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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글쟁 Oct 16. 2020

83년생 임글쟁

솔직히 이야기를 꺼내려니 겁이 덜컥 난다. 어떻게 된 일인지 82년생 김지영 이야기를 꺼내면 페미니 뭐니 억지 논리를 펼치며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사람들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어제는 우렁서방과 영화나 한편 볼까 싶어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82년생 김지영이 시작되고 있었다. 무슨 영화를 볼지 고민할 것도 없이 우리는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82년생 김지영을 책으로도 읽었고 영화로도 보았다. 슬프게도 책을 읽을 때나 영화를 볼 때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혼자 책을 읽고 영화를 볼 때에는 속으로 삭힐 수밖에 없었지만, 남편과 영화를 보며 말했다.

"여보, 솔직히 나는 저 82년생 김지영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던 것 같아."



82년 생과 한 살 차이는 83년생 글쟁이. 안동이라는 보수적인 동네, 그곳에서 천륜으로 만난 자신의 말만 다 옳은 우리 아버지. 당신은 아니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나의 어린 시절은 김지영보다 더한 차별과 고정관념에 범벅이 되었다. 그런 그는 아직도 아들과 친손주를 대놓고 좋아하고 아낀다. 대놓고.



그런 사정 때문에 나는 과거와 다른 삶의 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쑥 솟아오르곤 한다. 한 번 그러고 나면 나 스스로도 괴롭고 짜증이 늘어나 아이들이나 남편도 괴로우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인연이라는 것이 뭔지. 끊어내지 못하고 다시 만나고 다시 당하고 다시 괴롭다. 삶의 업보가 있다면 그것이 나의 업보인가 보다 한다.



유독 82년생 김지영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현상을 '공감대 부족'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같이 살기 좋은 시절에 82년생 김지영이 웬 말이냐는 사람들. 실제로 그런 일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느냐는 사람들. 그 정도면 더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사느냐는 사람들. 니미 뽕이다.



이 세상 모든 소설과 영화들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가 말이다. 말 그대로 소설과 영화다. 어떤 사람들의 삶이 그럴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의 사정이 그럴 수도 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는가는 문제는 연민과 공감의 가치와 닿아있다.

82년생 김지영을 두고 밑도 끝도 없는 비난을 일삼는 사람은 곧 '나는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지 않을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비난과 비판의 차이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요즘 검색 기능 좋은데. 찾아보지도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자기 잘난 맛에 살고 그렇게 느릿느릿 소멸해간다.

조그마한 소망이 있다면 나 그리고 내 가족, 또 다른 사람들이 자신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돌려 옆 사람도 한 번 봐주었으면 한다.



아무튼 우렁서방은 다행히 82년생 김지영을 아주 재미있고 감명 깊게 보았다며 내 상처를 보듬어주었다. 그럼 됐다. 내 옆지기가 김지영의 어려움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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