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는 말에 대한 환멸
본 지 2주쯤 된 영화 빅 쇼트.
2008년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다룬 영화다. 그리고 네 명의 주연은 이 영화를 향한 관객의 네 가지 시선을 대변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는 크리스천 베일의 천재성을 동경할 수도 있을 것이고, 다른 누구는 멍청한 시장과 투자은행을 앞지르는 라이언 고슬링의 모습을 응원하고 또 통쾌해하며 그와 같은 자신의 모습을 꿈꿀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또 다른 누군가는 스티브 카렐처럼 금융 시장의 비합리성에 분노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브래드 피트처럼 선량한 납세자들이 가지지 못한 금융 시장에서의 '전문성'이란 것을 가진 사람들이 숫자에 묻혀 시장 너머를 보지 못하는 모습에 환멸을 느낄지도 모른다.
특히 자국에서 이 사태를 겪은 많은 미국인들은 어쩌면 브래드 피트의 시선으로 그 시기를 떠올리며 몸서리를 치지 않았을까. 영화에서도 지적했듯 결국 월 가는 선량한 납세자의 돈으로 경제를 무너뜨리는 한편 다시 한번 선량한 납세자의 돈으로 몸을 추슬렀다. 생각해 보면 납세자는 납세자의 의무를 다한 것이고 금융 시장의 구성원들은 각자 나름의 직업 상 의무를 다한 것이다. 그러나 그 '전문성'이 그토록 강력한 면죄부인가 하는 의문과 함께 사태 이후에도 여전히 거들먹거리며 잘 사는 월 가, 그리고 '대마불사'의 죽지 못하는 거대한 말에 대한 환멸이 영화 관람 후 한 움큼 더 이해가 갔다.