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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글쟁 Oct 28. 2020

페스트 코로나

알베르 카뮈 <페스트>

멈추었던 것들을 하나씩 하고 있다. 끄적이는 것 외에 읽는 것 또한 애쓰고 있다. 스스로 게으름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에는 또 다른 계기를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읽기에 관하여 만든 계기는 바로 책모임의 시작이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꽤 오랫동안 바라만 보던 책이다. 코로나19 초기에 아주 걸맞은 것 같아 도서관에서 빌렸었는데 가독성이 좋지 못하다는 핑계로 다 읽지 않고 반납해버렸다. 정말 좋은 핑계였지만 사실은 책 초반, 오랑시의 음습한 분위기가 마치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인 것 같아서 도무지 읽을 기분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을 쉬다가 아이들 모두 등원, 등교하게 되는 어느 날, 책모임을 다시 시작해보자며 선정한 책이 <페스트>였다. 

이번에는 책을 도서관에서 빌리지 않고 조금 더 가독성이 좋은 편집본으로 구입했다. 책을 주문할 때도 여전히 책 초반, 오랑시의 느낌을 잊을 수 없어서 조금이라도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을 읽고 싶었다.


조심스럽게 책장을 느릿느릿 넘기다가 오늘에서야 마무리를 지었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힘없는 인간 군중들의 모습을 <페스트>를 통해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들은 여전히 전염병을 앓고 있고, 전염병을 대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속 오랑시 사람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전염병이 시작되며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격리와 죽음을 겪으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짧고 긴 이별을 하는 사람들, 그 틈에 발 빠르게 영리를 추구하는 사람들, 공권력과 일반 시민들의 입장 차이, 전염병을 겪으며 피로가 쌓여 가는 의료진과 관련자들, 그들을 의심하는 사람들, 끝없을 것 같은 절망의 시간이 지나가고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는 사람들. 


우리에게 시나브로 코로나19가 전해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퍼져 나가는 사이, 우리는 똑같은 경험을 한 것만 같다. 마치 오늘 새벽녘 꿈에서 본 데자뷔처럼 훤하게 느껴진다. 


작가의 필력은 상상을 넘어선다. 페스트가 퍼져나가는 표면적인 현상을 세세히 묘사하기보다 그 상황에 처한 인간의 고뇌,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 한 집단의 스펙트럼을 철학적으로 은유한다. 

이 소설의 색을 말하라면 어두운 색이다. 검은색이 비교적 단적인 색이라면, 어두운 색은 그 짙음이 상대적이다. 음습한 오랑시의 처음 모습은 페스트의 전염 속도에 따라 차츰 탁해지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짙음에 다다르다 결국 서서히 연해지며 마무리된다. 그 색은 인간의 일면을 보여주기 위한 작가의 장치는 아닐까. 

코로나19 시기에 우리 사회의 모습을 제삼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한다면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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