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읽기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글쟁 Oct 30. 2020

담고 쓴다는 것

최필조 < 말할 수 없어 찍은 사진 보여줄 수 없어 쓴 글>

사진집을 빌린 건 처음이다. 사진집인지 모르고 집어 들고선 사진 하나하나가 예전의 내가 찍던 사진들인 것만 같아서 좀 더 자세히 읽고 싶었다. 

민속학을 십여 년 공부하면서 나는 시골을 많이도 돌아다녔고 어르신들을 많이도 만났다. 시골에서 어르신 이야기를 듣는 게 예사였고 내 공부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시간보다 더 긴 시간 동안의 일이어서 시골마다, 어르신마다의 색과 이야기가 지금도 떠오른다. 

혼자 다니며 신세를 진 어르신 분들도 많은데 몇 년 간 이어 오던 연락을 결혼 후에는 거의 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분들께 연락을 하기가 무섭다. 이미 그때도 연세가 많으셨던 분들이라 한참이 지난 지금 연락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분들을 생각하면 감사하고도 죄송하다. 

최필조 작가는 선생님이면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순간을 담길 즐기는 블로거다. 참 부지런한 분이다. 직업을 가지고 사진을 찍고 피사체의 이야기를 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임을 아니까 말이다. 거기에 블로그까지 운영하신다니.


나는 특히 밤골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재개발 예정지에도 그곳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고 삶이 있었다. 작가는 그곳에 살기도 하고 떠나서도 들르며 그곳의 이야기를 남겼다. 작가의 애정과 노력이 없었다면 나는 밤골의 풍경과 삶을 전혀 몰랐을 것이다. 내가 했던 공부도 마찬가지여서 잘 안다. 


옛날 어느 나라에서는 죽음을 앞둔 노인 옆에 어린아이 한 명을 앉혀두고 노인이 아는 모든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주었다고 한다. 노인 한 명이 세상을 떠나면 그가 알고 있는 모든 경험과 지혜는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의 사진과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지혜고 역사다. 우리들은 기록된 역사만을 역사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렇게 경험과 기억, 이야기로 쏟아내는 것 또한 역사의 한 부분이 분명하다. 다시 한번 작가의 애정에 경의를 표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페스트 코로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