혹시나 누군가 나를 데려가버렸을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


한 밤이 되어서 아버지가 출장에서 돌아오셨고 그제야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고 경찰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내가 사라져 버린 두려움에 패닉 상태에 빠져버려 경찰에 신고할 생각을 전혀 못하신 것 같다. 나를 찾다가 길에 누군가 아이를 업은 사람을 보면 가서 아이 얼굴을 좀 보여달라며 애원했다. 혹시나 나를 업고 가버리는 건 아닌가 싶어서였다. 


내가 발견된 건 사라지고 나서 거의 4시간이 지난 뒤였다. 저녁 6시 넘어 집 밖에 나가, 밤 10시가 되어서야 찾은 것이다. 발견된 곳도 집 근처가 아니었다. 집에서 제일 빠른 동선으로 2km 떨어진 안동역 앞 양복점에서였다. 세 살짜리가 어떻게 당시 안동에서 가장 넓은 왕복 6차선 도로를 건너고 그쪽으로 걸어갔는지 전혀 모르겠다. 그것도 맨발로 말이다. 어쨌든 나는 안동역 근처에 다다랐고 어느 양복점 아저씨가 팬티에 러닝 바람으로 돌아다니는 이 아이가 아무래도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았단다. 아저씨는 일단 아이들 가게 안에 들어오라고 하고 경찰에 신고를 해주셨다. 부모님은 허겁지겁 그 양복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말을 안 해도 다음 장면은 다들 알아차릴지도 모르겠다. 러닝에 팬티만 입은 맨발의 아이는 눈물, 콧물 범벅이었다. 부모님은 나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기까지 글을 쓰는데 입안이 쓰다. 눈 앞이 깜깜하다. 나를 집에서 잃어버린 엄마의 마음을 떠올리니 눈물이 난다. 결혼 전에 웃고 넘어가버렸던 이야기가 지금이 되어서야 먹먹함으로 다가온다. 지금 나는 낯선 곳에서 일곱 살 첫째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고 찾는다. 아이가 대답을 하지 않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더 크게 외치기 시작한다. 그래도 보이지 않으면 가슴이 덜컥하고 더 큰 목소리와 더 큰 보폭으로 아이를 찾는다. 그제야 아이가 모습을 드러내면 도대체 어디에 있었느냐, 왜 대답은 안 했으냐 묻는다. 


내 아이가 내 눈앞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그렇게 무서운 일이다. 어머니는 집안에서 나를 잃어버린 셈이다. 그냥 집안에서 일상을 살고 있었는데 세 살짜리 아이는 문 밖으로 나가버렸고, 집에서 2km나 떨어진 곳, 한밤 중에 찾은 것이다. 나는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얼마 전에 실종된 사람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내 이야기가 생각났다. 눈물이 났다. 그때 누군가 나를 데려가 버렸다면, 그때 길을 건너다 차에 치였다면 나는 지금의 내 삶을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마음을 지금에서야 떠올리면서 역 앞의 양복점 아저씨가 무척 고마웠다. 세 살짜리 아이가 그 길을 걸어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스쳐갔을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 중 단 한 사람, 양복점 아저씨가 나를 붙잡아주셨다. 그분이 누군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진심으로 감사하다. 어쩌면 그 양복점 아저씨가 내 삶을 빗나가지 않게 잡아준 건 아닐까 싶다.


혹시 어디에선가 어떤 아이가 혼자 지나간다면, 아이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그냥 지나치지 말았으면 한다. 우리가 그 아이를 보는 건 잠시지만, 그 순간, 아이의 운명이 바뀔지도 모른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고 그 아이의 운명을 지켜주자. 


어버이날이 지난밤. 만감이 교차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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