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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글쟁 Feb 09. 2021

마음이 바뀐 설날

지나간 내 어린 시절 그 설날 

우리 할아버지는 안동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상 어른으로 통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늘 시끌벅적한 설날을 보냈다. 설날이 가까워지면 어른들은 장에 가서 설 음식을 장만하느라 분주했다.  오빠와 나, 사촌 동생은 같이 쏘다니다가 고기 찌는 솥이 걸린 아궁이 곁에서 불 쏘시개를 가지고 놀기도 하고 전 굽는 방에서 자투리 전을 얻어먹기도 했다. 고사리 손으로 밤 껍질을 까기도 하고 장도리로 호두 껍질을 딱딱 깨기도 했다. 어렸지만 소소한 일을 거들며 우리의 설을 준비했다.


아이들에게 설은 새해를 시작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세뱃돈을 받는 즐거움이 있는 날이기도 했다. 설 전후로 할아버지께 인사를 하러 수많은 손님들이 드나들었다. 손님이 사랑방에 들 때마다 부엌에서 할머니와 엄마, 작은 엄마들은 다과상을 차려 들이기 바빴다. 다과상이 들어가면 우리들은 손님께 세배를 드리려고 사랑방 문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적당한 시간에 오빠가 사랑방 문을 열면 할아버지께서 세배를 시키셨다.


설의 신나는 마음은 모두 같았지만 세뱃돈에 있어서 나는 묘한 경쟁심을 느꼈다. 내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모든 사람들이 미리 입을 맞춘 듯 오빠는 시퍼런 만원 짜리 지폐를 내밀었고 나에게는 천 원이나 오천 원짜리 지폐가 돌아왔다. 더 자존심 상하는 일은 나보다 네 살 어린  사촌 남동생이 나보다 더 많은 세뱃돈을 받을 때였다. 오빠는 장손이라 당연히 많이 받아야 하고, 막내 사촌 동생은 남자라서 나보다 많이 받았다. 오빠는 그 당시, 적어도 십만 원 이상의 세뱃돈을 받았는데 꼭 내 앞에서 결산을 발표했다. 그런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어린 마음에 꼭 박혔다. 나는 어른이 되면 아이이 들에 게 절대 남자라고 더 많이 주지 않을 거고 여자라고 더 적게 주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어느 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우리 집을 찾는 손님들도 서서히 줄어들었고 다 자란 우리들은 세배를 하려고 사랑방 앞을 기다리는 일도 하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더욱더 설날 풍경이 바뀌었다. 설음식을 장만할 필요도 없어졌고 손님을 맞이할 일도 없었다. 수 십 년을 정신없고 시끌벅적한 설날을 보냈던 나는 결혼을 하고 한 없이 편한 설날을 보내게 됐다. 지인들은 이런 나를 보고 전생에 나라를 구했느냐고 묻기도 하지만 나는 그냥 웃고 만다.


설날인데 설날이 아닌 것만 같은 요즘이다. 어린 시절의 묘한 질투심이 그리울 만큼.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그 설날을 기다린다. 유치원에서 배운 "까치까지 설날은 어저깨고요~"를 부르며 떡국을 먹어야 한 살을 더 먹는다며 설날 아침에 먹을 떡국을 기다린다. 그 모습을 보니 설날이 바뀐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바뀐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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