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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글쟁 Feb 19. 2021

너의 결 대로 자라나길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를 바라보며

첫째는 며칠 전부터 유치원 졸업과 초등학교 입학을 기다렸다. 아직까지 새로운 변화에 대해 어려움을 가져본 적이 없는 아이다. 네 살에 처음 어린이집을 갈 때에도 엄마가 데리러 온다는 말에 씩씩하게 답했다. 실내 활동이 많았던 어린이집을 떠나 바깥 활동이 많은 유치원에 가던 다섯 살에도 그랬다. 아이는 이제 삼 년을 다니던 유치원에 대한 아쉬움보다 새로 다닐 초등학교에 대한 기대에 차 있다.


오늘 등원은 유치원 마지막 등원이자 졸업이다. 아이는 선생님에게 드릴 거라며 쓴 편지 한 통을 손에 들고 평소처럼 버스에 올랐다. 코로나 19로 오랫동안 가정보육을 했던 아이 친구도 오늘은 함께 등원 버스에 올랐다. 아이 친구 엄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엄마들의 대화라는 것은 크게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유치원 아이들이 어느 초등학교를 많이 가는지, 입학을 앞두고 학습량은 어떻게 되는지 등등. 아이의 학습을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뜨끔하다. 할 이야기가 크게 없어서 말이다.


지금까지 아이는 체육활동을 하는 학원 몇 달을 다닌 것 외에 학원을 보내본 일이 없고 학습지를 신청해본 적이 없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가끔 공책에 글자 따라 쓰거나 연산 문제집을 한 권 사서 두 장 씩 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나는 '이 정도면 아무것도 안 하는 거나 같지!' 생각하며 아이에게 권했다.


처음 시작은 그랬으나, 마음과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연산 문제를 틀리지 않았으면 싶고 글씨를 좀 더 예쁘게 썼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이에게 바라는 마음이 조금씩 생겼다. 조금씩 그런 마음이 생기면서 결국 아이에게 소리를 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그때부터 나는 아이에게 최소한으로 시키고 있다고 생각한 글씨 쓰기와 연산 문제집을 시키지 않았다.


내가 자라 보니 그랬다. 글씨도 예쁘게 쓰고 연산도 틀리지 않고 술술 하면 서로 좋겠지만 사실은 사는데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는 것. 모두 타고 나는 결이 다르다는 것을 다 자라서 깨달았다. 오빠는 시험 점수가 잘 나오는 아이였지만 나는 전혀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다.


중학생 때 같이 학원을 다니던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반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던 아이였고 나는 늘 중하위권 성적이었다. 학원 선생님들에게 나는 늘 걱정거리였다. 그 후 시간이 흘러 대학을 가서 그 남자아이를 같은 과에서 만날 수 있었다. 옛날과 달랐던 점은 이번에는 내가 좋은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에 다녔다는 점이다. 그 후 나는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결을 가졌는지 좀 더 선명하게 알게 됐다.


다행스럽게도 내 아이는 나 보다 나은 것 같다. 이 문장을 쓰는데 '정말 그럴까?' 의문이 들긴 하지만, 뭘 해도 나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다. 아이는 내가 한글을 익힌 것보다 일찍 알아서 한글을 익혀 읽고 쓰기도 하고, 수학이라면 질색했던 나보다 수를 좋아하고 연산도 곧 잘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태블릿을 쓰기 위해서 알아서 문제집을 풀거나 글을 써서 나에게 내민다.


아이를 믿기로 했다. 아이가 도움을 요청하면 어떻게든 도와주겠지만 내가 먼저 아이에게 강요하지는 않으리라 다짐했다. 초등학교 입학을 열흘 정도 앞두고 내가 아이에게 학습을 시키지 않는 이유다. 아이는 스스로 자신의 그릇을 빚을 것이고 아이는 아이의 결 대로 자라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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