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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변 Feb 09. 2016

나의 할아버지

설 명절에 부쳐

나는 할아버지 손에 큰 것도 아니고,
명절 때나 뵐까하는 할아버지와 그리 많은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나이 스물이 훌쩍 넘어 여느 해와 다름 없이 할아버지를 다시 뵙게 되었을 때, 그제야 눈에 들어온 할아버지가 자꾸만 서울로 돌아와서도 사무치는 것이었다.
홀로 계신 아버지, 할아버지를 찾아와 저들끼리만 노는 아들손주들을 바라만 보시던 할아버지가 자꾸 눈에 밟혀서,
자식들이 떠나는 차에 올라타는 것을 마당에 나와 말 없이 바라만 보시던 할아버지가 왜인지 자꾸 생각나서,
몇 살이나 어린 손녀에게 너무나도 어렵게 어렵게 말 붙이고 싶어하시던 그 모습이 너무나 죄송해서,
오늘은 수화기를 들고 할아버지 댁 번호를 눌렀다.


잠시 동안 할아버지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셨다. 그러시더니 전화를 잘 하지 않아 목소리를 몰랐다며 수정이냐고 묻는 목소리가, 갑자기 환하게 빛이 나는 것 같아 더욱 죄송할 따름이었다.
어려서는 멀게만 느꼈던 할아버지는 동화책 속 여느 인자한 할아버지와 다르게 않게 춥지는 않으냐, 밥은 잘 먹느냐, 공부는 잘 하느냐, 눈물나게 죄송할 정도로 다정하게 물어보셨고,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전화해주어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기꺼워하시는 목소리가 못내 죄스럽고 민망하여 목이 메는 바람에 그만 통화를 오래 잇지 못하고 잘 계시라 하고 말았다.


사실 오늘의 전화가 있었던 것은 내가 너무나 외로웠던 탓이다. 조그마한 방에서 홀로 밥을 해 먹으면서 가만히 앉아있으면 시간이 흘러가는 것도 손끝으로 느껴질 것 같은 날.
그리고 아마 홀로 계신 할아버지는 나와 꼭 같은 모습을 하고 계셨을게다. 누군가 찾지 않으면 조용한 집, 문을 열면 산이 보이는 적막한 집, 혼자 살기에는 너무나 덜렁 남겨진 것 처럼 느껴질 그 집에서 꼭 나처럼 혼자 식사를 챙기시고 마당에 나와 구름 흘러가는 것을 말 없이 말 없이 지켜보셨을 것이다.


왜 그 동안 몰랐을까, 할아버지도 나도 얼마나 외로웠을까, 어린 시절 내게 할아버지는 가부장적이고 무섭기만 한 분이었고, 그 앞에서 주춤주춤 뒷걸음질치는 손주들을 보며 할아버지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어느 날 술을 드시고는 자식들 앞에서 신새벽 샛별을 매일 보는 놈이 있느냐고, 내가 매일 그 별을 보면서 너희 잘되라 비는 것을 아느냐고, 술김을 빌어 말씀하시던 그 모습이 생각나 결국 울음이 나고 말았다.


이제 밤이면 할아버지도 나도 일어나 불을 끄고 1인용 침상에 몸을 누일 것이다.
장성하여 가정을 이룬 자식들과 아직 어린 손주들은 가정의 품에서 몸을 누일 것이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오늘도 신새벽 샛별을 보며 자식 손주 며느리 잘되라 기도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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